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플리(preply)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

두 명의 하자라족 소녀와 한 명의 타지크족 아주머니 이야기

by 송호림

10여 년의 중앙아시아 떠돌이 생활을 청산한 지도 어연 두 달이 흘렀다. 우룸치 2년 동안 위구르어, 사마르칸드 4년 동안 우즈베크어는 거의 완벽히 숙달했지만 본래 목표했던 타지크어 학습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지 못한 점이 끝내 아쉬웠다. 그래서 한국에서라도 개인 튜터를 알아보던 와중에 외국어 교습자 중개 플랫폼 프레플리(Preply)라는 웹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다만 내가 찾고 있던 튜터는 타지키스탄 출신의 타지크어 교사였다. 안타깝게도 프레플리에선 '페르시아어' 카테고리 밖에 선택되지 않았다. 페르시아어하면 보통 이란 이슬람 공화국에서 사용되는 페르시아계 이란어 방언을 의미하기 때문에 조금 망설여졌다. 나는 이란에 가본 적도 없고 이란어는 내게 딱히 필요하지 않다. 모두 같은 페르시아어라 할지라도 타지크어와 이란어는 사용하는 어휘, 발음, 억양, (구어체) 문법이 조금씩 다르다. 중앙아시아 사료들은 대부분 부하라-사마르칸드 방언으로 작성된 까닭에 이란어보단 타지크어를 배우는 편이 더 유리하다.


몇몇 튜터들을 검색해 보았는데 경력이 화려한 '슈퍼 튜터'들은 대부분 50분에 2만 원 남짓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중앙아시아 연구라는 마이너 학문 분야에 종사하는 나로서는 단돈 만 원을 투자하는 것도 현재 버거운 실정이다. 따라서 만 원 이하의 튜터를 구해보기로 했다. 그러자 대여섯 명의 튜터들이 검색되었다. 아무래도 내가 남자이다 보니 일대일 대화에서 남자와 수업하기는 좀 불편함(?)이 있어서 일부러 여성에게 배우고자 했다.


처음 만난 선생님은 하자라족 여성이었다. 그녀는 터키에 살고 있었는데 대화를 해보니 낯설게 들리는 이란어 억양을 쓰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유소년기 2년 남짓 살았을 뿐이고 이란에서 성장기 대부분을 보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22살로 나이가 너무 어렸다. 영어는 곧잘 구사했지만 나는 영어로 페르시아어를 가르치는 튜터를 구하기보다 순전히 다리어 혹은 타지크어만을 사용하는 교사를 원했다. (영어를 몰라도 갖가지 노하우를 이용해 기똥차게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만난 아프가니스탄 여성은 아프간 북부 자우즈잔 주 세베르간 출신의 타지크족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처음에 소개할 때는 본인을 북부 아프가니스탄의 중심도시 마자르이 샤리프(Mazar-i Sharif) 거주자라고 했지만, 내가 우즈베크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모습을 보고는 세베르간 출신임을 밝혔다. 세베르간이면 아프간 우즈베크인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지금은 터키로 망명한 도스툼 장군의 정치적 고향이기도 하다. 아주머니는 자신의 모친이 우즈베크인이기 때문에 다리어만 아니라 우즈베크어도 원활하게 구사한다고 했다. 과연 들어보니 우즈베크인의 억양과 발음을 제법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다리어 발음은 내가 알아듣기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즉 그녀가 우즈베크어를 구사하는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쉬운 페르시아어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구열 넘치는 K-POP 광팬 하자라족 아가씨를 만나다


셋째로 만난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페르시아어 튜터는 21살 하자라족 아가씨였다. 그녀의 외모만 보았을 때 전혀 그 나이대 또래로 여길 수 없었다. 솔직히 30대 초반 정도로 느껴졌는데 실제 대화를 해보니 BTS와 블랙핑크의 열혈 팬이라고 했다. 또 그녀는 카불 대학교에서 다리 문학을 전공했지만 탈레반 정권 수립 이후 대학을 그만둬야 했다고 크게 아쉬워했다.


과거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만난 하자라족 소녀들 역시 학구열이 대단했는데, 보통 아프가니스탄의 우즈베크나 타지크 집안에서는 딸자식을 국내의 다른 도시로 유학 보내는 것조차 극도로 꺼리는 반면, 하자라 집안은 성별을 불문하고 해외로 유학을 보내는 걸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자라족은 아프간에서 크게 핍박받으면서도 지금껏 꾸준히 명맥을 유지해 왔는지 모른다.


나는 세 번째 하자라 여성과 한 달가량 수업을 진행했고 꽤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처음엔 서먹서먹했지만 이내 시시콜콜한 일상사를 공유하면서 그녀의 깊은 고민도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마음대로 외출도 할 수 없어요. 그러니 온라인 교사 일이라도 해야지요." 한국이라면 한창 캠퍼스 잔디밭에서 청춘남녀 소개팅을 즐겨야 할 그녀가 낡은 컴퓨터 앞에서 하루종일 수업하고 받는 돈은 고작 2-30불 정도. 본래 50분 수업당 8달러를 받아야 하지만 그것마저 파슈툰족 관리자가 수수료로 50%를 떼어간다고 했다. 따라서 고작 수업당 3~4불 정도만 얻을 수 있다. 그것마저도 차일피일 돈이 없다고 임금체불이 일상이란다. 그럼에도 '화나지 않냐?'라고 물으면 그녀는 세상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주님(Xudavandi taolo)께 감사해요. 이것마저 없으면 우리 가족은 굶어 죽어요" 빵 굽는 일을 하는 그녀의 남동생과 함께 여덟 식구를 부양하는 스물한 살 학구열 넘치는 하자라 소녀의 삶을 응원한다.


#하자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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