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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평안하시길 6

책은 리듬을 타고

by 빛나다

나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글자 하나, 하나 새겨 있는 것이 신기하고 신난다. 자음과 모음이 만나 단어가 되고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이 마치 음표와 음표가 만나 음악이 되는 것과 같아 참 대단해 보인다.

그 대단한 와중에 기승전결이라는 리듬이 나도 모르게 시작되고, 끝이 나버리면 꼭 짝사랑 실컷 하고 마음 정리도 알아서 해야 하는 공허한 마음도 들지만 그것조차 책에도 신비주의가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대체되어 독서가 더욱 재미있다.


예전 나의 독서 습관은 한 권의 책을 모두 다 읽은 다음 다른 책을 선정하여 읽는 형태였는데 지금은 서너 권의 책을 가지고 비슷한 페이지씩 읽는 모습으로 바꾸었다. 하나의 책이 아니라 여러 권의 책을 통해 그 즐거움을 몇 배 더 느끼고 싶어서다.

즐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책상 앞에 책들을 나열해 놓고 손이 가는 대로 한 권의 책장을 연다. 그리고 그의 고유한 리듬에 빠졌다가 책을 덮고, 다른 책을 펼치는 것이다.


지금 내 책상 위엔 작법서, 일상 에세이, 여행 에세이와 판타지 소설책이 있다. 이들의 리듬을 대략 말해보겠다. 물론 나의 완전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작법서는 나를 학창 시절로 데려가 그때는 깨닫지 못했던 배움의 즐거움을 ‘솔~’의 음으로 조목조목 알려준다. 알려주고자 하는 열정이 ‘솔’로 표현이 되다 보니 집중하지 않을 수 없고, 종종 보이는 악센트에는 눈에 힘이 들어간다.

여행 에세이는 여러 음을 가지고 있다. 여행 전의 기대, 여행 중의 고단함과 경이로움, 그리고 아쉬움으로,

낮은 ‘도’에서 높은 ‘도’까지 빠지는 음이 없다. 특히 여행 사진을 함께 본다면 떠남에 대한 동경과 설렘, 생기가 돋을 것 같은 희망이 마구 솟아올라 ‘라’ 이상의 음은 단연 돋보인다.

판타지 소설 또한 분위기가 뒤처지지 않는다. 장단이 활발한 음표가 그려진 오선지에는 들쭉날쭉 정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둘러보는데 시간이 다 간다. 이 고조된 분위기를 좀 다스리고 싶다면 ‘도’부터 ‘미’까지 순환하듯 흐르는 일상 에세이를 펼친다. 열린 서랍장의 문을 닫듯이 정돈하고, 기운을 다한 음표들도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피곤한 눈꺼풀이 가라앉는 걸 확인한 다음 책갈피로 마침표를 찍는 것도 일상 에세이가 맡는다.


여러 책을 기웃거리는 방랑 독서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지금 이대로도 좋다.'

책들의 리듬을 알아보고, 거기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며 흥얼거린다면 나는 책을 책 그대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과 같으니 이 정도면 되었다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자체에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것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굳이 책에서조차도 찾지 못한다면 나는 어디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책에 새겨 있는 글자 하나, 하나가 신기하고 신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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