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시나요?”라는 질문은 언뜻 보기에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취향을 묻는 평범한 물음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질문은 그 단순함 속에 의외로 깊은 의미를 숨기고 있다. ‘브람스’라는 이름 자체가 은유가 되어 인간의 욕망과 윤리, 그리고 사랑의 금기에 대한 문제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브람스는 실제로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 클라라 슈만을 사랑했다. 그 사랑은 평생 그의 음악 속에서, 그리고 그가 직접 쓴 편지 속에서 아련히 남아 있다. 브람스는 슈만 부부와 매우 가까운 친구였으며, 로베르트 슈만이 정신적으로 무너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클라라를 향한 마음을 숨기려 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음악과 편지로 분출되었고, 결국 평생 결혼하지 않은 채 고독 속에서 음악에만 헌신했다.
이 역사적 사실은 ‘브람스를 좋아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단순한 음악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금지된 사랑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전환시킨다. 이 질문은 곧 ‘당신도 누군가의 것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사랑이란 도덕적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가?’라는 더 근본적이고도 무거운 문제를 드러낸다.
사랑은 인간에게 가장 아름다운 동시에 가장 잔혹한 감정일 수 있다. 특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금지된 사랑은 사회적 규범과 양심의 무게를 등에 지운 채 우리를 흔든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도덕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때 ‘브람스를 좋아하시나요?’라는 질문은, 사랑의 윤리적 경계에 선 우리의 심장을 직접적으로 겨냥하는 질문이다. 그 질문은 인간 내면의 욕망을 폭로하며, 동시에 그 욕망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또 얼마나 사랑에 굶주린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이 질문을 받는 주인공은 단순히 음악을 좋아하느냐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처한 관계의 윤리적 상황을 직면하게 된다. ‘나는 정말로 사랑을 위해 도덕을 넘어설 수 있는가?’, ‘사랑이 도덕보다 더 강력한가?’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질문은 주인공만이 아니라 독자에게도 동시에 던져진다. 우리는 독자로서, 혹은 인간으로서 이 질문에 솔직히 대답할 수 있을까? “네, 좋아합니다.”라고 답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니요.”라고 선을 긋고 마음을 접을 수 있을까?
브람스의 음악은 한층 더 이 질문을 복잡하게 만든다. 그의 음악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긴장감과 한숨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선율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 속에는 금기된 사랑에 대한 갈망이 스며 있다. 그 음악을 듣는 순간, 우리 안의 억눌린 욕망이 깨어나고, 금지된 사랑의 심연을 마주보게 된다. 그렇기에 “브람스를 좋아하시나요?”라는 질문은 단순한 음악 감상 이상의 질문이 된다. 그것은 사랑의 윤리적 한계와 인간의 욕망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며, 동시에 우리 스스로에게 ‘나는 얼마나 사랑에 솔직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이 질문 앞에서 멈칫거린다. 솔직히 말해, 나는 브람스를 좋아한다. 그의 음악을 좋아하고, 그가 가진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의 서사를 좋아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 사랑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사랑은 늘 아름답지만은 않고, 때로는 너무나 이기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 질문에 쉽게 “네”라고 대답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사랑이라는 것은 쉽게 규정할 수 없는 것임을. 그것이 바로 인간의 약함이자 동시에 인간의 강함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오늘도 내 안의 브람스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질문에 조심스레, 그러나 분명히 답한다. “네, 저는 브람스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복잡함마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