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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춘열 Mar 15. 2019

봄을 타는 이유

이름 탓, 야구 탓, 캠핑 탓, 봄이 오는 속도 탓

봄이 되면 설렌다. 작년엔 국립수목원 토요일 방문을 위해 4월 첫 주부터 마지막 주까지 모두 예약을 해두었다. 틈만 나면 남쪽 지방부터 들려오는 벚꽃, 매화, 산수유 소식을 검색한다. 먼 남쪽 지방엔 쉽게 가지 못하니 화면으로라도 대리만족이다. 언젠가는 아내와 동백꽃을 보러 서천으로 봄기운을 받으러 춘천으로 주말 아침부터 계획 없이 나섰던 적도 있다. 매년 이 시기에 서울의 본가에 갈 때면 주변의 봄꽃 축제 소식을 수집해 일정을 잡는다. 화이트데이엔 꽃집에서 한창을 구경하다, 꽃 화분을 아내와 아이들에게 선물했다.    




봄을 이리 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로 이름 탓이다. 세 글자의 이름 중에 성과 돌림자는 어쩔 수 없고 자유로운 이름 한 자가 ‘봄 춘(春)’이다. 음력 3월 한 봄에 태어났고, 농사를 크게 지으시던 할아버지가 맏손자를 위해 지은 이름이다. 돌림자 역시 ‘매울/세찰 열(烈)’이어서 강한 봄의 기운을 뜻한다. 춘향(春香)의 남자 이름 버전인 셈이다. 이러니 봄의 열병(spring fever)을 앓는 게 당연하다.

    

국립수목원ⓒ신작단


둘째는 취미 탓이다.

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줄곧 롯데 팬이었다. 껌공장을 다니시던 아버지 덕에 당연히 리틀 자이언츠의 회원이 되었고, 84년 코리언시리즈 7차전 잠실 야구장 현장에 있었다. 최동원의 호투를 지켜보았고 유두열의 3점 홈런이 떨어진 좌측 외야석이었다. 그때 이후 줄 곧 롯데 자이언츠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프로야구는 3월부터 시범경기가 시작되고 4월부터 시즌이 개막한다. 봄은 본격적인 야구가 시작하는 기다.

대학 전공인 역사 공부를 핑계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답사 여행. 졸업 후에도 계절마다 친구들과 답사여행을 다녔다. 결혼 후에는 아이들과 함께 다니는 캠핑으로 이어졌다. 여전히 아내를 설득하지 못해 겨울엔 캠핑을 쉬고 있지만, 봄이 되면 캠핑을 시작할 수 있다. 본격적인 캠핑 시즌을 앞두고 열리는 캠핑 페어장을 방문하거나 방문기를 보면 마음속에서도 아지랑이가 피올라 울렁울렁거린다.


봄은 캠핑ⓒ신작단


셋째는 봄이 오는 속도 탓이다.

벚꽃의 개화시기를 분석해 보면 대개 제주도와 서울은 약 18일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한다. 제주 시청 앞 도로원표에 나와 있는 서울역까지의 거리가 453km이니 하루에 25km 정도의 속도로 봄이 오는 것이다. 시속 1km가 조금 넘는 속도로 어린아이의 걸음걸이 속도와 비슷하다. 마음은 이미 봄인데 실제 오는 속도가 어린아이의 걸음걸이처럼 천천히 오니 더 애가 탄다.     




봄이 오면 아내의 지청구는 늘어난다. 월요일을 빼고 진행되는 야구 중계를 확인하느라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데 소홀하기 때문이다. 캠핑 페어에 다녀온 뒤로는 이런저런 장비를 보여주며 결제를 결재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중요한 것 하나는 아내에게 꼭 말하고 싶다. 내 인생 진정한 봄날은 당신을 본 날부터 시작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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