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적 사유를 위한 명상

by 신성규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매일 통제하려 든다.

기분 나쁜 타인의 말, 오지 않은 미래, 지나가버린 과거, 끝나지 않은 뉴스들.

이 모두가 나의 의식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나는 자주 묻는다.

“이건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러나 정작 나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


스토아 철학은 모든 철학 중 가장 절제된 언어로 진실을 말한다.

“너의 통제는 지금 이 순간의 판단에만 있다.”


현실은 대부분 나의 바깥에 있다.

경제, 정치, 인간관계, 심지어 내일의 일기예보까지도.

그 바깥에 있는 것들에 대해 걱정할수록,

나는 점점 내 삶의 중심에서 멀어진다.


세네카는 말했다.


“우리는 고통이 아니라, 고통을 예상하는 상상으로 무너진다.”


불안은 대개 미래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불안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나의 정서를 미리 투자하는 행위다.

그 행위가 반복될수록, 현재의 정신은 갈라진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너의 현재의 삶을 잘 살라. 그것이 바로 너의 삶 전체다.”


스토아는 단지 담담하자는 교리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이라는 시간의 명확한 경계를 인식하고,

그 안에서 ‘나의 판단’과 ‘나의 행동’을 분리해 낼 수 있는 지혜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무엇을 지킬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바로 지금의 나. 지금의 선택. 지금의 평정.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지금 어떤 자세로 미래를 기다리는지는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자세야말로 스토아 철학이 말하는 인간의 위엄이다.


우리는 종종 ‘성공’을 미래의 어떤 결과로 착각한다.

그러나 스토아적 삶은 이렇게 묻는다.


“그 미래는 정말로 너의 것이었는가?”

“그 선택은 너의 판단이었는가, 아니면 타인의 기대였는가?”

“지금의 이 평정, 이 마음, 이 호흡이 없다면,

너는 무엇을 얻어도 잃게 되는 것이 아닌가?”


스토아는 말한다.

모든 것이 흘러간다.

사람도, 상황도, 감정도.

그러니 그 흐름을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흐름 속에서 내가 지킬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

지금 할 수 있는 말.

지금 결정할 수 있는 행동.

지금 담을 수 있는 태도.


이것이 전부이며, 동시에 전부다.


우리는 지금을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삶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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