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가 있던 자리

by 꽃마리

첫째 아이가 태어난 뒤로 우리 가족은 창경궁 산책을 즐겼다. 주말 오전, 근처 창덕궁이나 경복궁에 비해 한적한 창경궁은 차분히 걷고, 대화를 나누고, 나무와 새와 물고기를 바라보는 일이 잘 어울리는 곳이다. 입구에서 오른편으로 걸어 들어가면 커다란 연못이 나온다. 북악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모여 연못이 되었다는 춘당지다. 춘당지 너머에는 대온실이 자리하고 있다. 아기 손톱만 한 꽃잎이 아른거리는 작은 식물부터 어른 얼굴만 한 잎이 달린 식물, 벌레를 잡아 양분을 취한다는 식충식물까지, 대온실이 가꾸는 식물은 하나같이 귀해 보였다. 세 살 터울의 둘째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창경궁 나들이는 계속되었다. 세종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창경궁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우리 가족의 쉼터였다. 두 아이는 아빠 품에 안겨 평소보다 하늘에 좀 더 가까워진 채 나무를 바라보다가, 흙을 밟으며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더니, 뽀얗고 소소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어다녔다.


춘당지 주변에, 산을 닮은 아담한 바위가 있었다. 두 아이는 함께 바위에 올라가 잠시 앉아 있곤 했다. 숨을 한 번 고른 뒤 아빠의 손을 잡고 올라갔다. 먼저 첫째가 꼭대기 봉우리에 허리를 곧게 세우고 여왕처럼 기품 있게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이어 둘째가 여왕 아래 봉우리에 자리를 잡는다. 우리는 커가는 아이들의 몸과 작아지는 바위의 세월을 사진에 차곡차곡 담아 두었다.


하루는 근처 대학병원에서 채혈을 하고, 두 시간 후로 잡힌 진료를 기다리며 창경궁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대온실 근처 벤치에 앉아, 병원 카페에서 사 온 커피와 함께 추로스를 먹으며 책을 읽었다. 포근한 봄날이었다. 평일 오전에 한가롭게 궁에 앉아 있자니, 나는 세상에서 바랄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혼자 있을 공간이 그립던 내게 그곳은 천국이었다. 추로스를 두 개째 꺼내 먹고 있을 무렵, 어디선가 ‘야옹’ 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근처에 고양이가 있나 하고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시선을 내 몸 앞으로 가져갔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내 신발에서 겨우 30cm 정도 떨어진 곳에 고양이 한 마리가 쪼그리고 앉아 내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야옹’ 하고 말을 걸고 있었다. 작고 날씬한 아기 고양이였다.


“야옹, 그거 나도 좀 줘.”

추로스가 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거? 기름지고 단데 먹으려고?”

평소에 고양이를 보면 피하곤 했는데, 나도 모르게 고양이의 말을 받아주고 있었다.

“야옹, 빨리 줘.”

“알았어. 그럼 기다려 봐. 설탕 좀 털어서 줄게.”

뭘 맡겨 놓은 듯 구는 고양이의 재촉에, 서둘러 빵에서 설탕을 털어 내고 기름기 없는 부분을 내 손톱만 한 크기로 뜯어 발밑에 놓아 주었다.

“조심해서 먹어. 근데 이거 몸에 안 좋아. 조금만 먹어.”

안 가고 버티며 계속 내놓으라는 눈치여서 남은 추로스를 잘게 뜯어 주었다. 고양이 시중을 드는 집사의 마음을 이때 처음으로 이해했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야, 잘 지내.”


몸을 일으키는데, 나와 있는 시간이 좋았는지 따라오려고 했다. 머리라도 쓰다듬어 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 그럴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마침, 우리 주변을 걷고 있는 분들이 있어서 일행인 척 그분들 뒤에 붙어 걸었다. 고양이가 제 갈 길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그날 밤에 누워서 창경궁에서 만난 고양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강아지도 고양이도 엄마 때문에 못 키운다고 생각하고 있던 아이들은 “엄마가 그랬다고? 그럼, 우리도 고양이 키우자.” 하며 좋아했다. 그 무렵 우리는 이부자리를 펼치고 책을 읽는 대신, 나란히 무릎을 세우고 누워서 고양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어릴 때 친구 집이나 골목에서 고양이를 맞닥뜨리고 깜짝 놀라 도망갔던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냈다. 내가 들려주는 고양이들이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아이들이 “와, 예쁘다.” 했다. 우리는 그 고양이들에게 이름을 하나씩 붙였다. 창경궁에서 만난 고양이는 마이클이 되었다. 한 명이라도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바로 탈락시켰다. 그러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살포시 잠이 들었다.


몇 해 전,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고 처음으로 창경궁을 찾았다. 춘당지 앞 우리가 기억하는 그 자리에 다다랐을 때 더 이상 바위는 없었다. 옆에 춘당지를 관리하는 분이 계셔서 물어보았다. 사람들이 그 바위에 올라갔다가 넘어지는 사고가 여러 번 발생하는 통에 바위를 치웠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금은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 그건 알지 못한다고 했다. 바위가 있던 자리에서 아쉬워하다 발길을 돌렸다. 봄날의 창경궁이 그리운 요즘이다. 꽃들이 한창일 것이다. 창경궁 대온실이 배경인 장편소설을 읽은 뒤여서 그곳 생각이 더 자주 난다. 책장을 넘기는 내내, 포근했던 시간이 한 장 한 장 펼쳐졌다. 마이클은 아직 그곳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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