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27화

잃어버린 지갑, 잃어버린 나

by 신성규

오늘은 지갑을 잃어버렸다.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단순히 돈과 카드만 잃어버린 게 아니다. 그 안에는 나의 삶의 궤적, 나를 증명하는 신분증, 소중한 메모, 혹은 언젠가 받은 명함 한 장까지,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갑을 잃는 순간, 나는 실물로서도, 그리고 심리적으로도 한없이 무력해진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현대인은 이제 지갑과 핸드폰이 없으면 ‘나’로서 존재하기조차 어렵다는 사실을. 한 사람의 삶이 너무나 많은 것을 외부에 의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왠지 서글프다. 스마트폰 안에는 은행, 신분증, 지갑, 심지어 친구와의 대화, 가족의 연락처까지 다 들어 있다. 지갑도 마찬가지다. 그것 없이는 돈을 꺼낼 수도, 나를 증명할 수도 없다.


이제 나는 의문이 든다. 나는 정말로 내 삶을 잘 살고 있는 걸까? 지갑 하나 잃어버렸다고 이렇게 무력해지고, 한없이 초라해지는 게 정상일까? 우리는 지갑과 핸드폰이 없으면 길거리의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름이 있어도, 몸이 있어도, 그것들이 없으면 나는 사회적으로 아무것도 아니다.


예전에는 지갑을 잃으면 ‘돈’만 잃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존재의 증거’를 잃는다. 신분증, 카드, 디지털 키, 보험증, 멤버십, 각종 서비스 이용권이 한꺼번에 날아간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그렇게나 쉽게 데이터화되고, 시스템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갑을 잃어버린 것은 단순한 분실이 아니라, 내 삶이 얼마나 외부 시스템에 기대어 유지되고 있었는지 깨닫는 계기가 된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지갑과 핸드폰이 없으면 나는 무력한 존재인가? 아니면 여전히 숨 쉬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가?


나는 지갑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내 안에 있는 무서운 공허함을 마주했다. 나를 증명해주는 것들이 모두 종이와 플라스틱, 그리고 디지털 코드에 불과했다는 사실. 나는 그 사실이 낯설고, 한편으로는 끔찍하다. 나는 진짜 인간으로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기계와 시스템이 나를 대신 살아주는 걸까?


지갑을 잃어버린 지금, 나는 내 존재의 의문과 마주한다. 그리고 묻는다. 지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닐까? 핸드폰이 없으면 나는 누구일까? 나는 오늘도 나를 증명하는 수많은 것들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그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켜쥐고 산다. 그것이 현대인의 모습이자, 동시에 현대인의 외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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