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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잊어요.

by 빛나다

주말이 다가오면 일정 하나가 준비되어 있어 어서 주말이 오기를 고대한다.


토요일 아침 5시, 자리에 일어나 거실로 나와 어둑한 창밖을 바라본다.

아직 머물고 있는 달빛과 가로등에 의지하며 도로를 지나가는 몇 안 되는 자동차들이 보인다.

길가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직 새벽을 마주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 되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는 바로 옷을 두둑이 차려입고 집밖으로 나와 걷는다.

우리 집은 동네 이름이 시작하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나의 목적지는 동네 이름이 끝나는 지점이 된다. 거창하게 한 바퀴를 도는 건 아니고 일자로 쭈욱 걷다가 도로 쭈욱 걸어 돌아오는 여정이다. 가끔 마음에 변덕이 들어서면 이 길, 저 길 돌고 돌아 집에 돌아오곤 한다. 그러면 대게 두 시간 가까이 걷게 된다.


걸음이 시작되면 하늘과 땅을 번갈아가며 시선을 둔다.

언제부턴가 쌀쌀해진 바람의 온도와 그에 걸맞은 퍼런 하늘 그리고 별 하나 반짝이는 모습이 딱 겨울이구나 싶다.

땅은 어떠한가. 나부끼는 낙엽들이 제 땅 어디를 돌아다니든 상관하지 않은 채 겨울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참 의연하다. 그 세계를 걷고 있으면 늘 두고 있는 마음 씀씀이를 잊을 수 있어 참 좋다. 왜 잊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걸으면 그렇게 된다는 걸 걷고 난 후 알게 되었을 뿐이다.


[누군가의 누군가라는 것, 그래서 누군가의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되는 건 언제나 기운을 내야 하고, 강한 사람이어야 하는, 본인은 힘들다는 소리를 하면 안 되는 사람으로 자라나는 것 같다. 음... 나를 말하자면 말이다. (물론 누구도 내게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말라고 한 사람은 없다. 워낙에 예민한 신경의 소유자다 보니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주는 올가미라고 보면 된다.)

누군가의 넋두리와 아픔을 들으면 사람인지라 해결해주고 싶고, 원하는 걸 다 해주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아 그저 들어주기만 한다. 그런데 그런 시간이 꽤 오래전부터 현재까지 계속되니 어느새 지친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 내 마음을 너덜너덜하게 하고 무거운 짐을 얹은 것처럼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나도... 가끔... 사는 게 힘든데...'


말하고 싶지만 그들은 내게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가끔은


'그 정도 가지고 힘들다고 하면 어떡해!'


내지르고 싶지만 목구멍을 바로 막아버린다. 사랑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런 날들이 지속되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 내가 얼마나 강한 사람이었으면 주변 사람들이 내게 아프고, 힘든 얘기를 언제든지, 얼마든지 할까?라는...


그러면서도 나는? 만약에 내게 고된 날들이 온다면? 누구에게 말을 할 수 있을까? 말을 한다고 해도 편히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알아버렸는데! 듣는 사람의 마음이 어떨지, 만약 그 이가 처음엔 호의의 마음으로 들어줬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에게 난 어떤 사람이 되어버릴지 알아버렸는데...]


새벽이 다하기 전부터, 새벽이 다하고 나서 까지 걷는다. 바람이 스치고 낙엽이 돌아다니는 소리만으로도 충분하여 이어폰은 필요치 않다. 땅을 밟고 땅의 차가움이 발목으로 올라오는 걸 느끼며 걷는다. 그러면 이런 생각만 든다.


'춥다! 아무 생각도 못 들게 너무 춥다!'


그리고 다 걷고 나선 여유있게 중얼거린다.


'어쩜 나, 땅을 밟은 게 아니라 쌓였던 마음을 밟아버린 것인지도 몰라.'


그렇게 또 강한 사람이 돼버려 실없이 웃어버린다.


나는 그게 또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 주말 새벽을 기다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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