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돼!
열세 살까지 피터팬을 기다렸다. 피터팬의 그림자가 나를 찾아와 손을 내밀어주면 그를 따라 모험을 떠나는 소녀가 되어 우주를 돌아다니고 싶었다. 피터팬의 네버랜드가 아닌 나의 상상으로 태어난 수많은 별들을 만나 함께 더 깊고 오묘한 우주로 빠져드는 것, 이것이 내가 바라는 모험이자 여행이었다.
그렇게 모험을 꿈꾸던 아이는 나이 먹은 사람이 되어 회사를 다니고, 쉬는 날이면 되도록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 집순이로 살고 있다. 뒤죽박죽, 엉망진창, 다사다난한 회사 생활에 온 에너지를 쏟고 나면 집에서는 그저 아무 생각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게 그나마 기운을 차려줄 것만 같아서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몸이 늘어지면 늘어질수록 개운해지는 것이 아니라 온몸이 무겁고, 다음 날 회사를 갈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리기만 했다. 그렇게 나는 소중한 휴일을 얼빠지게 시간만 축낸 것이었다.
나는 내 몸과 마음이 바라는 진짜 휴식을 찾아야 했다.
지난해 차박을 하는 사람들의 유튜브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내가 본 내용은 대부분 여자 혼자서 하는 차박이었다.
캠핑장이나 노지에 차를 세우고 도킹 텐트나 사이드 타프를 설치한 후 간단한 식사 준비를 하고 화로대에 장작을 넣고 불을 때우는 모습을 보며 "그래! 내가 원하는 건 이거였어!" 외쳤다.
어딘가를 떠나지만 그 떠남이 굳이 무언갈 봐야 하는 것이고, 무엇을 체험해야 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시간을 소유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휴식이라고 단정 지었다.
몇 년 전 교통사고를 겪은 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생활을 고집했던 마음을 접고 경차를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은 혼자서 떠나는 것에 용기가 나지 않아 딸아이와 함께 캠핑장을 이용한 겨울 차박을 다녀왔다.
차 안에서 침낭을 덮고 잠이 든 아이를 두고, 차 밖에 놓아둔 의자에 앉아 시커멓고 차가운 겨울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깊고 반짝이는 별들이 처음엔 꽤 멀리 있는 것처럼 아득했지만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내 눈앞에 바짝 다가온 것처럼 나도 하나의 별이 되어 함께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열세 살, 우주 한 곳에 머물며 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시간을 드디어 가지게 된 것이다.
불현듯 그런 내가 참 소중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하나의 별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 나를 진심으로 아끼고 싶었다.
'그래! 이제 이런 시간을 가끔이라도 가져보자. 매일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내가 상처받은 건 하나도 봐주지 않았잖아. 이젠 나도 나를 돌봐줘도 돼'
내게 맞는 여행 계획을 하늘에 대고 그려보았다.
복잡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게, 나만을 생각하고 밤하늘이 곁에 있는 여행.
피터팬이 손 잡아 주지 않아도 나는 나의 우주를 거닐기 위해 그렇게 떠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