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한 겨울 추위를 피해 오두막으로 들어온 생쥐 소동으로 작업실 겸 숙소인 예술가의 오두막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투입되었어요. 귀여운 턱시도 고양이 '미스터 티들스'는 밖에서 잡초처럼 자라온 시고르자브종 고양이로 샨킬성 건물 바로 바깥에서 사는 다른 세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방목되어 살고 있었지요. 엘리자베스가 고양이들이 발톱으로 카페트나 벽면, 그림들을 긁어놓는 걸 참지 못해 밖에 내놓고 키우는 통에 아이들의 상태는 꾀죄죄하고 추위에 떨어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지만 (다행히 나무로 만든 고양이집은 마련되어 있었고 밥도 잘 챙겨주셨어요), 미스터 티들스는 발육상태도 좋고 집고양이처럼 꽤 귀여운 편이었어요.
엘리자베스가 고양이의 식량인 고기 파우치를 박스째 가져다준 뒤 우리의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고양이를 어릴 때부터 몹시도 좋아해 온 터라 신이 난 저는 미스터 티들스와 함께 생활하게 되어 그저 기뻤어요. 동물 털 알레르기가 있는 비염환자이지만 콧물과 재채기도 무시할 만큼 고양이를 좋아하는 고양이에 미친 여자입니다.
입주 화가 프로그램으로 홀로 그림 그리며 지내다 가끔 외로움을 타기도 했는데 고양이가 오고 난 후로는 퍽퍽했던 일상에 윤기가 더해져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했어요. 다행히 티들스는 저를 좋아했고 제가 차려준 첫 끼를 먹고 나서 눈을 게슴츠레 뜨고 쳐다보며 사랑의 빔을 은근하지만 느끼하게 쏘아주기도 했어요. 우리는 점점 친해졌고 새 주인님은 급기야 침대 위까지 친히 납시고는 제 발 부근에서 단잠을 청하기도 했답니다. 그런 고양이가 너무 예뻐서 열렬히 쓰다듬어주고 아낌없이 뽀뽀를 해주는데 코끝에 뭔가 특이한 향기가 닿았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한 잊지 못할 그 냄새.
메주뜨는 냄새 같기도 하면서 오랫동안 빨래를 하지 않은 옷을 입고 씻지 않은 사람이 풍기는 그 꾸리꾸리 한 냄새가 아일랜드 시골 고양이의 몸에서 풍겨 나오고 있었어요. 제 코는 작은 충격에 휩싸였고 입은 할 말을 잃은 채 고양이에게 다가갈 땐 웬만하면 숨을 쉬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뉴질랜드, 호주, 영국에서 캣 시터를 하며 수많은 고양이를 접해봤지만 이런 냄새가 나는 고양이는 처음이었어요(비염인데 후각은 왜 이리 예민할까요).
'참, 밖에서 노숙하는 고양이란 걸 잊고 있었네.. 얘는 길고양이나 다름없지. 집고양이가 아닌걸 깜빡했네.'
미스터 티들스는 왠지 애잔하면서 정이 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고양이었어요. 배가 터질 때까지 먹겠다는 신념으로 뭉쳐 심하게 먹을 것을 탐하고, 뒷문에 뚫려있는 고양이 전용 문(Cat flap)을 전혀 이용할 줄 몰라 제가 항상 현관문을 열어줘야 했을 만큼 살짝 둔하고 흑곰 같은 고양이었죠. 그래도 애교는 엄청나서 기분이 좋거나 뭔가 원하는 게 있을 땐 두발로 점프를 해 머리를 제 손으로 박치기하는 대단한 묘기를 선보이기도 했어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크게 웃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이야~ 돌고래처럼 점프하는구나! 티들스 멋지다! 우리 돌고래냥♡"
게다가 티들스는 살생을 하지 않는 착한 고양이었어요. 쥐를 단 한 번도 잡은 적이 없었죠. 어느 저녁,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출입문 위 나무틀에서 뭔가가 바닥으로 툭 떨어지길래 가보니 아주 작은 생쥐였어요. 생쥐에게 다가가던 티들스에게
"안돼! 내버려 둬!"
하자 티들스는 쥐에게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을 뿐이었어요. 불쌍한 생쥐는 높은 데서 떨어진 뇌진탕 후유증인지 그 작은 코에서 피가 났고 눈도 제대로 못 뜨며 사경을 헤매고 있었어요. 가여운 마음에 생쥐를 투명한 통에 옮겨 토마토와 치즈를 먹이로 넣어주고 차도를 지켜봤지만 안타깝게도 다음날 뻣뻣하게 경직된 모습으로 발견되고 말았습니다. 샨킬캐슬에서 제일 볕 잘 들고 낭만적인 사과나무 아치 아래에 흙을 파 쥐를 묻어주고, 봄이 되면 사과꽃이 될지도 모를 그 작은 생쥐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만약에 티들스가 보통 고양이들처럼 쥐를 잘 잡는 고양이었다면 그 생쥐는 물리고 뜯기고 괴로움의 피바다에서 몸부림치다 생을 마감했겠죠..
Apple arch in Shankill castle. 샨킬캐슬 인스타그램. 저 여인은 제가 아닙니다.
더러움 주의
그러던 어느 밤, 여느 때보다 배가 고파 보이던 티들스는 늘 먹는 고기 파우치에 제가 준 치킨까지 맛있게 먹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루밍을 하고 있었어요. 그날따라 많이 피곤했던 저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자는 동안 티들스가 출입문을 긁는 소리에 깼지만 일어나서 아래층으로 가기 귀찮아 주인님을 무시하고 다시 잠에 빠져 들었어요. 그러다 또다시 두 번째로 긁는 소리에 깨서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머리가 아찔해졌습니다. 티들스의 응가 냄새가 심하게 진동하고 있었지만 어디에도 똥은 보이지 않았어요.
"어디에 똥 싼 거야? 네가 문 열어 달라고 했을 때 열어줬어야 했는데.. 내 탓이구나. 미안하다."
티들스는 그저 절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어요. 냄새는 더욱 코를 찔러댔고 그 진한 육식동물의 응가 냄새에 잠이 달아난 저는 어서 냄새의 출처를 찾아 치우고만 싶었습니다. 부엌 바닥을 아무리 살펴봐도 안 보이고 식탁 밑에도 똥은 없었어요. 싱크대인가? 싱크대 문을 활짝 열자 한 바가지는 족히 될 양의 똥이 드디어 그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뒷목 잡고 쓰러질 만큼 아찔한 대변의 양에 너무나 놀라버렸어요. 그것도 된똥이 아닌 살짝 묽고 퍼진 형상이라 더 심각했습니다.
'사람도 저만큼은 안 싸겠다! 이야~ 많이도 쌌다! 하긴 그렇게 먹어댔으니... 근데 왜 싱크대 안에 들어와서 싼 거야 치우기도 힘들게...'
다행히 아무것도 없던 싱크대 안이라 더러워진 바닥만 치웠지만 잠이 덜 깬 채로 새벽 다섯 시에 하기엔 고된 노동이었어요.
청결해야만 하는 부엌에 용납할 수 없는 빅 똥을 선사해준 티들스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하며 열심히 똥을 치웠습니다. 치우는 과정을 자세히 열거하려다 읽으시는 분들의 비위를 위해 여기서 멈춥니다. 그 사건은 (새벽 다섯 시에 싱크 대안에서 고양이 똥 치운 흔치 않은 일) 5년이 넘도록 잊히지 않는 더러운 추억으로 남았지만 아직도 의문이 들어요. 왜 하필 싱크대 안에 실례를 했을까요? 나무로 된 오래된 싱크대가 모래 대용으로 그나마 괜찮았던 걸까요? 늘 모든 걸 밖에서 해결하는 시골 고양이라 집안에 모래상자를 깜빡하고 챙겨주지 못했던 뜨내기 집사의 불찰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추신 -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동기화하지 않은 스마트폰 고장으로 천장이 넘는 아일랜드와 스위스, 스코틀랜드에서의 사진을 잃어버리고 이메일에 남은 대여섯 장의 사진과 일기장에 적어둔 걸 토대로 기억을 더듬어가며 글을 썼어요. 덕분에 티들스 사진은 한 장도 없지만 그 아이의 성격이나 외모, 냄새는 신기하게도 제게 또렷하게 남아있어요.
찰리와 엘리자베스의 딸 시빌. 발음 주의.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에서 찾은 티들스입니다.
영원히 잊지 못할 똥싸개 돌고래냥 미스터 티들스는 제가 샨킬성을 떠나던 날 새벽에 끝까지 제 곁을 지키며 배웅을 했고 그 후로 만나지 못했어요. 신기하게도 1년 후 에딘버러에서 티들스와 너무나도 닮은 찰리를 만나 5개월 간 함께 살며 돌보게 되었습니다. 생긴것도 하는 짓도 티들스와 비슷한 찰리를 그린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