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을 위해 한 발자국 #16
디자이너로 평생 살고 싶었어.
로고가 좋아서 미대를 가는 꿈을 가졌고
디자인을 너무 좋아했고, 브랜딩을 좋아했어.
항상 나이가 들어 백발이 되어도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얘기했어.
대학 때는 귀여운 아르바이트비로 십만 원이 넘는 로고책을 사곤 했어.
벌써 20년 전의 얘기니 엄청나게 비싼 책이었지.
요새는 핀터레스트나 비핸스 같은 좋은 서비스가 있었지만
당시엔 책이 해외의 로고들을 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어.
당시 인턴으로 있던 에이전시에서 시안이 나오면 로고책이 가득 찬 공간에서
비슷한 로고가 있는지찾는 일이 있었는데, 매일 세계 여행을 하듯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어.
그렇게 디자인을 즐기며 작업하다 보니 벌써 경력이 15년이 훨씬 넘어섰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디자이너로만 살아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디자인은 대부분 타인을 위해 작업하는 일이다 보니 나를 위한 일을 점점 더 하고 싶어 졌고
결국은 내 일. 내 브랜드. 내 제품을 만들어가야겠다 마음먹게 되었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만들어 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어.
농장을 해보고 싶다. 술을 담가보고 싶다. 로컬비즈니스를 해보고 싶다..
책도 보고 공부도 하고, 여기저기 무작정 찾아가기도 하며 여러 길을 알아봤지만
막상 제대로 도전하지 못했어. 다른 분야로 훅 빠져들기에 마음에 준비가 안 되어 있었나 봐.
기획하고 콘셉트와 페르소나 설정하며 그래픽 뽑아내는 과정을 내내 해왔으니
이번에는 나에 집중해서 나를 브랜드로 만들어보자.
그림도 그리며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솔직히 남겨보자.
기록하다 보면 무슨 일이라도 찾게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
무작정 시작했지만 나를 표현하는 게 너무 재미있고 행복하더라.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림에세이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렇게 또 글을 쓰고 있어.
인생 2막을 만들어가며 디자이너의 역할은 조금씩 줄어들겠지만
나는 백발이 되어도 디자이너 일 테고 그림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어.
이렇게 꿈꾸며 지내다가 또 다른 하고 싶은 게 생긴다면?
당연히 도전해 봐야지.
그 과정도 그림에세이로 계속 남겨며 도전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