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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평안하시길 5

월요일 만찬

by 빛나다

“나 오늘 쫌 수고했다”


주말에는 업무에 대한 전부를 싹 다 잊어버리자 했던 다짐을 완벽하게 실천해서 그런지 월요일 오전은 리셋된 뇌에 업무 프로그램 조각을 일일이 끼워 맞추는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 오전에 놓치거나 실수한 업무를 만회하기 위한 작업과 오후에 할당된 업무를 함께 짊어진 자세가 애처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 아무리 월요일지라도 퇴근 시간은 온당하게 찾아온다.

‘나 오늘 왜 이러냐?’로 시작했던 하루에서 ‘닥치면 어떻게든 되는구나’로 초인 직장인으로 마무리가 된 나는 무사히 회사 정문 밖으로 나왔고, 그런 나에게 위로와 보상을 하는 데에 아끼지 않기로 한다.

올드한 듯 하지만 클래식하고, 소소한 듯 하지만 풍성한 차림을 대접받을 수 있는 곳.

답은 이미 정해졌고, 나는 곧장 분식집으로 향한다.


배고픔 앞에서 누군가를 동행해야 식당엘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은 사치라고 여기는 나는 자연스럽게 1인 식탁이 있는 자리에 앉아 주저 없이 3가지 메뉴를 주문한다.


살짝 불어버린 떡과 꼬들꼬들한 라면이 고추장을 기본으로 한 소스에 한데 어우러진 라볶이, 참기름과 참깨가 두둑이 보태어져 고소함의 극치를 달리는 김밥 한 줄, 야들야들한 만두피로 더없이 충만한 돼지고기를 품고 있는 고기만두 한 접시.

그들이 가지고 있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라는 3대 영양소에 과하다면 과한 나트륨의 합석은 종일 정체되어 있던 뇌와 굶주린 위장에 “흥분”과 “해소”라는 극적 감정을 반드시 경험하게 해 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보채고 싶은 마음을 누른 채 경건하게 내 순서를 기다린다.


식당 이모님이 들고 온 쟁반 위에 나만을 위한 요리가 제대로 담겨있는지 확인한다.

정확하다.

차려지는 음식들의 지극히 자극적인 색감이 기다림이라는 인고의 시간은 치워버리고, 쪼그라든 뇌주름들을 활성화 시키면서 손가락 마디마디에 명령을 하고 만다. 어서 젓가락을 집고 뭐든 입안으로 집어넣으라고.


그래 참았다. 많이 참았다.

시작부터 꼬였던 하루를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 하나 잘 풀어나갔고, 해내지 못할 것 같았던 업무를 결국 해내고 나서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다. 또한 내 순서임에도 다른 자리에 음식이 먼저 가는 걸 참아주는 배려도 감수하였으니 먹는 건 내 마음대로 먹어보자.


금방 불어버릴 라면부터 작업은 시작된다. 이미 라볶이 소스에 절은 라면이지만 한 번 더 젓가락으로 돌돌 말아 쑤욱 소스 한 바퀴 돌린 후 숟가락에 얹혀 한 올이라도 떨어지지 않도록 고이 모아 입안에 집어넣는다. 매콤하지만 그 어딘가에 섞여 있을 설탕의 단맛이 촘촘히 입안을 채울라치면 이미 식도로 넘어간 라면이 어서 따라오라고 신호를 보낸다.

이때, 미리 같은 소스에 몸을 담근 김밥 하나를 얼른 집어넣는다. 우엉, 단무지, 당근, 어묵이 밥알과 마구 섞여가면서 밥알의 달큰한 즙과 재료의 짠내가 두루두루 조화를 이뤄 쉽게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다음은 고기만두. 선택지는 세 가지.

하나는 단순하게 간장에 찍어 먹는 것. 두 번째는 김밥과 같이 라볶이 소스에 묻혀 먹는 것. 세 번째는 만두를 소스에 묻힌 후 라면으로 차~악 감아 그대로 입안에 모실 것. 난 이미 자극적인 것에 매달려있는 상태라 세 번째를 선택하는 건 당연하다. 만두피를 통한 라면과 돼지고기의 만남은 이상적이다. 소스에 배인 라면이 만두피 내부 영역을 침범하면 바로 돼지고기가 차오른 육즙으로 받아치기를 반복한다. 그러면 어느새 그들은 내 위장에 닿아 있다. 남들이 이를 두고 범벅이라 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온전히 맛을 느끼면 그만이고, 오로지 나만을 위한 만찬이니 누가 뭐라든 신경 쓸 일이 전혀 아니다.


그렇게 꼼꼼히, 정성을 다하여 “흥분”과 “해소”를 반복하고 나면 최종 마감은 “만족”이 차분하게 알린다.

이 시간은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니 담백하게 지금 헤어지자고.


월요일의 만찬은 그렇게 끝이 났지만, 이 풍만한 기분은 화요일에서부터 금요일까지의 생활을 지탱하는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월요일의 시작을 흐리멍덩하게 보냈을지라도 마무리는 분명하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였음을 보여줬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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