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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불순한 마음

by 빛나다

책을 여는 순간, 책 첫 장을 읽는 순간 책과 맞닿은 손가락 끝에선 미세한 전율이 흐르고 그것은 순식간에 내 뇌에 닿아 짜릿한 기분을 맛보게 해 준다.


누군가의 삶을 혹은 누군가가 품고 있던 생각을 공식적이면서도 우아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에 기쁜 미소까지도 나온다.


살면서 이건 이래서 안돼 저건 저래서 안돼 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나이를 먹은 어른이라서 호기심을 자제하고 절제하는 마음을 키우는 데에만 힘을 써서 그런 건지 누구 눈치 하나 보지 않고 자유롭게 그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것도 무려 이백장이 넘는 상세한 삶을 본다는 건 내게는 매우 설레는 행위이다.


마치 일탈을 절대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이 일탈을 위해 도약하는 첫 발딛음이라고나 할까?

거기에다 지금껏 내가 사용하지 않은 언어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비유하는 글귀를 보자면 그게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그건, '궤적'이나 '천착'과 같은 단어를 만나 국어사전을 찾는 나의 무지함에 잠깐 부끄러워했다가도 지금부터 나도 이제 알고 있는 단어가 되었음에 지식인이 된 것 같은 으쓱함과 언젠간 나도 이 단어들을 자연스럽게 쓸 날을 기대하는 마음이 그 신남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저 즐겁기만 한 건 아니다. 이 작가님에겐 있는데 나에겐 없는 특별한 표현력에 마음앓이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끝엔 줄곧 모든 것에 조신한 모습을 지키던 나는 남몰래 숨겨왔던 질투라는 본심을 드러내며 과감하면서도 철없는 말을 내놓는다.


"이 작가님은 천재!

나는 즐기는 노력형!

천재는 노력하는 자와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지! 암 그렇고말고!"


누가 보면 엄청 노력하며 그 시간마저 사랑하는 글 쓰는 이로 알겠지만 나 스스로가 그때 그런 거라면 그런 것이라고 최면을 걸고 마음껏 질투의 화신이 되는 것이다.


살면서 이토록 내 감정에 솔직한 순간이 얼마나 될까?

사람들이 말하는 평판 위에 놓인 나는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하는 걱정에, 진짜 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내가 은밀한 속을 드러내며 즐거워하는 것이 책을 읽는 그 자체이다.


그에 대한 불순한 마음, 나를 설레게 하는 그 첫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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