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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논이Noni Aug 09. 2022

유기견인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Ft. 제주도 유기견

웅이라는 이름의 김태원 닮은 강아지

제주도에 막 정착한 작년 12월,

그 특별한 개와 만났습니다.


겨울에도 온화한 제주도의 밀감빛 햇살이 내리쬐던 어느 오후, 산책 삼아 길냥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목에 자리한, 2층 단독주택과 텃밭이 있는 한적한 주택가를 거닐며 사색에 잠겨있는 제 앞에 어느새 견기척도 없이 작고 깡마른 회색 개가 등장했어요.



긴털에 살짝 가려졌지만 호기심 가득한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났고, 큰 두 귀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사랑했고 흔히 볼 수 있던 개 웨스트 하이랜드 테리어와 비슷했어요.


갑작스러운 견공의 등장에 놀라 물었어요.


"어머 넌 누구니?"


몸을 낮추며 손을 내밀자 쏜살같이 도망가던 녀석은 굉장히 민첩했어요. 한걸음 옮기자 다시 다가오고 또 도망가고, 다가오고 도망가고를 반복하다 관리되지 않은 개의 초라하고 지저분한 털과 아무렇게나 솟은 아랫니를 내밀고 있는 모습에 커다란 연민이 밀려왔습니다.


"불쌍해라... 저 마른 몸 어쩜 좋아! 아가, 미안해~ 구조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개는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건지 계속 제 곁을 맴돌았고 우린 어느새 길동무가 되어 있었어요. 아무리 봐도 유기견 같은 이 작고 가여운 친구가 불쌍해 진심 어린 마음을 담아 잘 지내고 건강하라고 기도하고 작별인사를 한 뒤 주택가를 벗어났습니다. 그 후 두어 달 지나 봄이 되어 그 길목에서 또 그 아이와 마주쳤어요. 웬 대문에서 나오는 걸 보니 아무래도 유기견이 아니라 그 집에서 키우는 개 같았습니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반가운 마음에 다정히 인사를 건네고 늘 가방에 넣어 다니는 고양이 간식을 한번 줘보자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그 개, 맛있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좋아하길래 하나 더 주니 환장을 하던 녀석은 결국 고양이 있는 곳까지 저를 쫄래쫄래 따라와서 개를 보고 불편함을 느낀 예민한 고양이들을 위해 강아지를 먹이로 유인, 다시 그 뒷골목으로 왔어요.


"나 이제 갈게! 빠잉~!"


그 동네를 벗어나 큰 찻길을 건너고 나서 아무 생각 없이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이 개도 저를 따라 찻길을 건너 졸졸 따라오고 있었던 거예요! 차가 많지 않은 서귀포라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놀란 저는 이 개를 집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 오던 길을 되돌아가 찻길을 건너 그 한적한 주택가로 다시 왔어요.


"이제 집에 들어가~ 나 쫓아오지 말고. 잘 있어. 안녕~!"


집 앞으로 데려다 놓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미친 듯이 뛰어 찻길을 건너 계속해서 달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 고개를 돌려보니 개는 없었습니다.


며칠 뒤 마트에 다녀오는 길에 도로가에 마련된 재활용 클린하우스에서 그 개를 또 보게 되었고, 바로 옆에 웬 아주머니가 계시길래 호기심에 여쭤봤어요.


"혹시 이 개 주인이세요?"


저의 물음에 그분, 기다렸다는 듯이 속사포를 쏘아대기 시작하십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이 개가 어떤 개이고, 얼마나 영리한지, 무슨 일이 있었고, 특기가 무엇인지... 그렇게 거의 한 시간을 넘게 붙들려 개 자랑을 들었습니다.


 이름은 웅이, 5년 전 쓰레기통에 버려진 걸 발견하고 키우기 시작하셨고, 알고 보니 성대 수술당한 유기견인 가슴 아픈 사연의 강아지였습니다. 제주도에 더 이상 키우기 싫은 개를 데리고 놀러 와서 유기하는 인간들이 그렇게나 많다는데 웅이도 그런 몹쓸 짓을 당한 모양이었어요. 너무나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손은 웅이에게 뻗어 열심히 쓰다듬어 주었더니 웅이는 발라당 누워 그 조그맣고 록 나온 배를 내놓는 필살 애교를 선보였습니다. 제가 손만 뻗으면 도망가기 바쁘던 녀석이라 처음으로 배를 문지르면서 감격한 순간 아주머니께서 굉장히 놀라시며


"얘 남의 손 절대 안 타는데 희한하네~"


하셨어요. 그때 아주머니의 지인이 오셔 재활용품을 처리하시며 한마디 던지셨습니다.


"어? 웅이 너 사람 차별하기야? 나는 못 만지게 하면서 이 누난 좋다네! 거 참 너무하네~"


귀엽고 작은 개 한 마리 덕분에 재활용장소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인기쟁이 웅이는 원치 않는 수술로 고통받고 버림받았지만 따뜻한 제주도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동네 명물이 되었어요.


"웅이는 목줄을 절대 하지 않아 엄청 애먹었어요. 처음 목줄을 했을 때 혼자 그 쇠사슬을 이빨로 다 끊어놔서 동물병원에 데려가 이빨 사이에 낀 쇠사슬 조각을 빼느라 고생하는 바람에 이가 저 모양이 된 거예요."


 



어쩐지 개치곤 치열이 독특하고 굉장히 튀어나와 있다 했더니 그런 사연이 있었던 거군요! 그 뒤로 어쩔 수 없이 목줄 없이 풀어놓고 목욕이며 미용도 절대 못하게 난리를 쳐서 이렇게 꾀죄죄한 몰골의 유기견 코스프레를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버려진 개로 오인해서 구조한다고 차에 태워 데려가는 걸 발견하고 되찾은 적도 있다고 해요. 아주머니가 꽤 먼 거리의 마트에 가실 때 쫓아와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사라져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는데 개를 찾다 찾다 집에 오신 아주머니를 웅이가 왜 이제 왔냐는 듯 반갑게 맞아주셨다는 일화도 들었습니다.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치 웅이를 오랜 시간 알아온 것처럼 정이 푹 들어버렸고, 이렇게 똑똑하고 영리한 개와 친분이 생겨 기분이 좋았어요.





낯선 이의 손길은 물론 자주 보는 동네 사람들의 손길도 온몸으로 거부하는 웅이가 신기하게도 저만은 기꺼이 허락해서 영광스러운 마음으로 배를 쓰다듬어 주고 털을 만져주며 교감을 하며 지낸지도 어느덧 반년이 훌쩍 넘어 여름이 왔어요. 지난주 산책길에 웅이네 집 앞을 지나는데 웬 낯선 분홍색 개가 나오더니 저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여름을 맞아 온몸의 털을 가차 없이 홀라당 밀려버린 웅이였습니다. 꼬랑지만 멋으로 큰 붓처럼 털을 남겨놓은 채 전체를 시원하게 삭발한 분홍 피부의 웅이를 보니 속이 다 시원했어요. 그동안 웅이를 만지면서 그 엉키고 더러운 털들을 어찌하지 못해 난감했는데 이젠 털 걱정 없이 만질 수 있게 되어 앓던 이가 빠진 느낌에 저도 모르게 두 손 모아 감격을 하고 역시나 웅이는 배를 내밀고 누워 어서 문질러달라고 안달을 했죠.


털을 밀어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강아지 웅이가 지금처럼만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일파스텔로 그려 본 웅이 얼굴


들개가 된 유기견들  


한적하고 인적 드문 제주도 올레길을 걷다 보면 큰 개들이 목줄 없이 서성이는 걸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사람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한없이 눈치 보며 쫄은 눈빛으로 피해 갑니다. 제가 본 개들은 하나같이 사람을 피했지만 간혹 가다 대형 유기견들이 오랜 떠돌이 생활 끝에 공격적인 들개가 되어 덤비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비가 오지 않아도 장우산을 챙겨 들고 다니다 개의 공격을 받게 되면 우산을 펼쳐 쫓아내라는 지침도 내려졌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유기견


서귀포 6차선 도로에서 신호등이 켜져 모든 차들이 정차한 순간 횡단보도 위를 유유히 홀로 걸어오는 중형 개 누렁이가 있었습니다. 순간 비틀즈가 연상되며 엄청 똑똑하고 멋지다 생각하고 어서 오라며 두 손을 벌리고 쪼그리고 앉아 맞아주는데 너무나도 겸연쩍어하며 제가 있는 쪽을 벗어나 오른쪽 대각선으로 가버린 개는 자세히 보니 뒷발 한쪽이 없는 장애견이었어요. 너무 놀라 잘못 본건가 싶어 자세히 봐도 뒷발 하나가 정교하게 잘려 없었죠. 사고를 당한 건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을 그토록 싫어하는 걸 보니 안 봐도 알 것 같더군요. 제가 사람인 것이 부끄럽고 미안해졌습니다.

세 다리로 씩씩하게 돌아다니는 누렁이. 오른쪽 뒷발목이 없어도 그저 걷습니다



개를 닮은 사람들


부활의 리더인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 김태원 님, 개를 닮았다고 해서 죄송합니다. 여담이지만 김태원 님 정말 존경하는 뮤지션입니다. 사랑할수록, 소나기 등의 여전히 묘한 감동을 주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명곡들을 창조하신 멋진 분이라 존경해요.


저 역시 강아지 닮았다는 소릴 자주 듣는, 개 같이 생긴 얼굴입니다. 시츄, 퍼그 등등.. 눈이 처지고 코가 짧은 순한 강아지상인데 다음 생에는 도도한 고양이상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웨스트 하이랜드 테리어. 웅이랑 닮았죠? 출처 - https://www.redbubble.com/shop/westie+quotes+posters



지금까지 만난 동물들을 그려봤어요. 노니 그림


모든 동물들이 꽃길을 걷길 바라며.. 종이 위에 수채. 노니 그림


♡노니의 인스타로 더 많은 그림 보러오세요♡

https://www.instagram.com/nonichoi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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