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도, 평안하시길 10

언니가 울어서 울어버렸잖아

by 빛나다

한동안 힘든 날이 있었다. 하루, 하루 버티기 힘들어 이렇게 살면 뭐 하나 싶었고, 그때마다 나의 끝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 또한 무섭고 두려워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건 어서 빨리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고 흙으로 돌아가는 희망뿐이었다.


가족이든 친한 친구든 누구에게도 '나 지금 많이 힘들다'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만 아프면 될 것을 굳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그 감정을 전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마음과 말을 해버리는 순간 고통이 재발화되어 나를 더욱 괴롭힐 것 같다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렇게 꽁꽁 숨기면서 살다 보니 눈물도 함께 숨겨졌다. 영영 찾을 수 없을 것처럼.


19년 전, 스물여섯 되던 해에 만난 언니가 있다. 언니와 난 세 살 차이고, 우리는 서로의 이십 대, 삼십 대, 사십 대를 자주 혹은 드문드문 방문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다.


장녀인 나는 언니가 말하는 건 뭐든 멋져 보이고 대단해 보였다. 언니는 남녀노소 모두 다 좋아할 수밖에 없는 유쾌한 사람이다.

언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언니의 유머가 담긴 말을 따라 하고 언니가 읽는 책을 꼭 구매해서 읽었다.

그래서 더욱 나의 아픔을 언니한테 말할 수가 없었다. 말해버리면 유쾌한 사람에게서 멀어질 수 있으니까.


시간이 좀 지나 남 얘기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버렸다. 털어놓고 막 후회하려는 찰나 언니가 울먹였다.


"너를 오래 봐왔는데 왜 너는 항상 힘든 상황만 벌어지니? 너무 속상해"


언니의 눈물이 내 가슴을 쓰리게 적셔왔다. 영원히 사라졌다고 생각한 눈물도 가슴 곳곳을 따갑게 쏘아붙이며 흐르기 시작했다.

소리 내어 울어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못 할 정도로 오랜만에 꺽, 꺽 거리며 길게 울었다.


'이 사람은 내가 말할 때까지 나를 쭈욱 바라본 사람이었구나'


가족도 아니면서 나 때문에 눈물을 흘려준 사람, 나의 고통을 그대로 받아준 사람이라는 걸 온몸에서 알아버려 숨어있던 눈물이 기꺼이 바깥으로 나왔나 보다.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나의 슬픔을 온전히 바라봐줬다는 걸 빨리 알아챘다면 얼른 세월이 지나가기만을 바라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함께 눈물을 흘린 것보다 나의 고통이 더 많이 쓸려나간 걸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혹시 아무도 모르게 괴로움을 안고 있다면 주변을 한 번 둘러보는 건 어떨지 조심스럽게 권해본다. 함께 눈물을 흘려줄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한 번 크게 울고 나서 어색한 분위기 정리는 어떻게 할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말하면 되니까.


"언니(형이, 네가)가 울어서 울어버렸잖아!"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늘도, 평안하시길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