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세이를 대하는 마음으로 읽다 잠깐 혼동이 왔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여행에세이는 어떤 목적지를 향한 설렘, 그곳에서의 감동과 그것으로 인한 지난날의 삶에 대한 성찰, 그리고 다시 돌아감에 대한 희망메시지 혹은 삶을 향한 의연함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책은 내가 그렇게 예측할 수 있는 내용의 책이 아니었다.
뭐랄까? 떠남으로써 터놓을 수 있는 마음과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을 누가 볼까 걱정하는 마음 없이 나만이 볼 수 있는 일기를 펼쳐본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래서 보이는 풍경이 아닌 작가의 마음 풍경을 거닐다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발자국을 떼었을 때 내가 그리워하는 그 사람이 떠올랐다.
할머니.
어릴 적부터 열아홉 수능이 끝난 후 3개월까지 내 곁에 계셨던 할머니는 항상 얇고 긴 머리카락을 동그랗게 말아 은비녀로 꽂고 연분홍색 니트조끼와 같은 색 계열의 긴치마를 입으시고는 베갯잇 실밥이 터진 곳을 차분히 바느질하셨다.(할머니를 생각하면 언제나 그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항상 단정한 모습으로 아침을 시작하시고 깔끔하게 저녁을 마무리하시는 할머니는 종일 손에서 일을 놓지 않으셨고 그런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꼬마 여자아이는 할머니 곁에 항상 붙어 지냈다.
"우리 하은이가 만든 반지야?"
할머니의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에 껴진 꽃반지가 할머니가 기뻐하는 표정 가운데에서
활짝 펴있다. 그때의 계절이 언제였는지, 내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건 할머니는 손녀딸을 데리고 나물을 캐러 산으로 올라가 나물을 캐셨고 옆에 놀던 손녀딸은 혼자 놀기 심심해 너른 한 꽃밭을 보고는 꽃 하나 꺾어 할머니 손을 잡고는 꽃반지를 끼워 주고는 손녀에 대한 대견함을 마음껏 표현하시는 할머니의 표정을 가슴 깊숙이 저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머니는 나를 대견해하며 오래도록 함께 사실 줄 알았는데 그 오래도록은 할머니의 병환을 선택했다. 돌아가시기 전 몇 개월을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시고는 어느 날 새벽, 나의 베개를 단정하게 바느질해 주시고 밤이 오자 깔끔하게 나의 책상 서랍장을 정리해 주셨다. 그리고 다시 고통의 시간을 걸으시고는 돌아가셨다.
할머니 살아 계셨을 때, 아프다고 다리 좀 주물러달라 부탁하셨을 때, 통증으로 잠 못 이루는 날들 자식들은 찾지 않으시고 외손녀딸만 찾아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실 때 그때 할머니에게 좀 더 잘해 드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랑한다 말해 준 적 없지만 눈빛으로 모든 사랑을 표현했던 할머니의 마음을 가슴 깊숙이 묻어두었다 왜 이제야 꺼내놓고 눈물을 흘리는 걸까?
후회와 그리움이 섞여 눈물이 되고 만다.
나는 할머니가 보고 싶다.
여행이 꼭 새로움을 마주할 때의 설렘만을 가져오는 건 아닌 것 같다. 어딘가를 향한 걸음이 어느새 마음을 여행하게 되고, 구석구석 걷다 보니 잊고 있던 그리움이 머리, 손, 다리 곳곳에 묻어나 그 향에 취할 수도 있다는 걸. 마지막 책장을 덮고 고개를 끄덕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