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능력에 대하여

by 신성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이 늘어난다는 말과는 다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는 오히려 자기 경험의 틀에 갇히기 쉽다. 어릴 적에는 남의 이야기도 호기심으로 들여다보고, 그저 좋고 싫음으로 함께 웃고 울었지만, 언젠가부터는 내 경험의 언어로만 세상을 해석한다. 내가 겪어본 것, 내가 살아본 것, 내가 아는 것—그 범위를 벗어나는 이야기는 이해가 아니라 설명이 된다.


그래서 어른의 공감능력은 때때로 제한적이다. 누군가의 고통에 대해 “아, 나도 비슷한 걸 겪어봤어”라고 말할 수 있을 때만 진짜로 공감하는 듯한 착각. 하지만 공감은 반드시 같은 경험을 전제하지 않는다. 전혀 겪어보지 못한 타인의 삶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는 순간이야말로 진짜 공감의 출발점이다. 이해하지 못해도, 이해하려 애쓰는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공감의 씨앗이다.


사회가 엘리트들로만 이루어질 때, 이 문제는 더욱 두드러진다. 엘리트들은 더 넓은 지식과 더 많은 정보를 가졌지만, 오히려 타인의 구체적 삶과는 멀어질 수 있다. 모든 문제를 데이터와 통계로 환원해버리거나, 정책과 시스템의 언어로만 해석해버린다.


그렇다고 이들을 단순히 ‘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공감의 부재는 종종 의도된 악의가 아니라 무지에서 비롯된다. 무지란 곧 경험의 빈틈이자 상상력의 부족이다. 그 빈틈을 메우는 일은 단순히 정보를 더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문을 잠시 열어두는 일이다. 그 문틈으로 바람이 스며들 때, 우리는 타인의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공감은 ‘같이 아파본 적’이 있어야만 가능한 게 아니다. 공감은 ‘당신이 아플 때 나도 그 아픔을 느껴보겠다’는 의지에서 시작된다. 그 마음 하나가, 우리 사회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희망의 불씨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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