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해서 생각이 많은 게 아니다.
나는 본래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예민했다.
타인의 표정을 지나치게 오래 바라보거나,
문득 떠오른 말 한마디에 며칠을 앓기도 했다.
어느 날은 괜찮다가도, 어떤 날은 작은 소리 하나에 전부 무너진다.
이런 성격은 사회에선 ‘예민하다’고 말한다.
민감함, 과민함, 유리 같은 마음— 들리는 건 죄다 ‘견디기 힘든 결함’이라는 말뿐이다.
나도 그렇게 느꼈다. 괴로웠다. 내 안의 민감함은 늘 나를 먼저 찔렀다.
어디에도 쉴 데가 없었다.
그러다 나는 예술을 만났다.
거기서는 예민함이 결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필요 조건이었다.
사람들이 지나치는 걸 붙잡고, 무의식의 파편을 꺼내서,
하찮은 망상을 소재로 바꾸는 곳.
그게 예술이었다.
예민한 나는 그 안에 나를 쏟아부었다.
생각이 많아 잠을 못 이루는 밤,
망상과 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이 모든 게 작품이 될 수 있었다.
예민함은 여전히 괴롭다.
하지만 이제는 견딜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그 고통을 어딘가로 보내줄 수 있으니까.
예술은 나의 배출구이고, 내 안의 과잉 감각을 정당화해주는 유일한 세계다.
그러니까 나는 예술을 한다.
생각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생각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