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의 조선인 관동군 전몰자 묘지

고려인 관심 높지만.... 조선인 관동군 희생자에 대한 조사 全無

by 송호림

2022년 우즈베키스탄 코칸드에 체류할 당시, 현지 박물관에서 일하는 친구 A로부터 주 우즈베키스탄 일본 대사가 코칸드 교외 당가라(Dangara) 지역의 일본 관동군 전몰자 묘지를 방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코칸드 시장과 함께 묘지시설을 점검한 뒤 크게 만족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한 번은 꼭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관동군 내에 조선인도 상당수 징집된 까닭에 분명 우리 조상의 유해도 안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1940년부터 1945년 일왕 히로히토가 무조건적 항복을 외칠 때까지 만주에 주둔하던 관동군 부대는 소련군과 접전을 벌였다. 그리고 항복하자마자 57만 명에 달하는 관동군 대부분이 포로로 잡혀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멀게는 우크라이나까지 끌려가 노역을 당하다 수십 년 후 풀려났다. 이 과정에서 현지에서 처형당하거나 사고사·병사한 이들은 결국 고국인 일본 땅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IMG_1886.JPG?type=w1600 코칸드 당가라 지역에 위치한 일본 관동군 전몰자 묘지 ©송호림

코칸드를 떠나기 일주일 전 일부러 시간을 냈다. 카메라를 들고 처음 소식을 들려준 현지인 친구와 함께 해당 묘지를 찾았다. 묘지기에 따르면 이곳은 본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령에 끌려온 독일군 포로들의 공동묘지로 쓰이던 장소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포로 신분으로 우즈베키스탄까지 끌려와 유명을 달리한 총 240명의 관동군도 여기에 잠들어 있다. 매장자 명단을 살펴보면 여럿이 한날한시에 사망한 사례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총살당했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다른 경우는 대부분 병사나 과로사인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에는 원래 중앙아시아에 대한 이해도나 전문성 높은 학자들이 많다. 한때는 중국 신장에 만주국과 유사한 형태의 '동 투르키스탄 위성국가'를 세울 계획도 갖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무엇보다도 2차 대전의 당사자였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현지에 공을 들이는 부분이 많다. 묘지의 매장자 명단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공개해 둔 것도 '일본다운' 모습이다. 역대 일본 대사들 역시 2002년 이 묘지가 리모델링된 이후로도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한국에선 중앙아 전문가도 부족할뿐더러, 고려인 외의 현지 역사나 문화에 대한 이해도는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일까. 아직까지 소련에 포로로 잡혀 먼 타향 우즈베키스탄까지 끌려온 조선인이 있다는 사실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소련군에 징집되어 관동군과 전투를 벌인 우즈베크인도 존재하기에 1990년까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했던 현지인의 시선 또한 곱지 않았다. 이 묘지도 2002년 리모델링 이전까지는 거의 다 썩어가는 목재 팻말 몇 개만 꼽혀 있었을 정도로 황량한 공터였다고. 그래도 나는 직감적으로 이 묘지에 무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IMG_1884.JPG?type=w1600 240명 가운데 240번째(맨 아래 중간)에 "Chan-Djen-Zi-Chay"라는 이름의 조선인 망자가 기록돼 있다 ©송호림


아니나 다를까. 묘지에 안장된 240구의 관동군 유해 가운데 조선인의 것도 있었다. 명단의 가장 마지막 240번째 '찬-젠-지-차이(ЧАН-ДЖЕН-ЗИ-ЧАЙ)' 이름에 '한국인(кореец)'이란 주석이 떡 하니 달려 있는 게 아닌가. 전몰자 명단은 일본 정부에서 작성했기 때문에 240번째 인물이 조선 출신이라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당시엔 만주에서 끌려온 고려인이나 조선 반도 출신 관동군이나 부르는 명칭에는 차이가 없었다.

우즈베키스탄 전국에는 코칸드 외에도 안디잔, 앙그렌, 마르길란, 페르가나, 타슈켄트 등지에 관동군 묘지가 있다. 따라서 이곳 말고도 조선인의 묘가 더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한국사 전공자가 아니기에 상기의 '찬-젠-지-차이' 한자병음만 갖고는 저 성명이 정확히 어떤 한국식 이름으로 치환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당시 관동군 포로를 심문하고 명단을 작성했던 러시아인이 편의상 키릴 문자로 기재한 것을 그대로 옮겨 적었으리라. (일본 후생노동성 웹사이트에 가면 정확한 한자성명을 찾을 수 있지만 일부는 가타카나로만 적혀 있다) 그래서 240번 조선인의 묘비를 찾아보려 했다. 묘비에는 키릴 알파벳이 아닌 한자성명이 빠짐없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유튜브 영상을 눌러보시면 된다)


일부 전몰자의 일본인 후손들은 이곳에 직접 방문하여 참배를 하고 돌아가기도 하는 것 같다. 다만 내가 방문했던 시기는 판데믹 기간이었기 때문에 일본인 방문객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중앙아에 퍼져 있는 관동군 포로 묘역에 몇 명의 조선인이 매장됐는지, 또 어떤 사정으로 징집되었고 소련 정부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에 관해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 향후 한국 근현대사 연구자들의 역할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관동군 #조선인 #고려인 #일제강점기


다음은 해당 묘역에 방문한 경과를 영상으로 제작해 둔 것이다. (하단 링크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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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I7WA8hl0LsQ?si=7-CP90ufe7CHdw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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