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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변태가 맞군요

by 빛나다

"선생님 저는요. 정말 이 일하고 안 맞아요. 모든 것에 온 신경을 써야 하는 거 너무 힘들어요"


"그럼 너무 힘들어서 도망간 적은 있나요?"


"아뇨. 단 한 번도 그런 적 없어요"


"일이 모두 끝났을 땐 어떤 기분이에요?"


"기분이... 너무 좋죠?! 이번에도 해냈다는 성취감? 뭐 그런 기분이 나서요. 거기에다 팀장님이나 과장님이 칭찬마저 해주면 완전 끝내주죠. 꼭 인정받은 것처럼요."


"그리고 또 다음 일도 똑같이 온 신경을 쓰고요?"


"네."


"왜요? 너무 힘들다면서 왜 그렇게 하는대요?"


"어쨌든... 제 일이니까요. 그건 저만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음... 제가요. 변태를 잘 알아 보거든요. 지금 제 앞에 있는 분이 딱 변태시네요."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마다 만나는 선생님과의 대화다. 내 이야기를 항상 잘 들어주는 선생님. 어느 날 그녀에게 내가 26살부터 약 20년간 근무한 기간 동안 업무에 온 정성을 다하지 않은 날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이젠 지친다는 말과 함께 투정을 부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내게 변태라고 했다.


"봐요. 당신은 너무 힘들다고 해서 도망친 적이 없어요. 그리고 일한 다음엔 이제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혹은 그만할 거야라고 한 적도 없어요. 게다가 성취감을 느끼고, 거기에 자신밖에는 그 일을 할 사람이 없다고 말하잖아요. 이러니 내가 당신을 변태라고 말할 수밖에 없죠. 음... 당신 같은 분들의 성향을 대게 뭐라고 말하는지 아나요?"


"..."


"완벽주의자"


내가 완벽주의자? 말도 안 된다. 난 항상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보다 놓치는 게 많고 모자람이 많아 더 노력해야 겨우 따라가는 사람이다.


"당신에 대한 동료의 평을 들은 적이 있나요?"


스쳐 지나가는 말들이 있다. '너무 깊게 들어간다', '집착이 심하다', '그렇게까지?'


"완벽주의자들이 대게 그렇더라고요. 항상 모자라서 더 열심히 한다고. 더욱이 가끔 틀려도 되는데 틀리는 건 못 견뎌하고"


선생님의 의미심장한 미소가 내 마음을 꿰뚫른다.


아! 나... 변태구나.

그런데 왜 기분이 나쁘다거나 나 자신이 이상한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마치

아!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특별하구나 하는 쾌감이 드는 것처럼. 정말 변태인가 보다.

그렇다고 내가 완벽주의자라고 인정하진 않는다. 나는 여전히 정신없고, 빠뜨리는 게 많으니까.


그 대화가 있은 날로부터 나는 내 일에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일 앞에만 서면 일에 매달린다고만 여겼던 그 업무를,

업무에 집중하는 데에 쓰이는 에너지가 고갈되면 힘이 다 빠져버렸네나 힘들어 죽겠다는 표현 대신 하얗게 불태웠다라거나 오늘의 열정을 모두 쏟아부었다. 멋진 나! 하며 나를 뿌듯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망 다니고 싶었던 일, 실은 내가 감당하지 못할까 봐 지레 겁먹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리고 그런 내가 자랑스러워 내게 외친다.


"나는 변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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