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주식에서 도망쳤는가

by 신성규

주식은 숫자다.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숫자는 인간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나는 주식을 바라보며, 나의 정신이 점점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돈을 벌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는 구조,

놓지 못하는 후회,

판단을 반복하는 강박,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만드는 심리적 소용돌이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주식은 나의 의지를 시험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 존재 전체를 재편성하려 한다.


주식은 이상한 방식으로 내 시간에 침투해왔다.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더 많이 떠올랐고,

잊으려 할수록 더 강하게 각인되었다.

하루 종일 고작 3%의 움직임에 온 신경이 쏠렸다.

몸은 일을 해도, 마음은 차트를 보고 있었다.

누구도 나에게 그걸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 체계는 아주 효율적으로 나를 낚아챘다.


돌이켜 보면, 이건 단순한 투자 그 이상이었다.

그건 ‘내가 누구인지’라는 질문을 외부 가격에 연동시키는 체험이었다.

주식이 오르면 나는 똑똑한 사람,

주식이 떨어지면 나는 멍청한 인간.

성공과 실패의 척도가 나의 통찰이 아니라,

시장이라는 ‘익명의 신’이 내리는 심판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신 앞에서 늘 죄책감을 느끼며 무릎 꿇어야 했다.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조차도,

나는 판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를 비난했다.

이 구조는 고요한 밤조차 불안으로 채워놓았다.


그래서 나는, 멈췄다.

수익의 가능성에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라는 것을.

사유는 집중하지 못했고,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음악조차 배경 소음이 되어버렸다.

모든 것이, 단 하나의 숫자 앞에서 부정당했다.


위인들도 이 감정을 알았을까?


나는 마르크스를 떠올린다.

그는 자본의 축적 과정이 인간의 정신을 분리시킨다고 보았다.

그는 금융 시장이 아닌 ‘잉여가치’ 속에 숨겨진 인간의 피로를 보았다.

그는 투자자가 아닌, 관찰자였다.


나는 더 이상 매 순간 ‘판단’하고 싶지 않다.

나는 주식에서 벗어난다.

돈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나는 생각한다.

진짜 자유란, 판단하지 않을 자유가 아닐까.

주가가 올라서 기쁘고, 떨어져서 우울한 삶은

어쩌면 ‘경제적 자유’가 아니라,

정신적 노예 상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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