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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첫 강의

수의학박사가 아닌, 작가로서 '책쓰기'를 말하다

by 장서나

설렘이 깨운 아침


새벽 6시 반, 알람도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평소 같았으면 이불 속으로 더 파고들었을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강의 시간은 오전 10시. 세 아이 중 초등학교에 다니는 첫째, 둘째 아이를 등교시키고 바로 출발하면 강의 30분 전에 도착할 수 있다. 혹여나 강의 시간에 늦을까 봐 며칠 전 강의 장소까지 사전 답사도 다녀왔다. 집에서 나서기까지 아직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음에도 마음이 분주했다. 꿈속에서도 강의를 했다. 긴장감과 기대감이 엉켜 가슴이 벌써 두근거렸다. 처음 하는 강의인데도 걱정보다는 설렘이 컸다. 오늘 과연 어떤 분들을 만나게 될까?!


"<책쓰기를 위한 실전 글쓰기>"

'강의 제목 하나만 보고 신청한 분들은 어떤 분들일까?' 정말 궁금했다. 책을 읽는 사람도 많이 없고, 글을 쓰는 사람은 더 없는데, '책 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니?!


지금까지 수의사로서, 박사로서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고 강의했던 경험은 많았다. 그렇지만 일반인 대상으로 강의하는 건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누가 올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내 전공이 아닌 주제로 강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설렘 때문에 잠이 일찍 깨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릴 적 학교에서 소풍 가는 날 이런 기분이었던가. 소풍날 아침, 엄마가 만드시던 고소한 김밥 냄새를 맡으며, 아직 하늘이 시퍼런 새벽에도 가뿐하게 일어났던 기억이 났다.

'내가 열심히 준비한 만큼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께 꼭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강의 장소까지 가는 차 안에서 음악 대신 지난 일요일 졸며 들었던 설교 말씀을 들으며 갔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예상과 달랐던 강의


강의 장소에 도착하여 자료를 정리하여 놓는 사이,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랐다. 보통 평일 낮에 내가 들었던 강의에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온 엄마들이 대부분이었다. 오늘 강의를 들으러 오신 분들은 우리 엄마 또래의 어르신들이셨다. 전혀 예상 못했었기에-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잠깐 당황하긴 했다. 어르신들 앞에 서서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강의하게 되다니!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처음 가는 식당도 단골이 되고, 아이들 다니는 병원 원장님과도 농을 나누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자주 뵙는 택배 기사님과도 이런저런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넉살 왕' 아닌가! 아이 셋을 키우며 의도하지 않게 동네 '인싸'가 되어 동네 엄마들뿐만 아니라 동네 아이들과도 편하게 지내는 내가 아니던가!


"강사님이세요?! 강의 들으려고 대기 신청까지 했었어요!"

강의를 가까스로 듣게 됐다며, 강의에 대한 기대감을 보이셨다. 강의를 들으러 오신 분들은 분명히 열정이 있으신 분들일 것이고, 강의를 준비한 나에게 호의적일 거라고 기대했었다. 그 이상이었다. 반짝거리는 눈빛은 내가 매일 보는 우리 아이들의 그것과 똑 닮아 있었다. 반갑고도 고마운 눈빛이었다.



강의 시작 전, 앞자리에 앉은 두 분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독립 서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얼마 전 동네 독립 서점에 다녀오셨다는 것이었다. 뭔가 에너지와 내공이 느껴졌다. 급하게 준비한 강의 PPT에서 순서를 바꿨다.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의 경험 정도가 서로 크게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출간한 적이 있다.

- 나는 글을 정기적으로 쓰고 있다.

- 나는 SNS 계정이 있어서 글을 올려본 적이 있다.

- 나는 이전에 책 쓰기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나씩 질문에 손을 들으셨다. 다행히(?) 출간하신 분은 없었고, 한 분은 글을 써서 초안까지 완성하신 상태였다. 인상 깊었던 것은 마지막 질문에서 딱 한 분이 손을 드셨다는 것이었다. 강의를 들으러 오신 분들은 대부분 이전에 책 쓰기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으셨는데, 딱 한 분은 이 강의를 신청하면서 처음으로 책 쓰기에 대해 생각해 보셨다는 것이었다. 단 한 분이었지만, 나의 강의로 인해 그분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기대가 되었다.



책 쓰기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강의는 물 흐르듯 흘러갔다. 강의에 집중해 주시는 모습에 더 자신감 있게 준비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었다. 왜 책을 써야 하는지, 지금 써도 왜 늦지 않았는지, 책을 쓰고자 마음을 먹으면 어떤 방해들이 있는지-나의 경험을 버무려 하나하나 이야기해 나갔다. 어떤 부분에서는 수첩에 메모를 하셨고, 어떤 부분에서는 사진을 찍으셨다. 출판의 형태와 출판 과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드렸다. 출판에 대해서 궁금하셨을 내용과 출판 현실에 대해 솔직하게 다 말씀드렸다. 책 쓰기에 관심을 두게 되면 '눈먼 돈을 노리는 이들'이 다가올 수도 있으니, 꼭 알고 계셔야 하는 내용이었다.


내 책을 집필했던 과정도 자세히 보여드렸다. 집필 과정에서 작성했던 파일 목록에는 목차 작성 후 각각의 파트를 집필하는 데 며칠이 걸렸고, 어떤 과정으로 집필하고 퇴고 했는지 표시가 되어 있었다. 직접 그 파일들을 열어서 설명했고, 초안 완성 후 소책자 형태로 인쇄하여 퇴고했던 자료까지 다 보여드렸다. 책 쓰기가 진행되는 과정을 직접 볼 기회는 흔치 않다. 더군다나 소규모 오프라인 강의라, 바로 눈앞에서 자료들을 보고 만질 수 있었다. '책쓰기'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실현할 수 있는 목표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강의 중간중간 질문도 하시고 집중해서 들으시는 모습에, 강의가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게 순식간에 지나갔다. 호기심과 진지함으로 가득한 눈빛에서 책 쓰기에 대한 수줍은 열정이 느껴졌다. 잠깐의 쉬는 시간을 가지며 서른다섯 가지 질문까지 정리하여 유인물로 나눠드렸다. 책 쓰기를 위해 꼭 필요한 '생각 정리' 과정이었다.




감사한 후기들


책 출간의 경험이나 노하우를 상세히 공유해주셔서 좋았어요!
특히, 책이 되기 전 먼저 직접 프린트해 놓은 것을 보여주셔서 인상 깊었어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제가 궁금했고 알고 싶었던 출판에 대한 부분을 제대로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작가님의 열정적인 강의에 많은 힐링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좋았던 것
무겁게만 생각했던 나의 책을 만든다는 것에 한 발짝 나아간 기분이고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기쁨을 느낀 강의였습니다.

앞으로 더 알고 싶은 것
강의를 열심히 들으면 알고 싶은 것을 다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책 출판에 대해 몰랐던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만 했는데 구체적으로 실행할 것도 같아서 글쓰기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오늘 좋았던 것:
선생님의 경험을 솔직히 보여주셔서 큰 도움이 되네요. (글자화 시켜서 내 글을 검사)
*앞으로 더 알고 싶은 것:
SNS를 활용한 글쓰기 작가 되기 등등
어렵게 보이는 책 내는 과정을 쉽게, 다정하게 말씀해 주셔서 좋았습니다.
궁금했던 출판에 대한 내용도 알게 되어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음 시간에 배울 내용을 추가로 요청했더니,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강의 후기를 오픈채팅방에 올려주셨다.


"선생님! 요즘 글쓰기가 잘 안되어서 지쳐있었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그동안 써놓았던 초안으로 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가 이 근처 살아서요. 괜찮으시면 같이 식사하고 가세요."

첫 시간부터 식사 제안! 정말 감사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식사에 응하고 싶었지만, 왠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아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정말 감사해요! 그런데 제가 다음 시간에 강의할 것까지 다 이야기하게 될 것 같아요!

마지막 날 같이 식사하시죠!"


나이를 불문하고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열정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이가 들수록 배움의 소중함을 느낀다면 그 삶은 더 풍성하리라.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 그래서 더 가슴 뛰는


내 인생에서 이런 경험을 하리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예상과는 전혀 달랐던 시간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감사한 시간이었다. 너무나도 분명하게 '도움이 되었다'는 느낌. 강의를 들으러 오신 '예비 작가님'에게 꼭 필요한 강의를 해 드렸다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젊은 사람들은 쉽게 정보를 찾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대응하기도 힘들고 이에 대해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사람도 적다. 이 강의를 시작으로 해서 엄마들을 대상으로 '나를 다시 찾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어르신들에게도 꼭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상을 제한할 필요 없이,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어디든 가서 '쉽고도 다정한 강의'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내가 생각 못한 누군가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지도가 될지도 모른다.


설렘으로 시작된 하루가

생각지도 못한 감동과 따뜻함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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