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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소년

by 빛나다

퇴근을 하고 집에 가면 아들이 반려견 구름이를 안고 반겨준다. 그리고 아들의 이 말이 하루의 고단함을 위로해 준다.


"오늘도 많이 힘들었지? 얼른 쉬어 엄마"

아이는 내가 씻고,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 마음의 무거움을 모두 털어놓을 때까지 인내심 있게 구름이를 안고 기다려준다.(구름이는 내게 오려고 아이 품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다) 잠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아이를 바라보며 웃으면 그제야 구름이를 안던 팔을 풀고 내 옆으로 다가온다. 구름이는 아까 못했던 나의 퇴근 환영식을 열정적으로 몸으로 표현하고, 아이는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보더니 그 작은 강아지의 애정표현이 기특했는지 한마디 한다.


"엄마, 구름이는 세상에서 엄마를 제일 사랑하는 것 같아"


"응 그런 것 같아"


슬며시 아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다시 창밖을 바라본다. 검은 하늘, 반짝이는 별 하나 아래 퇴근길을 서두르는 차들이 지나가고 있다.


"아들, 엄마 오늘 엄청 바빴어. 그래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어"


아이도 함께 창밖을 바라보는 게 창문을 통해 보인다. 그 조그맣고, 귀여웠던 아이는 어디로 가고 넓은 어깨와 훌쩍 커버린 소년 하나가 우뚝하니 앉아있다.


"엄마 오늘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푹 자. 내가 알아서 다할게"


소년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에게 기댄 엄마의 머리가 편안하도록 몸을 뒤로 젖혀준다.

아이가 이렇게 컸구나. 착하고 예쁘게 커주었구나... 엄마로서 잘해준 게 없는데, 매일 일 때문에 바쁘다고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아이가 너무 고맙게도 배려있는 사람으로 자라주고 있구나... 울컥 가슴이 뜨겁게 차올랐다.


"아들 뭐 필요한 거 없어? 엄마가 고마워서 그래"


아들이 머뭇거리며 말을 꺼낸다.


"음... 나는... 그냥...

용돈을 올려줘"


소년은 도로 아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엄마! 엄마는 꼭 손주를 안 봐도 되지?"


함께 식사를 하다 아들이 뜬금없는 말을 한다.


" 응? 그래도... 보고 싶지 않을까? 왜?"


"난 결혼하면 굳이 아이 낳을 생각이 없어서. 애 키우는 거 많이 힘들잖아"


"그럼 엄마가 키워줄게"


" 아니 그런 것도 있지만 경제적이든, 뭐든 보면..."


" 아... 그렇구나... 네가 그렇다면 뭐... 근데 나중에 결혼하면 마음 바뀌어질 수도 있는데"


"그렇지. 그런데 지금은 그렇다고"


...


전 오늘 제 아들이 열입곱이 아니라 스물일곱인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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