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신과 가까워지는 붉은 언어

by 신성규

나는 전직 알코올 중독자다.

그 말은 나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나의 감각이 얼마나 예민했는지를 말해준다.

나는 세상의 허기를 술로 채우려 했고,

그 허기 속에서 가장 나를 위로한 것은

맥주도, 위스키도 아닌, 단 하나—와인이었다.


와인은 급하지 않다.

병을 따는 데에도 예식이 필요하고,

공기에 머무르게 하며,

잔에 머금고,

혀에 데이고 나서야,

비로소 입안에서 존재를 드러낸다.


와인은 취하려는 욕망보다는,

느끼려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마신 적 있다.

사랑이 끝난 날이었다.

모든 것이 무너졌던 밤,

한 모금의 와인은 오히려 나를 취하게 하지 않고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그 맛은 피 같았고,

그 온도는 인간 같았으며,

그 여운은 신 같았다.


와인을 마시며 나는 알았다.

신은 멀리 있지 않고,

와인 한 잔의 구조 속에 있다는 걸.


시간, 기다림, 퇴적, 무너짐, 부패, 발효—

이 모든 것을 품은 것이 와인이고,

신은 언제나 그런 장소에 깃든다.


지금 나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

하지만 와인을 버리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와인을 사랑한다.

취하려는 자가 아닌,

기도하려는 자의 눈으로 와인을 바라본다.


와인은 술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마시는 것이다.

그리고 신을 마주하는 언어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9화남자들은 못말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