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막히는 한국

by 신성규

나는 한국에서 숨 쉬는 법을 잊어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 나라가 익숙한 공기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점점 더 희박해지는 산소 같다.

사람들은 말한다. “좀 눈치를 봐야지.”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왜 우리는 그렇게까지 눈치를 봐야 하는가. 왜 나 자신을 감추는 것이 미덕이 되어야 하는가.


내 언어는 너무 노골적이고, 내 생각은 너무 자유롭고, 내 감정은 너무 진하다.

한국은 내게 말한다. “말을 조심해. 사람들 앞에선 그렇게 말하지 마.”

그러나 그 말은 결국 이렇게 들린다.

“너는 잘못되어 있어. 너는 틀려.”


나는 틀리고 싶지 않았다.

다만, 진실하게 살고 싶었다.

타인의 감정만 살피느라 내 감정을 누르고, 타인의 눈에 맞추느라 내 언어를 잘라내는 삶.

그건 나의 일부가 천천히 부패해가는 감각이다.

숨이 막히는 건 육체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다.


나는 호주로 떠나볼까 고민한다.

아마 거기서도 완벽한 자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용납하지 않는 집단적 시선’에서 만큼은 잠시 멀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나를 이상하다고 생각하든, 그건 그 사람의 의견일 뿐이지 내 존재의 오류는 아닐 것이다.


한국에서는 일을 해도, 사람을 만나도, 관계를 맺어도

무언의 규율이 사람 위에 군림한다.

말보다 표정, 진심보다 분위기, 논리보다 서열이 먼저다.

나는 그런 곳에선 아무리 웃어도 외롭다.

내가 사랑받는 게 아니라, 내가 조용히 있어서 사랑받는 느낌.

그건 사랑이 아니다. 그건 존재의 절반만을 사랑하는 척하는 것이다.


나를 억누르는 사회가 싫은 것이 아니라,

나를 억누르면서 그것을 ‘정상’이라 부르는 시선이 무섭다.

그래서 나는 도망치고 싶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벗어나고 싶다.

숨 쉴 수 있는 방식으로, 숨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그리고 거기서 내가 틀린 존재가 아님을, 내 언어가 너무 거칠거나 이상한 게 아님을,

조용히 증명하고 싶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언어를 뺏기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부정당하지 않으며,

자신의 존재를 수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숨 쉬는 것이 아닐까.


나는 한국에서 그게 너무 어렵다.

그래서 떠나야 할 것 같다.

눈치 보지 않고, 말의 수위를 조절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그곳으로.


그저, 한 번만이라도

내가 내 존재로부터 ‘숨이 막히지 않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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