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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논이Noni Feb 23. 2022

숨겨왔던 만삭 당나귀의 충격 비밀

게으른 유령이 사는 아일랜드의 성에서 3편

1편 https://brunch.co.kr/@shinyartist/65

2편 https://brunch.co.kr/@shinyartist/70



아일랜드 킬케니 외곽, 광활한 부지에 자리한 샨킬성 농장에서 키우는 동물은 소, 닭, 거위, 개, 고양이 등등 종류도 가지가지에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수를 자랑했습니다. 모든 동물이 사랑스럽고 인상 깊었지만 그중에서도 당나귀는 마치 동화책을 찢고 튀어나온 듯 귀여운 외모를 뽐내는 바람에 저의 사랑을 독차지했어요.

사랑스러운 당나귀 세마리. 출처:샨킬캐슬 인스타그램

선하고 둥근 눈가에 빼곡히 솟은 긴 속눈썹, 머리부터 등까지 난 부드러운 갈기, 잿빛의 큰 콧구멍과 역시나 같은 색의 큰 입은 보면 볼수록 안아주고 싶을 만큼 귀여웠어요. 처음 당나귀 세 마리를 보고 한눈에 사랑에 빠진 저는 주인의 동의를 얻고 당근이나 사과를 꼭 준비해 그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출처:샨킬캐슬 인스타그램

작업실과 침실이 있는 오두막에서 그림을 그리다 산책을 나가면 귀여운 당나귀들이 머무는 들판으로 어김없이 향했어요. 스노 드롭이 요정의 카펫처럼 깔린 1월의 아일랜드는 저를 동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었고, 주인공보다 더 빛나는 조연 당나귀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설렘으로 가득했습니다. 

하얀 눈꽃 요정 같은 겨울 꽃 스노우드롭.
스노우 드롭이 만발한 샨킬캐슬 정원. 출처:샨킬캐슬 인스타그램

진흙으로 가득 들판 어귀를 지나 당나귀가 보이면 열심히 손을 흔들어댑니다. 사람이 먹이 주는 동물이라는 걸 아는 이 똑똑한 동물들은 멀리서 제 모습이 보이기만 해도 느린 걸음으로 절대 뛰는 법 없이 어느샌가 다가왔고, 장난을 치려 다른 쪽으로 걸어가도 어딜가냐며 계속해서 따라왔어요.

"잘 있었어?"

그 예쁘고 커다란 눈망울을 바라보며 반갑게 인사를 하고 가방을 열어 당근을 꺼내 두 손으로 똑 반동강을 냅니다. 세 마리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오도독오도독 리드미컬하게 당근 씹는 소릴 들으며 웃어봅니다. 간에 기별도 안 간다며 더 달라는 눈빛을 보이면

"어쩌지? 그게 다야. 내일 더 갖고 올게. 미안해."

하고는 당나귀들을 쓰다듬습니다. 순한 당나귀들은 간식 주는 두 다리 달린 동물이 작은 손으로 만지는 게 나쁘지 않은지 가만히 서있었고, 저는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당나귀 세 마리를 번갈아가며 어루만져 주었어요. 머리와 볼, 콧잔등 위주로 만지다 보면 제가 꼭 마사지받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러다 문득 세 마리 중 한 마리의 배가 유난히 빵빵한 걸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어머 임신하셨어요?"

부푼 배는 마치 속을 잔뜩 넣어 터지기 직전의 만두처럼 위태위태한 만삭의 모습이었습니다.

"아가를 품은 우리 어머님~ 좋은 것, 예쁜 것만 보고 예쁜 아기 당나귀 낳아야 해!"

임신한 당나귀를 쓰다듬으며 진심을 담아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우리 예쁜 당나귀 임신한 동안 무사하고 건강한 아기 출산하길 빕니다.


아일랜드 당나귀라 한국말을 못 알아들을까 봐 영어로도 말해주었어요. 그때부터 만날 때마다 순산을 기원하는 기도는 물론 태교에 좋은 말도 많이 해주고 노래도 가끔 불러주었습니다. 혼자 아일랜드로 그림 그리러 와서 이렇게 귀여운 동물친구도 사귀게 되어 감사한 마음에 마치 대모라도 되는 것처럼 지극정성으로 덕담을 들려주었어요. 좋은 게 좋은 거니 당나귀가 아름다운 것만 취하고 순산하길 바랐습니다. 임신한 당나귀는 제말을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건지 그저 특유의 순둥순둥 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지만, 그때 느낀 순수한 동물과의 교감에서 얻은 평화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기쁨을 안겨주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루븐과 엘렌의 오두막에서 (제가 있던 오두막에선 가깝지만 성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서 사는 성주인 아들 부부) 저녁 초대를 받고 담백한 아일랜드식 저녁식사를 하며 당나귀 이야기를 꺼냈어요.

"당나귀 출산예정일은 언제예요?"

"출산? 무슨 소리예요? 세 마리 다 수인데."

루븐의 말은 실로 충격적이었어요.

"걔들 그냥 뚱뚱한 거예요. 하도 많이 먹어서."

"..."

그동안 진심 어린 기도를 하고, 어루만져주며, 태교에 좋대서 노래까지 불러댔던 그 정성들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어요. 뚱뚱한 수컷 당나귀라니요... 분명히 세 쌍둥이는 들어있을 만큼 배가 불렀었는데...! 황당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지만 혼자서 오해한 것도 너무 웃겼어요. 만약에 당나귀들이 제가 한 말을 알아들었다면 더 웃길 노릇이었습니다.

'뭐야 이 인간? 지금 나 임신한 줄 아는 거야? 난 남자라고~ 어이없네.'

이랬겠죠?


그리고 그다음 날, 당나귀들의 들판으로 놀러 가 당근을 주며 말을 걸었습니다.

"야 너네들 다 남자라며? 임신한 줄 알고 혼자 쇼했잖아!"

여전히 크고 순진한 눈망울로 저를 바라보던 만삭 당나귀 아니 살찐 당나귀는 제말을 듣기는커녕 당근만 탐할 뿐이었어요. 당근은 금세 동이 나고 더 달라는 몸짓으로 제게 가까이 다가오던 통통 당나귀에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많이 먹으니 임신했다는 오해를 받는 거야. 적당히 먹자~"

좋게 타이르며 심각한 배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는데 터질 것 같은 아랫배 뒤쪽에 달린 뭔가가 확 눈에 띄었어요.

"꺄악!"

처음 본 당나귀의 당혹스러운 생식기의 모양에 눈앞이 하얘졌어요.

"헉 이게 뭐냐? 당근 잘 먹고 이 시점에서 뭐하는 짓이냐? 너.. 변태구나. 물론 매력적인 이성에게 끌리는 너의 본능은 이해해. 하지만 넌 당나귀고 난 사람이야. 미안해. 우린 이루어질 수 없어."

아무래도 그동안 예쁜 말만 해주며 간식을 챙겨준 제게 연애감정을 느끼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남성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된 것 같았어요. 아니면 수컷 셋이서만 지내다 보니 많이 굶주렸나 봅니다.


임신한 예비산모 당나귀인 줄 알고 베푼 작은 온정에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인 당나귀 소년으로 인해 엄청나게 당황했지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던 아일랜드 이야기였습니다.


Working on progress
아일랜드 당나귀와 스노우드롭. 종이 위에 수채. 노니 그림


재작년에 스노 드롭과 스코틀랜드의 아담한 성도 그려봤어요.

연필 밑그림
종이 위에 수채. 그리다 내팽겨치고 만 미완성.. 언제쯤 다시 그리게 될까요?


스코틀랜드의 크레이기버 캐슬



 입주화가 프로그램으로 머문 아일랜드의 샨킬캐슬


창작동화 보석으로 만든 성입니다. 종이 위에 아크릴.


잉글랜드의 헤르스몬수스캐슬. 종이 위에 수채.


♡더 많은 그림 보러 놀러 오세요♡

https://www.instagram.com/nonichoi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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