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르어로 해석한 '우루무치'의 어원은 "작은 로마"

우루무치(乌鲁木齐)는 과연 '아름다운 목장'일까?

by 송호림

하미드史(Tarikh-i Hamidi)』의 차가타이 투르크어 필사본을 읽다가 현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행정수도인 우룸치(Ürümchi: 우루무치)의 어원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을 발견했다. 우룸치는 내가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2년 동안 유학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우룸치가 오이라트어(중가르어)로 '아름다운 목장'을 의미한다는 통설이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특히 매년 반복적으로 올라오는 신장 여행기에선 밑도 끝도 없는 '우루무치는 아름다운 목장'론이 꾸준히 반복·재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오늘 내가 소개할 내용은 기존의 중가르어식 해석이 아니기에 독자들에게 다소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


우선 이번 포스팅에서 중점적으로 활용될 『하미드史』에 대해 간략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 29세기초 동투르키스탄의 역사가 물라 무사 사이라미(1836~1917)가 집필한 이 책은 다른 동시대 투르크어 역사서들과 다르게 현재까지도 필사본 서너 종류와 소수의 번역본만이 존재한다. 중국에서는 86년 키르기즈 역사학자 엔베르 바이투르(Enwer Baytur)가 초벌 번역을 했고 이것이 88년 북경의 민족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되었다. 사반세기가 지난 2019년에는 북경 중앙민족대학 교수를 역임한 위구르 언어학자 압두레윱 폴랏 타클리마카니(Abdure'up Polat Teklimakaniy)가 엔베르 바이투르의 오류를 수정한 새로운 현대 위구르어 번역본을 내놓았다. 이를 바탕으로 2023년 미국 역사학자 에릭 쉬뤼셀(Eric Schluessel)이 최초의 외국어 번역본을 출간했다. 최근에는 압두레윱 폴랏 교수가 현대 터키어 번역을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는 1988년 번역본이 서울대 동양사학과 김호동 교수, 콜로라도대(볼더) 사학과 김광민 교수의 저서를 통해 국내에 일부 소개된 바 있다. 특히 이 책은 1864년부터 1877년까지 동투르키스탄에 존속했던 카슈가르 아미르국의 역사를 가장 정확하고 꼼꼼하게 기록한 것으로 유명하다. 가히 투르키스탄 기록문학 가운데 최고로 평가받는 걸작이기도 하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하미드史』에서 사이라미가 주장한 바에 따르면, '우룸치'는 오이라트어 어휘도, '아름다운 목장'이란 의미도 아니다. 우룸치의 어원은 중앙아시아에서 흔히 발견되는 假墓(ramziy mazar) 문화와 관련돼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요컨대 기독교 및 이슬람교에서 '에페소스의 7인의 잠든 자(Seven Sleepers/Ashab al-kahf)' 신화에 등장하는 동굴이 바로 오늘날의 우룸치 지역에도 존재하는데, 성 꾸란에 따르면 원래의 것은 로마의 '타르수스' 지역에 있지만 우룸치와 가까운 투르판 일대에도 이와 유사한 동굴이 발견되기 때문에 해당 지역을 '작은 로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9세기 위구르족은 오늘날의 터키를 '로마 술탄국'으로 불렀다) 실제로 우룸치에서 가까운 투르판의 베제클리크 천불동은 에페소스의 동굴을 연상케 한다. 아마도 사이라미는 투르판 천불동이 에페소스 동굴과 비슷하다는 점에 근거해 우룸치의 어원을 비정한 것이 아닐까 싶다.


예르 자민.jpg 穆萨·赛拉米. 『西北少数民族文字文献. 第四卷伊米德史』. (苗普生 ed.) – 兰州: 兰州古籍出版社, 1990. p. 341 (빨간색 괄호로 표시해 둔 부분)


زمین یوزیدا نجه یردا زیارتکاه لاری بار دیب متواتراً خبر برادور بری بو کیم روم دا طرسوس شهریدادور تفسیر تواریخ لاردا ذکر بولغانی اوشبودور ایکی نچی لبنان تاغیدا ارض فلسطین دا اوجونچی عدن دا اخریقه قطعه سیده تورنچی مغرب تاغلاریدا بشنچی هندوستان دا التنچی اصفهاندا یتنچی ارمنه دا سکیزنچی ممالک چین دا دیکانلاری اوشبودور ارومچه نینک اصلی داکی اسم لاری رومجه ایکان اغلاط عامه بیلان رومجه لفظی نینک اولیغه حرف الف نی زیاده قیلیب دور بلکه آخریغه حرف یانی ملحق ایتیب دور ارومجی دیب اتاغان بولغایلار ینه بری بو کیم ترکی لفظی دا جه دیکان بولادور ترکانه لار چونک نمرسه لارنی تصغیر قلسه لار جه لفظی برله تصغیر قیلادور یعنی جه لفظی برله کیچیک قیلادور


"세계 각지에 (이 같은) 순례지들이 있다고 전해 내려온다. 그중 으뜸은 로마 땅의 타르수스市에 있다. 聖 꾸란에 기술된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둘째는 레바논 산지 팔레스타인 지역에, 셋째는 아프리카 대륙의 에덴 땅에, 넷쨰는 마그레브(역주: 북아프리카의 아랍식 명칭) 산지에, 다섯째는 인도 땅에, 여섯째는 (이란의) 이스파한에, 일곱째는 아르메니아에, 여덟째는 중국 땅에 있다. 중국의 것이 바로 '우룸치'의 본래 지명 '룸차(rumcha)'이며, 관습적 오류로 인해 'rumcha' 어미에 알리프 문자를 더하게 됐다. (역주: 이는 添頭音 현상, 즉 prothesis 현상을 말한다. 알리프 문자를 더했다는 의미는 /u/ 모음이 추가되었다는 의미) 또 어말에는 '야' 문자를 더해서 결국 "우룸차(urumcha)'로 명명한 것일 테다. 게다가 투르크어에서 '-차(-cha)'는 투르크 인들이 뭐든지 큰 것을 작게 부르고 싶을 때 쓰는 말이다. 즉 접미사 '차'를 붙임으로써 (진짜 로마를) 작게 만들어 부르는 것이다."


*첨두음은 투르크어에서 흔히 나타나는 음운변화 현상이다. 19세기 차가타이 투르크어 사료를 보면, '러시아'를 향해 '우루시야(urusiyya)로 부르는가 하면, 책상을 우스탈(stol→ustol), 유리잔은 이스타칸(stakan→istakan) 등 첨두음을 더해 쓰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부 자음 앞에 모음이 발음되는 것이 투르크어 사용자들에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또한 urumcha→urumchi로, 즉 /a/가 /i/로 바뀐 이유에 대해 본문에는 직접적인 설명이 없지만 첨두음 현상과 마찬가지로 /a/ 혹은 /æ/ 모음을 표기하는 아랍 문자 ە/ـە (ha-i rasmiyya)가 /i/ 모음을 표기하는 ـى 문자로 바뀌는 현상 또는 자주 있는 일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를 우즈베키스탄에서도 볼 수 있다. 시리아나 이라크에 있어야 할 이슬람 성자들의 묘역이 페르가나 계곡 어느 시골마을에 떡하니 자리 잡고선 중동 도시와 같은 이름을 쓰기도 한다. 현지 무슬림들도 당연히 해당 묘역이 진짜가 아님을 알고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중요한 것은 그런 가묘가 대대로 기도를 드려온 성스러운 순례지였다는 사실이다. 즉 이슬람교를 수용하기 훨씬 이전부터 조로아스터교 혹은 불교 성지였던 장소가 이슬람화 이후 무늬만 바꿔 계속 영업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사이라미는 같은 현상과 관련해 또 다른 흥미로운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투르판의 천불동은 본래 불교 유적이었는데 그 형태가 이슬람 신화 속 동굴과 유사한지라 현지 무슬림들이 마치 이슬람 성지처럼 간주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afaq xoja turfanga.jpg 穆萨·赛拉米. 『西北少数民族文字文献. 第四卷伊米德史』. (苗普生 ed.) – 兰州: 兰州古籍出版社, 1990. pp 343-344.


تاریخ برمنکدین کیین حضرت آفاق طرفان غه بارغان ایکان طرفان اهلی اوشبو موضعه کا کلیب عزت و احترام قیلغانلارینی کوروب اول باره انکار قیلب منع قیلب دور اندین مراقبه و توجّه غه یوز کلتوروب کشف و الهام بر(له) اوشبو غاردا ایکانی معلوم بولوب خلایق لارغه ایتب دور کیم بو موضعه بت لارنینک جای منزلی دور دیب کمان قیلغان ایدیم مراقبه دین کیین منکا ظاهر بولدیکیم منینک کمانیم باطل ایکان و سیزلارنینک عقیده و اخلاص لارینکلار راست ایکان اصحاب الکهف نینک اوشبو موضعی دا ایکانیکا شک و شبهه یوقدور زیارت قیلینک لار و غنیمت بیلینک لار دیکان ایکان دیب سند و حجت قیلادور


"천년이 흐르고 아팍 호자가 투르판에 방문했을 때, 현지인들이 바로 이 동굴에 가서 정성을 드리는 걸 보더니 곧잘 그만두게 하였다. 이후 깊이 명상에 잠기던 그는 지혜로움과 영성이 모두 그 동굴에 존재함을 깨닫고 사람들에게, "이 지역이 우상 숭배자들의 장소라는 과거의 내 의심은 명상 이후 확연히 사라졌다. 의혹은 풀렸고 그대들의 믿음과 신앙은 진실된 것이었음을, 이곳에 7인의 잠든 자(Ashab al-kahf)가 존재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순례를 멈추지 말고 계속 은혜받도록 하시게"라고 독려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아팍 호자는 17세기 동투르키스탄에서 이슬람의 聖 이사(예수 그리스도)에 버금가는 존경과 칭송을 받던 정치·종교 지도자로, 죽은 자를 살리고 병자를 치유하는 기적을 행했다는 기록이 다수의 문헌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해당 일화는 아팍 호자가 투르판의 베제클리크 천불동을 방문한 사건을 전승한 것으로 보이며, 현지의 관습신앙과 외부의 이슬람 교리를 적당히 버무리는 선에서 이상과 실리 모두를 추구한 중앙아시아 수피 이슬람 특유의 포용력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하미드史』에서 말하는 '우룸치' 지명의 기원은 중가르어 '아름다운 목장' 기원설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심오한 문화인류학적 관점이 깔려 있다. 오늘날 우룸치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넘어 중앙아시아 최대도시로 발돋움했고 그만큼 과거 위구르인들이 '로마'라고 부르던 이스탄불에 비견될 규모로 성장했다. 그러니 실제 역사적 기원이 어떠하던 현재의 우룸치를 또 다른 로마로 간주하는 것도 완전한 억지는 아닐 것이다.


#위구르어 #동투르키스탄 #오이라트어 #투르크어 #페르시아어



keyword
작가의 이전글프레플리(preply)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