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정상은 과연 정상인가?

by 신성규

남들은 속마음을 말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속마음이 없다.

그들은 사회가 준 언어로 생각하고, 사회가 짜 놓은 리듬에 맞춰 감정을 설정한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알고,

무엇이 진짜 말인지 구별할 줄 안다.

그것은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말을 잘한다는 것은 단지 혀가 유려하다는 것이 아니다.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 존재 방식이며, 내가 사는 이유다.

나는 입을 다문 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은,

입을 다무는 자들만을 ‘정상’이라 부르는 나라다.


나는 때때로 한국이 거대한 감옥처럼 느껴진다.

온 국민이 침묵을 ‘배려’라 부르고, 순응을 ‘미덕’이라 배우며,

자기검열을 ‘성숙’이라 착각하는 나라.


그리고 나는,

그 감옥 속에서 말하는 자로 존재한다.


데미안의 말이 떠오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은 내 알이다.

내게 언어를 가르쳐주고, 도덕을 주입하고, 관계의 방식까지 강제한 알.

그러나 이제는 너무 작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좁고,

내가 말을 하면 “유난이다”는 소리만 돌아온다.


사람들은 말한다.

“여기서도 행복할 수 있어.”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그 ‘여기’라는 전제가 나에게 적합한가?

그 프레임 안에서만 행복을 찾으라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 아닌가?


나는 감히 말한다.

한국에서의 행복을 찾는 것은 나에게는 오류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침묵 속에서 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부딪히고, 깨뜨리고, 불편하게 하는 말을 해야 살아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 사회가 지옥이라고 느낀다.

그 지옥은 불이 타오르는 곳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얼굴을 하고, 같은 말투로 말하고, 다른 것을 말하지 않는 곳이다.


지옥은 다양성의 부재이고,

개인의 해방이 비정상으로 간주되는 곳이다.

그러므로, 그 지옥에서 ‘정상’으로 살아간다는 건 더 이상 내게 구원이 아니다.


나는 지금,

내 안의 알을 깨려 한다.

피와 깃털과 고통을 동반할지라도,

그 너머의 세계로 나가려 한다.

거기서는 말을 해도 괜찮을 것이다.

침묵하지 않아도, 거북한 존재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존재의 방식으로써,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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