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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평안하시길 14

여행을 떠나요

by 빛나다

곧 있으면 남편은 혼자서 베트남 여행을 떠난다. 유튜브를 통해 그 나라의 음식과 가볼 만한 곳에 대해 공부하는 남편의 표정은 티브이로만 야구를 본 열두 살 남자아이가 처음으로 야구 경기장에 갈 때의 달뜬 것과 같다.


"해외여행 갈래?"


동네 시장에 가자는 듯이 물어보는 남편 말에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뻐끔뻐끔 그를 바라보는데

"반응이 왜 이러지? 그냥 나 혼자 갈래"


혼자 가고 싶으면 진작에 혼자 가고 싶다 말할 것이지, 아이들의 여권이 만료된 지 1년이 넘은 걸 뻔히 알고 있는 양반이 저러니 할 말이 없다. 뭐, 나도 별로 해외여행을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 혼자만의 여행을 꿈꾸는 어린 소년의 앞길을 막고 싶은 생각은 없다. (누가 보면 해외여행을 밥 먹듯이 가는 것으로 오해하겠다. 몇 년 만에 나온 얘기고, 비행기값에 놀라 쉽게 가자! 하는 집안이 절대 아니다.)

남편의 홀로 여행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여행은 다음 주로 다가왔다.


남편이 없는 5일 동안 나도 하고 싶은 걸 계획해 본다.


첫 번째로 베이지색 소파 위에 보헤미안 스타일의 소파 커버를 씌운다.

어디를 꼭 가지 않아도 그곳 분위기에 취할 수 있는 능력이 출중한 나는 얼마 전 아늑하면서도 나를 포옥 안아줄 소파커버를 장바구니에 넣어둔 상태다.


두 번째. 꽃집에 가서 프리지어 몇 송이를 사 예쁜 꽃병에 담아 식탁에 올려놓는다.

프리지어는 어릴 적 동네 언니가 좋아했던 꽃이다. 자주 놀러 가는 언니 방에서 향긋한 꽃향기가 그 작은 방을 가득 채웠고, 작은 탁자 위에 올려진 프리지어를 바라보는 언니의 눈동자도 향기로움으로 가득 찼다. 어린 마음에도 이 꽃은 언니의 남자친구가 선물한 것이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언니의 눈동자가 은은하게 내 가슴에 녹아들었나 보다. 봄이 되면 그렇게 프리지어 향이 그립다.


세 번째. 거실 한가운데에 책상 하나 놓고 그 주변을 에세이, 소설책을 둘러쌓아 놓기. 보헤미안 소파 커버를 씌운 소파 앞 바닥에 앉아 바로 앞에 넓은 책상, 왼쪽 편에는 에세이를, 맞은편에는 판타지 소설을 오른편에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책을 놓고 프리지어 향을 맡으며 독서를 하는 것. 이것이 내 마지막 계획이다. 거기에 따뜻한 커피 한 잔. 완벽하다.


어딘가를 가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고, 목적지 목록을 검색하며 경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소소한 여행이다. 내 취향대로의 여행. 난 이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이 세 가지는 남편이 있어도 할 수 있는 거지만 꽃과 보헤미안은 그의 성향과는 전혀 맞지 않아 대번에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돈 아까워!"


괜히 기분 잡칠 필요 없다. 여행 떠난 즉시 꾸미고, 남편이 집에 돌아와 거실을 돌아보며 내게 한마디 할라치면 바로 대꾸하면 된다.


"입 다물어! 해외에 돈 쓰고 온 자!"


어느 여행이든 가족, 연인, 친구라고 해서 누군가와 꼭 동행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또한 나의 여행 취향이 자그맣고 아기자기하다는 것을 굳이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을 이유가 없고 나도 그들을 애써 이해하지 않는다.


그저 여행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의 안위를 염려하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여행에 돌아온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나도 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야기 끝에 우린 꼭 하고 싶었던 이 말을 할 것이다.


"그건 정말 같이 보고 싶더라,

너무 맛있어서 네가 생각났어,

함께였다면 더 즐거웠을 거야"


혼자 하는 여행은 누군가를 향한 애틋함을 더욱 짙게 해 준다.

함께였으면 좋았을 것들은 혼자가 되고 나서야 깨닫게 해 주니 말이다.


나도 바깥으로 나도는 여행을 계획 중이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나 홀로 차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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