월광 소나타를 들으며

by 신성규

언어는 직설적이다.

우리는 문장을 읽고, 단어를 해석하며, 의미를 곧바로 받아들인다.

설명하려 하고, 설득하려 하고, 이해받으려 한다.


물론, 언어 안에도 추상은 있다.

은유도 있고, 여운도 있다.

그러나 결국 언어는 개념의 껍질을 쓰고, 사고의 뼈대를 따른다.

‘의미’라는 정해진 경로 위를 걷는다.


하지만 클래식은 다르다.

클래식은 음으로 말한다.

개념이 아니라, 감각으로.

논리가 아니라, 결로.

그것은 구조로 존재하지만 설명되지 않으며,

말할 수 없지만 전달된다.


음은 곧장 내면으로 들어온다.

한 번도 정의하지 못했던 감정이,

어느 피아노의 간격과 바이올린의 울림 안에서,

어느새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그건 우연도, 환상도 아니다.

그건 언어보다 더 오래된 방식의 ‘소통’이다.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클래식은, 언어보다 더 높은 차원의 예술일지도 모른다.

표현의 경지로만 보자면, 음악은 ‘개념’이 아닌 ‘존재’를 말하는 방식이다.

추상 위에, 추상을 얹는다.

마치 영혼이 영혼에게 직접 말을 거는 것처럼.


언어는 통역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음악은 그럴 필요가 없다.

그저 듣는다.

그리고 이해한다.

이해한다는 말조차 어쩌면 과하다.

그건 감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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