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언어 유창한 폴리글롯이지만... 서른 넘어도 정체성 해답 못 찾아
뛰어난 역사학자라면 "원어민급 외국어 독해능력"
과거 석사과정 시절의 이야기다. 1학년 2학기에 접어들 무렵 지도교수님의 안식년이 찾아온 바람에 불가피하게 타 학과 교수님으로부터 전공수업을 듣게 되었다. 임시로 내 수업을 맡아주신 K 교수님은
프랑스 민속사를 전공하셨는데, 수업 도중 자신의 유학 과정에서 경험한 난관 몇 가지를 말씀해 주신 적이 있다.
"자료조사차 프랑스 시골에 갔어. 18세기에 작성된 토지매매 계약서를 읽어야 하는데 손글씨라 그런지 아무리 봐도 읽히질 않는 거야. 글자 하나를 두고 며칠을 끙끙 앓았는데, 옆집 프랑스 아주머니께 보여 드리니까
'그것도 모르냐'면서 금방 읽어 주시더라고"
서울대 서양사학과 출신에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오신 분이 그거 하나 못 읽었다는 후문이
도통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엔'그러려니' 하고 흘려 들었다.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나고 우즈베키스탄에서 투르크어 필사본 문헌들을 수집하던 와중에야 나는 K교수님이 어째서 고작 '손글씨 몇 글자'로 고생하셨는지 누구보다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외국인이 스무 살을 넘기고 한국어 십 년을 공부한들 멋대로 휘갈겨 쓴 손글씨를 읽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나 역시 위구르어를 시작으로 우즈베크어를 거쳐 아랍 문자로 쓰인 차가타이 투르크어 문헌을 읽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흔히 '나스탈릭(nasta'liq)'으로 불리는 페르시아어 캘리그래피의 비스듬한 유선형 필체는 사료독해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아무리 읽기 연습을 반복해도 한국어 손글씨 읽는 것 마냥 빠르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굳이 프랑스어, 투르크어만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익숙한 한문을 떠올려도 사정은 비슷하다. 왕희지의 『초결가(草訣歌)』에도 "초서의 달인은 되기 어려우니(草聖最爲難) 용과 뱀이 붓끝에서 다툰다(龍蛇競筆端)"고 하였다. 사서삼경을 달달 외운다 한들, 어른이 되고 나서 한자 초서를 술술 읽기란 쉽지 않다.
세계적인 중앙아시아 전문가들이 한 번쯤은 꼭 방문하는 타슈켄트 알 베루니 동방학연구소(Institute of Oriental Studies)에서 일하는 현지인 연구자들은 외국인 연구자가 오면 그들의 능력을 '필사본을 얼마나 잘 읽느냐'로 판단하고 있다. 연구소 3층 열람실에서 이삼백 년 된 문헌을 펼쳐 놓고 그냥 멀뚱멀뚱 시간만
허비하다 돌아가는 학자들도 꽤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중국인 연구자들이 그런 의미 없는 행동(?)을 많이
하는데 관계자들도 '왜 읽지도 않으면서 거기 하루종일 앉아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타슈켄트 동방학연구소 사료열람 과정에 대한 소개(딜라람 유수포바 교수의 설명. 클릭)
결국 현지 역사학자들 사이에 일종의 '게임의 법칙' 같은 게 있다면, 필사본의 독해력 높낮이로 순위가 결정된다. 즉, 필기체를 읽지 못하는 연구자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제명되거나 무시당하는 사례가 많다. 필사본을 조금이라도 읽기는 해야 그나마 대접받는 것이 이 바닥의 불문율이다.
그래서 중앙아시아 연구에선 성공을 위한 필수 덕목이 '원어민급' 외국어 실력이다. 여러 언어로 작성된 다양한 사료들을 더 빠르게 읽고 더 많이 비교·대조할수록 그 연구자는 승승가도를 달리게 된다. 오늘의 이야기는 어쩌면 한국인 출신으로는 세계 최고의 중앙아시아 전문가로 성장할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던 어느 다문화 청년의 인생 스토리이다. 내가 지금껏 만나본 한국인 가운데 3개 이상의 언어에 그만큼 뛰어난 언어능력을 갖춘 인재는 없었다.
다섯 종류 언어·문화에 현지인 실력 갖춘 다문화 청년 '아이누르'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거의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누르(Aynur; 달빛)'란 이름의 갓 30세를 넘긴 조용한 말씨의 그는 다소 여리한 체격에 꼬불꼬불한 파마머리와 포근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지만 영락없는 신체 건장한 남성이었다. 아이누르는 처음에 스스로를 위구르족이 아닌 '한국인'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조금 복잡한 사연이 있다며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이모저모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종종 타지크-한국, 우즈베크-한국 혼혈 청소년들이 내 유튜브 채널을 보고 상담을 신청해 오곤 해서, 처음엔 그저 중앙아시아 관련 진로상담을 하려는 것인가 싶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천천히 들어보니 예상했던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연은 이랬다. 아이누르의 모친은 80년대 말 즈음 실크로드 여행을 갔던 일본인 여성이었다. 우룸치에서 어느 멋진 위구르족 남성을 만난 그녀는 순식간에 사랑에 빠졌고, 둘은 현지에서 곧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80년대는 일본의 고도성장 시기로, 둔황에서 출발해 타클리마칸 사막을 횡단하는 여행 프로그램이 크게 인기를 끌었던 때다. 그런데 사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아이누르의 모친은 일본인이었음에도 우룸치에서 아들이 성장할 때까지 남편과 함께 살았다. 그 덕에 어린 아이누르는 중국 최대의 다문화 중심지에서 유아기부터 유소년기까지를 무난히 보냈다. (우룸치에는 한족, 위구르족, 회족, 카자흐족 등 다양한 민족공동체가 공존하는 중국판 '뉴욕'이다) 그런데 신장 위구르 자치구 행정수도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한족 학교에 다니게 됐다. 그러나 부친을 포함해 가족구성원 다수가 위구르족인 까닭에 집안에서는 위구르어를 사용했다. 동네친구들도 대부분 한족이 아닌 위구르족이었다. 그래서 아이누르는 자연스럽게 위구르어와 한어의 이중언어 사용자로 성장했다.
그러다가 중학교 진학 무렵 부모 사이의 불화가 시작됐다. 갓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은 모친을 따라 (놀랍게도) 한국으로 이주했다. 일본인 모친이 어째서 고국 일본이 아닌 한국을 택했는지 그 속사정은 알 수 없다. 다만 아이누르의 고백에 따르면 모친은 한국에서 일본어 교사로 일했다고 한다. 그렇게 초등학교는 중국에서,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한국에서 다닌 아이누르, 처음에는 이 다이내믹한 스토리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한국어로 말해보세요. 날 놀리는 거 아니죠?"
그러자 (0.001%의 어눌함은 있지만) 대체로 조선족보다는 훨씬 유창한 한국어 문장을 쏟아냈다.
"알림잔 형님, 이제 믿으시겠어요?"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중국어 실력은 어떨까?' 그러자 정말 한족이 말하는 그대로의 억양이 흘러나왔다. 다양한 외국어를 오래 공부해 온 독자들은 알 것이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성장한 후 습득한 외국어는 특유의 '이방인 억양'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러나 아이누르의 한국어·위구르어·중국어 발음 및 억양은 대체로 서로 비등한 수준에서 딱히 결점을 찾기 어려웠다. 물론 한국인 입장에서 그의 한국어는 약간 이질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어릴 때 초등학교까지 한국서 다니다 미국으로 이주한 재미교포보다는 훨씬 자연스러웠다.
요컨대 아이누르는 위구르·한족·한국인이라는 세 가지 언어·문화적 배경을 동시에 갖춘 독특한 다문화 청년이었다. 또 어머니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일본어도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직감했다. 아이누르가 마음만 먹으면 감히 한국 최고, 아니 세계 최고의 중앙아시아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사료연구의 핵심은 언어능력이다. 아이누르는 기본적으로 3종 언어에 '원어민급 실력'이 아닌 원어민 그 자체인 인재였다. 또한 아이누르는 단지 언어만 습득한 게 아니었다. 위구르, 한국, 중국의 문화까지 어릴 때부터 생활 전반에서 직접 경험을 통해 체득한 상태였다. 어학연수 1~2년이나 유학 2-3년으론 절대 성취할 수 없는 희귀한 능력이었다. 더 놀라운 점은 그가 현재 텍사스 국경 경비대 소속으로 멕시코 국경으로부터 불법이주해 오는 중국인들의 통역으로 일한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영어 실력도 웬만큼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한국어, 중국어, 위구르어, 일본어, 그리고 영어까지...
나는 이 소식을 곧바로 타슈켄트 동방학연구소의 원로학자 아블랏 호자예프 교수에게 알렸다. '이러이러한 인재를 발견했는데, 우즈베키스탄 국가 차원에서 타슈켄트로 불러들여 학자로 훈련시켜야 하지 않겠냐'라고 청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호자예프 교수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우즈베키스탄의 열악한 사정상 어떤 영재에게 재원울 투자한다는 것은 꿈조차 꾸기 어려웠다. 개인적으로 아이누르의 능력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러나 해결하기 어려운 중대한 문제도 있었다. 우선 아이누르는 30대에 접어들었음에도 한국인이면 누구나 있다는 그 대학 졸업장 하나조차 없었다. 알고 보니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크게 방황했고, 한 때는 유대교로 개종해 이스라엘에 거주한 적도 있었다고. 정말 믿기 힘든 이야기지만 유대인 문화까지 흡수한, 그야말로 진정한 코즈모폴리턴 청년이었던 셈이다. 또 그 자신이 현재 텍사스 생활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했다. 무료 숙식제공에 월급만 5천 달러 이상을 받고 있는데 만일 우즈베키스탄에 온다면 월 1천 달러도 벌기 힘들 것이다. 굳이 패권국가 미국에서, 그것도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후진국 우즈베키스탄으로 건너오는 '모험'을 시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6개월 동안 6차례 권했지만 6개 언어(韓·中·日·英·위구르·우즈베크어) 인재 놓쳐
우선은 그에게 미국 내 커뮤니티 컬리지라도 입학해서 학부 졸업장이라도 받기를 권했다. 그 이후 우즈베키스탄 현지 대학원에 진학해 중앙아시아 연구를 시작하는 방안을 넌지시 권유했다. 아이누르는 이미 위구르어를 완벽히 숙달했기 때문에 우즈베크어 또한 빠르게 익힐 터였다. 그러나 아이누르에게 '학자'가 되고픈 의지는 크지 않아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30년 가까운 방황의 세월 속에서 어디선가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친구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유튜브 검색하다가 우연히 위구르에 대해 잘 아는 나를 발견했고,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연락을 해온 것뿐일지도.
그러니 아이누르가 학자가 된다는 것은 순전히 나만의 상상이었다. 이미 다 큰 어른이었지만 여전히 마음씨 여리고 쉽게 상처받는 그였다. 우리는 오랜시간 꽤 진지한 대화를 나눴지만 아무래도 텍사스에 있는 그와 사마르칸드에 있는 나는 좀처럼 가까워지기 힘들었다. 누구 한쪽이 발걸음을 내딛지 않는 한 영영 만날 길이 없는 사이기도 했다. 사실 나 역시 중국에서부터 우즈베키스탄까지 중앙아시아 각지를 방황하며 지난 십 년 이상을 떠돌아 왔다. 어쩌면 우리는 둘 다 정착할 장소를 찾아 닻 없이 망망대해를 부유하는 돛단배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운명이란 것이 있다면, 그 운명은 우리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일까 아니면 운명이 우리를 찾아오는 것일까. 중앙아시아 연구는 태생적으로 최소 3개 이상의 언어에 능통한 사람만 가능한 학문이다. 그러나 이런 자질이 부족함에도 교수 직함을 달고 전문가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한국에는 너무도 많다. 발벗고 인재가 없기 때문이다. 모노글롯인 사람이 중앙아시아 연구 자체는 할 수 있지만, 그 연구는 진정한 실력자(폴리글롯) 앞에선 빛을 바랜다. 내가 보기에 아이누르야말로 지금껏 내가 만난 어떤 한국인보다도 위구르어와 중국어 모두를 한국어만큼 구사하는 불세출의 능력자였다. 무엇보다도 그가 유소년기에 겪은 우룸치의 다문화 사회 경험은 학문의 도구로 쓰인다면 어떤 학문적 난관도 깨트릴 수 있는 곧세고 날카로운 검으로 제련할 수 있었다. 만일 아이누르의 부모가 이혼하지 않았다면? 또 그의 능력을 간파한 스승을 일찍 만나 방황하지 않았다면? 아이누르는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운명은 그에게 학문의 길이 아닌 끊임없는 방황, 그리고 정체성 탐구의 여정으로 이끌었다.
다문화의 명과 암은 이런 것이다
요즘 결혼적령기 한국 남성들의 국제결혼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덩달아 다문화 자녀에 대해 미지의 환상을 품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다시 말해, 다문화 자녀들의 다중언어 사용에 큰 기대를 품는 국제커플 및 예비 국제부부들을 자주 보아왔다. 매스컴에서도 덩달아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다문화 자녀들의 능력을 추켜 세우곤 한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으로 보건대, 민족 정체성이 형성되는 유소년기의 자녀들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부추기는 성장환경 - 부모 중 하나가 외국인, 외국으로의 잦은 이주, 타 지역 학교로의 전학, 외국인과의 잦은 접촉 등 - 은 부모의 세심한 관심과 주의 없이는 부정적 영향이 더 클 수 있다. 국가적으로도 다문화 가정 자녀들에게 '다문화' 자체를 장려하는 행위는 결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특히 부모 중 어느 쪽도 한국인이 아닌 이주민 가정 자녀들은 장차 한국인의 단결을 저해하고 국가위기를 초래하는 복병으로 성장할 수 있다. 따라서 인구감소를 빌미로 다문화와 이주민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을 조장하는 현재의 정책은 대폭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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