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도, 평안하시길3

개나리가 다가왔다.

by 빛나다

반려견 구름이와 산책을 나왔다.

올해 한 살인 구름이는 혈기왕성하여 앞으로 전진하는 모습이 꽤 가벼우면서도 힘이 있다. 반면에 그 뒤를 따르는 나는 볼록하고 단단한 주머니가 나란히 들어찬 종아리를 끌고 가느라 몸이 더디다. 무게 중심이 땅에 닿을 때마다 터벅터벅 소음을 더해주는 것이 몸 상태가 얼마나 둔한가를 실감하게 한다.


봄바람의 기운이 구름이에게 모두 쏠렸는지 걷는 보폭이 넓어지고 속도는 점차 빨라진다.

함께 지낸 지 1년이 넘었으니 당연히 익숙한 표정은 읽어줄 수 있겠지 라는 믿음으로

'엄마 좀 봐주라'

처량한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애는 애다. 본능에 충실한 채 내 손에 쥐어진 하네스 가슴줄이 팽팽해지면서 얼른 가자고 재촉한다.

1분 정도 잰걸음으로 발맞추어 나아가자 종아리를 부여잡고 있는 발목이 무책임한 걸음걸이에 대한 저항으로 뻐근한 통증을 쏘아댄다.

정중하게 몸을 숙여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주며 간신히 달래고는 고개를 든다.


길가에 개나리들이 가지에 노랑핀으로 장식한 것처럼 줄을 지어 자리 잡고 있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고개를 끄덕이고, 좌우로 리듬 타는 모습이 한가롭다.

마치 물이 흐르는 대로, 시간이 흐르는 대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흐르는 것들을 한 뼘 비껴서 냄새를 맡아보거나 손등으로 건드려보거나 혹은 살짝 발을 담가보고는 '오늘은 여기!' 마음에 든 자리에 잠시 머물기를 선택한 것처럼 모든 것이 가벼워 보인다.


고슬고슬한 땅이 마음에 들고 조그마한 돌멩이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으며 바람이 찾아오는데 번거로움이 없어 잠시 쉬어갈 곳으로 적당하다 여겼을 것이다.


어느 것 하나 거리낌 없는 자리에 앉아 충분한 햇빛을 마시고, 바람이 가져오는 세월의 박자에 귀 기울이다 때맞춰 사라질 것이다. 잊혀진다는 게 그리 슬픈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처럼.

내게도 그런 자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눈앞에 지나가는 것들을 찬찬히 훑어보다 맘에 드는 거 하나 있음 그것만 하나 쏙 빼어 펼쳐보기도 하고 끄적이기도 하며 기억하고 싶은 건 마음 한 곳에 담고 이제는 접어야 하는구나 싶을 땐 담백하게 접어 바람에 흘려버릴 수 있는 그런 자리. 나 또한 내가 그리 잊혀지는 것이 슬프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지끈한 종아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되겠지.


올 해의 개나리는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늘도, 평안하시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