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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태하 Jun 15. 2023

네 식구가 18평에서 10여 년을...

02. 돈과 집, 그리고 삶에 관한 이야기



우리 세 식구는 10년 동안 단칸방에서 살았었다. 18평 아파텔은 넓다며 행복해했다. 방이 2개나 있고 거실도 있다. 커튼이 아닌 방문을 닫을 수 있는 내 방이 생긴 데다 소파에 앉아서 티비도 볼 수 있다. 화장실엔 따뜻한 물도 잘 나왔고 욕조도 있고 변기물도 잘 내려갔다. 부모님은 막 돌 지난 남동생을 키우기에 안전하다고 생각하셨다. 갓난쟁이가 생겨 네 식구가 된 우리가 살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1층엔 분리수거장이 있고 이곳을 정리해 주시는 분도 계셨다. 초등학교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시장과 마트 가기 좋았고 지하철역도 걸어서 15분 정도에 위치했다. 우리 가족의 삶이 극적으로 개선됐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아파텔 18평은 아파트의 15평과 실평수가 비슷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중, 고등학생이 되었고 키와 덩치가 커졌다. 동생도 빠르게 성장하면서 18평 아파텔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살림살이도 하나씩 늘어나면서 집 자체도 좁아졌다. 공간이 답답해서인지 서로 다투는 일도 많아졌다. 남동생에게도 독립된 방이 필요한 나이가 됐다. 방 3개 정도 되는 곳으로 이사 가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한 부모님 일이 망해서 이사 갈 수 없었다. 아버지는 아파트 담보 대출받아서 일반 오락실을 인수해서 운영하셨는데, 노무현 정권 때 사행성오락(바다이야기)을 문제시했고 덩달아 일반 오락실들마저 문을 닫게 됐다. 그 결과 우리 가족에겐 집 값에 상응하는 대출만 남아버렸다.



부모님은 빚으로부터 우리 집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셨다. 아버지는 돈 되는 일은 뭐든 하셨다. 어머니전업주부를 하며 중간중간 아버지 일을 도왔지만, 돈을 더 벌 수 있는 당신만의 일을 시작하셨다. 집에 빚이 많아지자 우리 부모님은 돈을 위해 일하는 삶을 살게 되셨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대충 하던 공부 집중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학교 생활 열심히 하고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었다. 집 밖에서 공부하는 것이 나의 빈자리만큼 집에 여유공간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가능하면 집을 떠나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싶었다.


공부하는 여건이 여유롭진 못했다. 학원을 다니고 과외를 받기엔 부모님께 부담이 될 거라 생각했다. 등학생 때는 학원을 관뒀다. 대신 자습을 많이 했다. 독서실에서 맨 마지막에 나갈 때 희열을 느끼며 공부했다. 문제집 풀 땐 연습장만 사용했다. 그 문제집을 다시 한번 더 풀면서 책값을 최대한 아껴야 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한 덕분에 성적은 많이 올랐지만 아쉽게도 수능성적은 평소보다 낮았다. 인서울 대학지원 가능했지만 좋은 인서울 대학의 학과엔 갈 순 없었다. 그래도 서울에서 대학을 다녀보고 싶었지만 1년간 드는 비용을 듣고선 포기했다. 재수를 해볼까 했지만 높은 비용과 낮은 성공확률을 듣고선 포기했다. 결국 학비가 저렴하고 고향에 있는 지방국립대를 다니게 되었다.


돈 덕분에 집이 더 좋아졌고 돈 때문에 집은 더 나아질 수는 없게 됐다. 돈 덕분에 공부에 집중하게 됐고 돈 때문에 공부는 더 도전할 수 없었다. 돈 때문이라는 핑계로 스스로를 방어하기도 했다. 돈 덕분에 행복했다가 돈 때문에 불행했다.


돈 문제와 집 문제는 우리 가족에게 계속해서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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