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사춘기 입문에 들어선 열세 살 딸과 사춘기 끝물을 달리고 있는 열여섯 살 아들이 있다.
얼마 전 남매가 여자 아이돌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며 춤을 추고 있을 때였다.(이들은 사이가 꽤 좋은 편이다) 갑자기 춤을 멈춘 딸애가 제 오빠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오빠, 오빠 첫사랑은 몇 살 때 누구였어?"
아들은 종잇장 구겨지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각별한 사이라도 여동생이 첫사랑을 그것도 엄마 앞에서 물어보는 건 참 난감한 일이었던 것이다.
자식이 어려운 상황에 빠졌을 때 구해주는 것이 어미의 도리가 아닌가! 대신 대답을 해줬다.
"오빠 첫사랑은 당연히 엄마지. 오빠가 태어나자마자 엄마한테 반해서 한 10년은 엄마만 바라봤잖아. 엄마 껌딱지처럼 졸졸 쫓아다니고"
......
아들은 입을 다물었고, 음악도, 춤도 멈춰버렸다. 그러고는 공부한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뭘 잘못한 건가?)
내 첫사랑도 엄마다. 눈을 뜨자마자 아가야 하고 불러준 사람,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나에게 말을 걸어준 사람.
내가 태어났을 때 아빠는 많이 아프셨다고 한다. 그런 아빠와 함께 일을 나가야만 했던 엄마. 어쩔 수 없이 나를 집주인 아주머니께 맡겼고, 혼자 방에 있는 내가 울 때면 오셔서 분유를 먹이시고, 기저귀를 갈아주셨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잘 울지 않는 아기였단다. 어느 날 시골에서 손녀를 보러 오신 외할머니께서 방문을 여니 기운 없이 널브러져 있는 아기 하나가 있었다고 한다. 그날부터 나는 할머니와 시골로 내려가 초등학교에 가기 전까지 함께 살았다.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종종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밭일을 나갔다 돌아오면 애가 없어져서 여기저기 찾으러 돌아다녔어. 그러면 꼭 버스정류장에 있어. 엄마 기다린다고. 언제는 한 번 그렇게 엄마한테 간다고 떼를 쓰길래 너 혼자 가라 했더니 대문 앞에서 한참 서 있다 들어오더라. 그러면서 니 엄마 사진 꺼내 가리키면서 할머니 우리 엄마 맞지 하고. "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마도 나를 보러 온 엄마와 종일 함께 있다가 돌아가야 하는 엄마를 배웅하는 곳이 버스정류장이었나 보다. 그곳에서 또 와줄 엄마를 그리워하며, 엄마 얼굴을 잊지 않기 위해 사진 속 엄마도 함께 찾은 것 같다.
그렇게 그리워하고, 사랑해서 아이의 눈은 항상 엄마가 있는 곳만 향했었는데 그 마음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서툰 표현만 남아있다.
직장인 엄마를 둔 내 아이들도 나를 많이 사랑한다고, 함께 있고 싶다고 온몸으로 말해주었는데... 요즘은 엄마 사랑해라는 말을 듣기가 어렵다.
양심 없다는 거 알지만 서운하다.
나는 아들의 방문을 열고 당당하게 외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나의 엄마...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