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보는 관점

by 신성규

어떤 사람은 철학사를 시간의 직선으로 이해한다.

탈레스에서 시작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지나,

칸트, 니체, 그리고 현대의 수많은 분석철학자들로 이어지는 선형적 발전.


하지만 나는 다르게 느낀다.

철학은 선형적 진보가 아니다.

오히려 고대로 돌아가는 영원한 순환이다.


아테네의 아고라에서 질문하던 소크라테스는

이미 인간 존재에 대한 거의 모든 근원적 질문을 던졌다.

“나는 누구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한 번도 ‘해결’된 적이 없다.

단지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다시 던져졌을 뿐’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보편’에 대한 욕망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은 ‘현실’에 대한 존중이었다.

이들은 인간 인식의 좌표계를 처음으로 그려낸 사람들이다.

그 좌표 안에서 칸트는 ‘이성의 한계’를 측정하고,

니체는 그 틀 자체를 부수려 했다.


하지만 결국,

현대 철학의 대부분은 고대 철학에 대한 주석이다.

즉, 해석의 반복이다.


철학은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은 반복되는 문제에 대한 사유의 깊이다.


기술은 발전한다.

속도는 증가하고, 정보는 팽창한다.

하지만 철학은 변하지 않는 인간의 조건 위에서 사유하는 학문이다.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자유’를 갈망하며,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흔들리는 한,

우리는 다시 고대로 돌아가 질문할 수밖에 없다.


이제 철학은 더 이상 ‘발명’의 시대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던져진 질문을

우리 삶의 언어로 다시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철학의 진짜 능력은 ‘새로운 이론’을 창조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어떤 질문을 다시 끌어올 것인가,

어떤 고전을 어떻게 삶에 맞춰 재해석할 것인가,

그것이 철학자의 힘이다.


철학의 목적은

역사 속에서 가장 오래된 질문을

가장 오늘다운 언어로 되묻는 것이다.


철학은 ‘과거의 사상’이 아니다.

오늘의 고요한 아침에도,

밤늦은 혼잣말 속에도,

여전히 유효한 인간의 거울이다.


우리가 정말로 철학을 한다면,

그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팔로워 141
이전 02화스토아적 사유를 위한 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