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평온하게 행복하게

by 빛나다

짧은 기간에 우울했다. 아니, 외로웠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혼자구나 라는 생각만 가득했으니까. 그래서 마음 한 자리가 춥도록 쓸쓸했고 이런 운명을 타고난 나의 끝은 어떻게 될까란 말을 되뇌었다. 그렇게 가슴 가득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둔 채로 모든 것을 대했다.


"공연 같이 볼래?"


회사 선배의 제안으로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체코소년합창단 보니푸에리의 내한공연을 보게 되었다.

크리스마스이브 전날에 있는 공연은 가족 단위의 관객들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어두운 실내 공연장에서 선배와 나는 자매처럼 그들 사이에 섞여 앉아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아 베 마 리 아


소년들의 미성이 양옆에서 들려왔고 선배가 손짓으로 왼쪽 좌석 끝에 있는 계단을 가리켰다. 소년들이 줄을 지어 무대로 향하며 아베마리아를 부르는 것이다. 오른쪽 좌석 끝 계단에서도.

그들의 나직한 걸음걸이와 울림이 고요한 목소리가 공연장 전체를 애달프게 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 가슴에 닿았을 때 격렬한 성스러움이 된 상태여서 나는 온전히 받아들이지를 못한 채로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외로워서가 아니라, 쓸쓸해서가 아니라 그저 노래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렇게 공연 내내 눈물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고 그들의 음악을 보고 듣고 가슴에 담았다.


"어땠어?"


선배와 나는 눈물을 훔치고 끝난 공연을 아쉬워하며 자리에 일어났다. 선배는 이미 내 마음을 알고 있다. 나는 말간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선배와 나는 선배의 동네 산책길을 밤늦도록 걷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토요일의 산책길은 반짝이고 흥겨운 거리와 카페에 마을 사람들을 보낸 터라 한적하고 조용했다. 그 길을 두 여자는 걷고 또 걸었다.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숨만 쉬어도 좋은 서늘한 풍경 안에서 나는 공연장에서 울고 난 자리에 딱 하나 남은 감정을 터뜨렸다.


"평온하게 행복하네요"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나는 다시 외롭고 쓸쓸해질 수도 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버거운 일거리 또는 이른 갱년기 혹은 관계의 불균형 등등) 언제고 나타날 수 있는 마음.


그래도 지금은,

아직 남아있는 평온한 행복으로 잘 버티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유튜브 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