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이면 꼭 발걸음을 하게 되는 곳이 있다. 어떤 목적이 있어 가는 곳이 아니라 일상 중 하나인 순전한 방문의 목적으로 들르는 곳. 동네 서점.
우리 마을에 있는 서점은 대형 서점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작은 소규모의 서점도 아니다. 카운터에서 책 재고를 확인하고 있는 서점주인과 책장의 책을 정리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책 위치를 알려주기에 딱 적당한 크기의 서점이다.
서점 출입문을 열면 가장 가까운 판매대에 있는 책들을 훑어본다. 서점주인의 책 성향을 넘겨짚어 볼 수 있는 장소로 그만큼 적당한 것이 없다.
따뜻하면서 느긋한 분위기를 풍기는 연노랑의 조명 아래 첫 번째로 눈에 띄는 책 분야는 에세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을 엿보기에 안성맞춤인 책. 마구 다그치지 않고, 편안한 벤치에 앉도록 하여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그것이 그렇게 질리지 않아 계속 들어주고 싶어 떠날 줄을 모르게 하는 책. 그래서 서점 주인은 서점에 찾아오는 이가 바로 맞닥뜨릴 수 있게 에세이를 출입문 바로 앞에 내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갔지만 단 한 번의 눈길이, 한 순간의 손길이 닿은 에세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쉬운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 준다. 글에 대한 나의 편견이 아직도 남아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다.
에세이라 하면 나의 뇌를 귀찮게 하지 않고, 물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단순하고 쿨한 글로 여긴 것에 비해 뇌와 가슴에 진득하게 남아있는 여운은 그리 쿨하지 못해 한참을 떼어내는 시간으로 보내는 게 부지기수이다. 완전하게 깔끔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다시 한번 주변을 눈여겨보게 되는 관찰력을 생성시키는 생명의 힘을 가졌다고나 할까? 에세이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그 작은 책들이 일일이 확인받듯 증명한다.
예전부터 에세이 책들을 뒤적이진 않았다. 누군가의 생활, 특별한 일상과 상념들의 집합체가 그것이고, 굳이 그것을 내가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생활 어디에도 에세이가 끼어들 자리는 한 곳도 없었다. 지금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기준에 의한 체크를 통해 고칠 건 고쳐서 변하고 싶은 삶을 지향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도서 분야는 자기 계발서라고만 생각했다. 자기 계발서만이 지난 과오를 완전히 덮고, 새로운 사람으로 신세계를 맛볼 수 있을 것이란 착각에 빠진 날들.
자기 계발서는 그렇게 될 것이란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으나 나의 터무니없는 독서 세계는 그리 새기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스스로 옭아매며 지내왔다. 매번 나를 다그쳤고, 계획대로 하지 않으면 ‘내가 그러면 그렇지’ 한숨을 토해내며 못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결국 자기 계발서를 원망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야말로 나를 매섭게 다그친 건 책이 아니라 나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남 탓, 책 탓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책에 대한 편파적인 생각이 그렇게 책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말았다.
“이거 한 번 읽어볼래?”
지인이 건넨 여행에세이가 내 책상 위에 올려진 이후 전과 다르게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꽤 느려졌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라 많은 사진들도 곁들여 있어 사진을 살펴보는데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작가의 숨소리가 들려와 차마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함께 숨을 쉬었고 함께 보았고, 감정을 공유하였다. 그러기를 2쪽, 5쪽, 10쪽, 103쪽 책장을 넘기는 내내 반복하다 보니 내가 작가가 되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잊고 있던 감정들을 너른 하게 늘여놓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설렘이 뜻밖이었고, 실망으로 이어졌던 기대감이 정말 기대로 다가왔다.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무리해서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알아서 머물고 있는 글자들이 맹랑하기도 했지만 고맙기도 했다. 마치 나를 위해 남아준 것처럼 구는 글귀들이 퍽 다정했다. 이것이 에세이를 만난 첫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