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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춘열 Mar 14. 2019

단골 미용실이 생겼다.

40년 인생에 단골 미용실이 없었다. 학생 때야 친구들끼리 우르르 몰려가 머리 자르는 곳이 있었지만, 스무 살이 넘어서는 늘 그때그때 달랐다. 세련된 인테리어의 대형 프랜차이즈 숍에서는 헤어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한껏 고무된 아티스트 중 누구를 골라야 할지 고민이었다. 대기석으로 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어떤 스타일을 원하시냐 묻는 과잉친절도 불편했다. 작은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 만져주시는 분의 쏟아지는 질문에 답하는 것도 마뜩잖았다. 또 어쩌다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해도 내가 머리를 자르려고만 하면 왜 이리 사람들이 넘쳐나는지... 그래서 오래 기다려도 되지 않는 곳을 그때그때 찾아 머리를 자르곤 했다.

최근엔 3년 정도 계속 다닌 미용실이 있다. ‘가시버시’라는 정감 있는 이름의 동네 미용실이다. 직원도 없이 사장님이 혼자 운영한다. 세련된 미용실과는 거리가 좀 먼 90년대 후반쯤의 인테리어로 머물러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손님이 많지 않다. 머리 자르러 가서 오래 기다려 본 적이 거의 없다. 사장님이 말수가 적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편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 주로 혼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쉽게 대답하거나 동의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 부담 없다. 

처음 가시버시 미용실에 갔을 때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정수리 부위에 탈모가 한창일 때였다. 얼마간 아내가 알려주는 대로 샴푸도 쓰고, 약도 먹고 있어 많이 회복되었다. 지난달 미용실을 찾았을 때는 사장님이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특별 서비스를 해주셨다. 평소처럼 투 블록으로 머리를 자르고-사실 아직도 투 블록이 정확히 뭔지 모른다. 그렇게 자른다고 하니 그런 줄 알고 있다.-왁스를 양손에 듬뿍 발라 머리카락을 쥐었다 폈다해서 컬을 살리고, 머리카락을 조금씩 쥐어 세운 뒤 촘촘한 빚으로 빗질을 여러 번 반복한다. 그러고는 세심한 손길로 운동장 같은 이마의 이곳저곳 빈 곳을 채우는 신공을 발휘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면도날을 꺼내 눈썹을 정리하고, 미술 연필을 꺼내더니 미술시간에 아그리파 그리듯 눈썹을 칠한다. 평소 유독 가늘고 많지 않은 머리카락을 닮은 내 눈썹이 애처로웠나 보다. 

한껏(?) 치장을 받고 나니 엄마와 아내가 결혼식이나 돌잔치를 참석해야 할 때 미용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지 알 것 같았다. 조금 낯간지러운 시간이긴 했지만, 거울을 보고 있노라니 내 모습이 참 마음에 든다. 한동안 거울 속 얼굴을 요리조리 쳐다보았다. 

평생을 껌공장에 다니던 아버지 덕에 어릴 적부터 원 없이 턱 근육을 사용했기에 잘 발달한 사각형의 턱. 얼굴의 1/3 이상을 차지하는 시원한 ‘M’ 자 이마. 가늘고 그리 많지 않은 숱이지만 오늘따라 유독 풍성해 보이는 머리. 원래 성긴 눈썹이지만 오늘은 숯검정이 되어 송승헌 저리 가라다. 남자치고는 본래 좀 긴 속눈썹에 신해철이나 김완선처럼 검은 눈동자는 좀 위로 붙었다. 코는 10살 때부터 써 온 안경을 듬직하게 잘 받쳐주고 있다. 입은 좀 작은 편이고 윗입술이 조금 얇은 편인데 할 말 못 할 말 잘 가리고 먹는 데 불편함 없다. 귀는 정면에서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잘 누워 붙어 있다. 귓불은 둥글고 적당한 게 유독 매력적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내 얼굴을 쳐다본 적이 있나 싶다. 마음에 든다. 사진을 찍어 아내와 엄마에게 전송했다. 단골 미용실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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