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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다 Apr 21. 2024

일단은.

탕비실 내에 있는 정수기 앞에서 (같은 부서 다른 팀) 팀장님이 물을 마시기 위해 기다리는 것도 모르고 한참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다 후배의 눈짓으로 팀장님을 보게 되어 얼른 자리를 비켜드렸다.


" 아! 죄송합니다. 팀장님"


"응? 뭐가? 죄송할 게 뭐 있는데?"


입사 초기 때부터 본 선배님이기도 한 팀장님이고, 평소 농담도 즐겼던 선후배 사이라 순간 장난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제 눈부신 미모가 팀장님의 시야를 너무 부시게 해서?"


"..,.."


어이없어하는 팀장님 멈칫, 당황해하는 후배의 띠용하는 표정에


"이게 진짜 죄송한 상황이네요. 죄송합니다."


사과했더니 이내 정신 차린 팀장님은 이 한 마디만 하고 지나간다.


"세월이 참..."




다들 믿으시겠지만... 스무 살의 나는 남자 동기, 남자 선배들과 눈도 맞추지 못하는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다(여중, 여고를 나온 나는 성격마저 소심쟁이였다.). 그건 스물여섯, 이 직장에 발을 들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누구보다 뻔뻔함이 철철 흐르는  여인네가 되어 있다.

오글거림의 대사는 물론이고,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게.

나이를 먹으면(나의 기준) 그렇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숨겨왔던 본능이 이제야 눈을 뜬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뻔뻔함을 없앨 생각은 아직 없다. 예전과 다른 색다른 나를 만나는 즐거움 때문일 수도,  나의 뻔뻔함의 끝이 어디까지일지에 대한 호기심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일단 해보는 걸로.(...분위기 봐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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