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시간 출근을 하는 게 습관이 되어 요즘도 계속해서 두 시간 일찍 집을 나선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전날 적어둔 오늘의 할 일 목록 수첩을 꺼내어(아날로그적 사람임) 정한 순서대로 업무를 시작하고 바짝 열을 올리며 집중한다. 그리고 저녁 여섯 시, 팀장님과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고 퇴근을 한다.(^^ 큰 업무를 하나 얼마 전에 끝낸 터라 여유가 살짝 생겼다~)
집으로 가는 길 나는 집에 가자마자 해야 할 집안일을 순서에 맞춰 머릿속 시뮬레이션을 그려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식탁의자에 가방을 내려놓고 아이들의 저녁식사 준비, 쌓아 올린 빨랫거리 세탁(물론 얘는 세탁기가...), 반려견 구름이가 어질러놓은 바닥 청소(얘도 청소기가...) 그리고 설거지와 구름이 산책시키기가 끝나면 욕실로 가 하루의 묵은 때를 따뜻한 물로 씻어 내린다.
보통 이때가 저녁 아홉 시 삼십 분쯤 된다. 물기를 털어낸 머리칼에 드라이어 바람을 갖다 대고 거울을 마주한 나는 자기 전 한 시간이라도 책을 읽어야지 마음먹는다.
이제 아이들은 제 방에 들어가 잘 준비를 하고 있고, 나는 자유다.
올해 이사 오면서 욕심을 내어 사들인 소파에 등을 대고(그때의 물욕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서너 권의 책을 옆에 둔 채로 실내등의 잔잔한 빛과 함께...
잠이 들고 말았다.
쪼르륵
두시 사십 분. 어찌 된 일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열여섯 아들이 목이 말라 잠을 깼다며 정수기 앞에 서서, 물 한잔을 들이켜고 있다.
나... 또 잠든 거야?
엄마 그럴 거면 그냥 방에서 편하게 자
옆에 앉은 아들이 내 다리 위에 누워있는 구름이의 등을 쓰다듬는다. 웅크리며 나와 함께 잠든 구름이의 모습이 꽤 불편해 보이지만 이 녀석 마음은 그렇지 않은지 몸을 펴지 않는다.
아들아 구름이 좀 안아주고 있어라
소파에서 몸을 빼고 주방으로 가 찬물 한 잔을 들이켠다. 식도, 위장으로 흐르는 찬 기운이 퍼뜩 정신을 깨게 한다. 그 사이 아들은 구름이를 안고 제 방으로 들어간다.
주방 맞은편 창밖을 바라보는데 차도를 지나가는 자동차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이 시간을 잠으로 보낼 순 없다는알다가도 모를 의지가 들어선다.
캠핑을 위해 사둔 무드등 두 개를 꺼내 소파 팔걸이 가장자리에 두고, 카페인이 들어있지 않다고 하는(역시 검색이 최고~) 루이보스 티백을 꺼내 투명한 유리컵에 툭! 뜨거운 물을 부은 후 소파로 가져간다. 아득한 무드등의 빛과 루이보스 향에 누군가의 글을 읽는 내 모습은 완벽하게 아늑하다. 언제 형 방에서 나왔는지 구름이가 어느새 내 무릎에 몸을 기댄다.
잠은 이미 떠난 지 백년이 된 것처럼 몸과 마음은더없이 맑다.
뜨거운 찻잔은 곧 따뜻해지고, 차가워지겠지만 다시 뜨거운 물을 내리면 된다. 이 시간은 아무도 날 방해하지 않으니 모두가 좋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