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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논이Noni Jan 24. 2021

스위스 바젤의 전직 뉴욕 갱스터

조폭 똘마니였던 타투이스트의 치매 아버지 간병 이야기 1 편


아일랜드 킬케니에서 6주간의 입주 화가 프로그램을 마치고 스코틀랜드에 돌아와 짐(Jim)을 돌보며 한 달여를 머물다 집시 본능이 발동해(이놈의 역마살) 떠날 시간이 다가왔을 때,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던 제게 제니는 workaway로 하는 자원봉사를 추천해주었어요. 스위스 바젤에서 미국인 치매 할아버지를 돌보는 일이라... 바젤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호기심이 생겼고, 리뷰도 나쁘지 않아 정성 들여 프로필을 작성한 뒤 호스트와 연락을 취해 에든버러에서 바젤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죠.



어쩌다 보니 치매 할아버지 전문


하우스 시팅을 인연으로 친분을 쌓은 전직 의사 제니에겐 알츠하이머 걸린 80대 아버지(Jim)가 계셔서 제니가 휴가 떠난 일주일간 끼니와 간식을 챙겨드리고 말동무해드리며 돌봐드린 적이 있었어요. 그 일이 천직처럼 느껴질 만큼 간병에 최선을 다하던 제게 그녀가 추천한 스위스의 치매 할아버지 간병 일은 여태껏 경험해본 수많은 일들 중 가장 무시무시하고 힘들고 슬픈 일이 되었지만 그렇게 될 줄 꿈에도 모른 채 바젤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답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스위스 바젤로


바젤 공항에 도착했을 때 지팡이를 짚고 저를 마중 나온 호스트 스티브를 기억해요. 그는 뉴욕 출신 50대 미국인으로 30여 년 전 스위스인과 결혼을 하며 이민 왔고, 바젤에서 제법 규모 있는 타투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었죠.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다는 소식에 4년 전 미국에서 모셔와 같이 살기 시작했지만 혼자 감당하기엔 무리여서 봉사자들을 항상 상주시키고 있었다네요. 무슨 이유인지 스티브는 한쪽 다리를 절고 보청기를 끼지 않으면 소리를 잘 못 듣는 후천적 장애인이었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의 집은 바젤에서 25분가량 차를 타고 들어가면 나타나는 한적한 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2층짜리 단독주택이었고 뒤뜰 경사진 언덕에 그럴듯한 포도밭도 갖추고 있었어요. 아기자기하고 예쁜 동네 풍경과 멀쩡한 집의 모습에 안심을 하고 먼저 와서 봉사하던 중국인 학생 다니와 반려견 브랜디와 인사를 하고 나니 스티브가 낮잠 자고 있는 할아버지를 깨워 그랜파라고 부르라며 소개했죠. 요리에 진심인 스티브의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나서 짐을 풀고 잠자리에 들려는 찰나 오래되고 더러운 침구에 난 구멍들과 죽은 지 몇 년은 된듯한 거미 사체들에 조금 놀랐지만 혼자 사는 남자의 집이니 그러려니 했어요. 장애까지 있는 돌싱남의 처량한 처지가 가여웠습니다. 그다음 날 아침잠을 깨기 전까지는요.


"F X X X ing hell! F X X X!!!!  Go to hell!!!"


'이게 무슨 소리야? 지금 할아버지한테 욕하는 거야 저 사람?'


제 방 바로 아래층에 있는 부엌에서부터 쩌렁쩌렁 울려대던 목소리와 욕설은 지옥 그 자체였어요. 사랑스러운 스위스에서 아침부터 쌍욕을 듣고 깨는 기분이라니. 옆방의 다니에게 묻자 저게 대체로 벌어지는 아침 일상이라는 겁니다. 치매 걸린 할아버지가 정신 온전치 않은 것도 맘속 깊이 서러우실 텐데 무슨 대역죄를 저질렀다고 불같이 화를 내고 저렇게 막말을 하며 죽일 듯이 욕을 하는 건지... 십분 가량 이어진 데이브의 욕설은 패륜+탕아 급이었기에 유교문화에 길들여진 제겐 인간 말종으로 느껴졌고, 아무리 보청기를 꼈다고 해도 고래고래 목청껏 소릴 질렀다는 건 신입 봉사자의 아침잠을 존중하지 않은 행위였다고 판단되어 급히 세수를 하고 옷을 입은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습니다.


부엌엔 할아버지가 아침식사를 하고 계셨고 스티브가 저를 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히 웃으며 잘 잤냐고 묻는 게 아니겠어요? 그것도 아주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미친 또라이인가? 몰래카메라인가? 황당했지만 표정을 굳히고 목소리를 깐 뒤 단호히  라고 답했습니다. 당신 때문에 아침에 기분 나쁘게 깼다. 왜 그렇게 할아버지한테 소리 지르고 화를 냈냐고 묻자 할아버지가 밤새 침대에 지도를 그려서 그랬다며 다 새로 빨래하고 매트리스를 또 말려야 해서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른 것이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앞으로 절대 안 그러겠다. 정중히 사과까지 하는 겁니다. 그래서 당신 아버지는 사랑으로 보살펴야 하는 중증치매환자이니 그렇게 화내고 욕을 하면 안 된다고 타이르고 윽박도 질러봤지만 그의 분노조절장애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올라왔고, 아들의 욕설과 고함에 눈물 흘리던 할아버지의 어쩔 줄 몰라하던 모습은 제 마음을 너무 아프게 만들었어요. 그는 분노조절장애뿐만 아니라 중증 나르시시즘까지 더해진 도른자 호스트였던 것입니다.


도른자에게 성추행당한 다니


할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어요. 화장실을 혼자서는 못 가셨기 때문에 저와 다니가 데려다 드리고 모든 일을 지시해야 했거든요.

"그랜파, 바지 벗으세요. 자 이번엔 변기에 앉으세요."

처음엔 이런 일을 어떻게 하나 난감했지만 곧 적응이 되었어요. 할아버지는 늘 기저귀를 차고(스티브가 퇴근 후 갈아줌) 아무것도 혼자서 할 수 없던 중증 치매환자인 동시에 힘은 장사여서 여든아홉이란 나이에도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체력은 엄청났죠. 그래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산책이라도 나갔다 돌아오면 부축해드리느라 힘이 쭉 빠진 어깨와 팔이 쑤시곤 해 아이고 삭신이야! 드러누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나이 든 약골인 저에 비해 만 열아홉이었던 다니는 기운이 넘쳐  늘 에너지 넘치는 밝은 모습이었죠. 우리 둘은 주말자유시간 바젤 시내나 독일 관광도 하고(집이 국경 부근이었어요) 아름다운 경치의 동네를 산책하곤 했는데 어느 날 강변을 거닐다 다니가 불쑥 제가 여기 오기 전 벌어진 일을 털어놨어요.


스티브가 썸 타던 여자를 밤늦게 집으로 데려와 함께 술 마시다 다니에게 셋이 같이 해보자며 3 썸을 제안.

스티브와 정원에서 같이 담배 피울 때 갑자기 다니에게 얼굴을 들이밀더니 너 정말 예쁘다며 강제로 키스.


56세 아저씨가 19세 소녀에게 저지른 만행을 듣고 부들부들 떨렸어요.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다니는 아직 어려서인지, 아님 중국인 정서가 우리랑 달라서인지는 몰라도 그저 친절히 스티브를 대하고 추행당한걸 별로 무겁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제가 스티브한테 부족한 걸 요구하고 그의 언행에  이의를 제기하면

"노니 참 용감하다. 멋있어! 난 그렇게 못해."

라고 해서 어리고 순진해 의사표현을 못한 것 같기도 했지만 알고 보니 나름 꿍꿍이가 있던 다니였어요. 다니는 스티브의 아들 조지에게 홀딱 반해 그를 시아버지감으로 생각하는 했죠. 응? 열두 살짜리 애한테? 그래 일곱 살 나이 차이 극복 가능하지, 그런데 그 지랄 맞은 유전자는 어쩔 건가요? 부전자전으로 조지도 살짝 도른 감이 없잖아 있었거든요. 제가 잘해주니 편해서 그런지 툭하면 때리거나 만지던 리틀 또라이였죠. 다니는 스위스를 떠나며 조지에게 편지를 주고 갔는데 그 속엔 그녀의 큰 증명사진과 러브레터가 들어있었고 스티브는 미친 듯이 조지를 놀리며 몇 날 며칠을 약 올렸어요. 조지는 너무나 싫어했고요.


그가 애정결핍 망나니가 된 원인 : 출생의 비밀


그 집의 규칙 중 하나인 저녁 식탁 위에서 스마트폰 사용금지로 인해 식사 시 듣게 된 그의 과거 이야기는 안물 안궁 과거사이지만 영화처럼 드라마틱했어요.


자신의 친부모는 뉴욕 뒷골목에서 건달처럼 살던 사람들 이었는데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애초에 애를 키울 생각도 없었기에 양부모를 수소문했고 스티브가 태어난 후 핏덩이를 바로 입양시켰다는 출생의 비밀을 안 뒤부터 마구 비뚤어져 나가고, 결국 열세 살 어린 나이에 갱스터들 밑에서 그들이 죽인 시체 옮기는 일 등을 도우며 돈을 벌고 총을 만지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허세 끝장판 남자이니 과장을 보탠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그의 찌들고 탁한 눈빛과 팔 전체에 새겨진 조폭 문신은 그의 어두운 세월을 묘사하듯 그럴싸해 보였어요.


한 번은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얼마나 난폭한 술꾼이었는지 폭로하면서 자신이 할아버지의 알코올 중독과 가정폭력을 뿌리 뽑았다며 자랑스러워했어요. 술만 마시면 엄마를 때리고 인사불성이 되는 것을 참다못해 할아버지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다시 한번만 엄마한테 손대면 진짜 쏠 거라며 협박하자 충격받은 할아버지는 그때부터 술을 일절 끊고 폭행을 멈췄다고 합니다.



양아치와 결혼해서 인생 망친 두 스위스 여자


어두웠던 어린 시절을 겪으며 그렇게 조폭들의 똘마니 노릇을 하다 완전히 손을 씻고 음악에 빠져 어느 무명 밴드에서 롹보컬을 하던 스티브는 무대 위의 그에게 한눈에 반한 철없는 스위스 아가씨의 구애에 스위스로 오게 되고 (어마어마한 부잣집 딸이었던 그녀가 모든 여행경비를 지불했대요) 서로 잘 알지도 못한 채 결혼을 하게 되었다네요. 스위스 거부의 딸은 아름다웠지만 영어를 전혀 못했고, 그는 독어를 하나도 못해 대화도 안 통했는데 서로 껍데기에 이끌려 결혼을 했으니 삐걱거리는 건 당연했고, 얼마 안 지나 둘은 이혼을 했다고 해요.


그 이후 타투 스튜디오를 열고 열일곱 살 어린 두 번째 부인과 결혼해서 아들 조지를 얻게 되었지만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아 이혼을 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 아들이 집으로 오는데 한동네에 살면서 부인과는 전혀 만남을 갖지 않았어요. 툭하면 제게 어쩌면 좋냐며 전 부인이 자신의 전화도 안 받고 문자 보내는 것조차 불쾌해한다며 상담을 요청해왔을 정도였죠. 아들이 더 크면 이 동네를 떠나 전남편과 완전히 남남처럼 살 것이라 통보한 것을 보니 스티브한테 맺힌 게 아주 많아 보였습니다. 미국에서 온 양아치가 순진한 스위스 여자 두 명의 인생을 망쳤요.



그 집에서 자원봉사 하며 나쁘지 않았던 점


-아침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 늦잠이 허용됐고 그가 출근하는 열 시부터 할아버지를 돌봐달라고 부탁했죠.  제게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고 모든 봉사자가 다 노니 같았으면 좋겠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할아버지께 만들어 드린 점심. 연어, 밥, 콩, 케이퍼, 파프리카
그랜파는 아메리칸 스타일로 나는 한국사람이니까 젓가락으로~ 어디든 들고 다니는 노니의 금빛 젓가락.


-스티브는 먹을 것을 아끼지 않고 늘 맛있고 푸짐한 저녁식사를 직접 요리해 식탁에 차렸어요. 매일 메뉴가 바뀌던 그의 요리는 꽤 수준급이었고 하루 종일 간병하느라 지쳐있던 우리들을 어루만져 줬습니다.

-스티브가 친자식들이 나 몰라라 하던 치매 걸린 양아버지를 미국에서 모셔와 4년이나 똥오줌 치우고 돌본 걸 보면 최악의 인간은 아니었어요. 비록 소리 지르고 욕을 할지언정 패륜아는 아니었죠. 긴병에 효자 없다고 얼마나 지쳤으면 저럴까 이해 갔어요.

-남다른 애견인이기도 한 스티브는 반려견 (헝가리안 헌팅 도그) 브디를 위해 사료 대신 오로지 자연식품으로만 먹이를 줬어요. 생닭가슴살이나 해산물, 날계란, 신선한 채소 등등으로요. 매일 그렇게 챙겨주기도 귀찮았을 텐데 지극정성이었죠. 암컷인 브렌디는 중성화 수술도 받지 않았는데 스티브는 말 못 하는 동물에게 못할 짓이라며 수술을 거부했다네요. 그래서인지 동네 수컷 비글만 보면 발정이 나서 혼이 났어요. 자기 몸의 반토막만 한 개한테 애정공세를 퍼붓고 난리를 치면 목줄이 서로 꼬여 개판이 되기 일수였죠. 스티브가 게이 같다며 우습게 여기던 그 귀여운 비글이 생각나네요. 정말 귀여웠는데♡

-그밖에 공짜 타투를 권해준 일이며(다니는 스티브네 가게에서 발목에 코끼리 문신을 새겼어요. 저는 절대 거부했고요) 제 그림을 보고 워킹비자를 내줄 테니 자기네 스튜디오에서 배우고 일하라며 타투이스트로의 길을 열어주려 했던 일 등 인심은 나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다니가 고통받으며 타투받는 모습과 피비린, 그리고 작업 시 기계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제가 갈 길이 아님을 깨닫고 정중히 사양했어요. 제가 조금만 더 대담했더라면 스위스에서 살며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을 가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먼 훗날 제게 타투를 받은 사람이 후회를 하면 미안할 일이 될 테니 그럴 일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 해외생활 십 년 동안 수많은 문신들을 만나봤는데 백이면 백 후회하는 걸 봤기 때문에 문신 새기기는 정말 신중히 생각해야 하는 '몸 위에 그림 그리기' 예요. 날이 갈수록 타투가 늘어지고 색깔이 옅어지거나 푸르스름하게 변색을 하는 경우도 많아 가축 피부 위에 찍어놓은 도장처럼 흉해 보이고 유행이라도 타면 정말 꼴이 말이 아니거든요.


나름 단체사진.


*스티브와 조지는 가명을 사용하였습니다. 

동기화하지 않은 스마트폰 고장으로 천장이 넘는 사진을 몽땅 잃는 바람에 바젤에서의 사진은 몇 장 없요. 그래서 타투로 인기 최고인 호랑이 그림이라도 올려보아요. 표지 그림은 작년에 그린 자작나무 패널 위에 그린 유화의 부분 그림입니다. 노니그림 2020년 작.

타투의 양대 산맥 호랑이와 코끼리를 찾아보세요.


♡더 많은 노니의 그림 보러오세요 ♡

https://www.instagram.com/nonichoi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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