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글씨 잘 쓰는 친구들의 필체를 따라 쓰다 고등학생이 되어 ‘우리 반 한석봉’이란 별명을 얻었다. 지금의 내 필체는 한석봉과 거리가 있다. 돌이켜 보면 글씨를 잘 써서라기보다 메모를 유난히 많이 하고 필기를 깔끔하게 해서 그런 과분한 별명을 얻은 것 같기도 하다. 친구들은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면 내 교과서나 공책을 가져가 옮겨 적었고, 한 친구는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 선생님에게 보내는 편지를 나에게 대필시켰다. 나는 편지 대필이 즐거웠다. 성심을 다해 친구의 글을 편지지에 옮겨 적었다. 필기나 편지 대필이 즐거웠던 것은, 작업의 도구가 연필이었기 때문일 거라고 지금의 나는 추측한다.
연필로 하는 필기는 학령기를 훌쩍 넘어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내 일과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꼭 볼펜이나 사인펜으로 써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언제나 연필이다. 삼손의 힘이 머리카락에서 나오듯 나의 힘은 기다란 흑심(黑沁)과 그것을 감싸고 있는 나무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삼손만큼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는 건 아니지만, 생각을 깊고 정교하게 하는 데 내게 연필만 한 것은 없다. 연필을 꼭 쥐고 이면지 여기저기에 쓱싹쓱싹 메모하다 보면, 풀리지 않던 어려운 문제들의 실마리가 불쑥 보일 때가 있다. 시도해 보진 않았지만, 쓱싹쓱싹 소리가 나지 않고 지우개로 지울 수 없는 볼펜으로는 하지 못할 일이다. 그래서인지 연필이 몹시 사랑스럽다. 매일 밤, 다음 날 일터에서 함께 일할 내 작은 친구들을 찾는 시간이 귀하다. 연필의 키가 줄어들면 깍지를 끼워 조금 더 쓰다가 2~3센티미터로 몸집이 작아지면 일을 그만두고 편히 쉴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준다. 그렇게 모은 몽당연필이 상자 안에 가득하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면, 나와 평생 일한 연필들이 편안히 잘 쉬고 있는지 들여다보며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은퇴 후의 내 시간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연필과 내가 각별한 사이라는 걸 아는 동료들은 색다른 연필을 발견하면 한 자루 두 자루 사다 준다.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다녀와 기념품 가게에서 샀다며 알록달록한 연필을 내민다. 동료들은 연필을 보면 자동으로 내가 떠오른다고 했다. 누군가를 떠올렸을 때 함께 바로 떠오르는 물건이 있다는 건 선물을 주는 사람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 축복이라고 했다. 내가 사 모은 양도 어마어마한데 동료들까지 그런 논리로 내게 연필을 안기다 보니 우리 집에는 삼백 해를 살아도 다 못 쓸 연필이 가득하다. 세어 보진 않았지만, 족히 삼백 자루는 넘을 것이다. 가끔 연필 나눔을 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내가 가진 연필들이 단 하루도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누워 지내다 생을 마감한다고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시려 온다. 하여 요즘엔 여행 가는 동료에게 미리 말한다. “저 연필 사다 주지 마세요.”
예전보다 손에 힘이 없어져서인지 요즘엔 내가 바라는 대로 글씨가 잘 써지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글자의 모양을 만들어 보려고 해도 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 특히 니은, 비읍, 리을, 히읗은 내가 원하는 모양이 나오지 않아 그대로 두었더니 이제는 완전히 굳어져 버렸다.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시간이 어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상을 치르고, 엄마가 혼자 살던 집에서 며칠간 유품을 정리하다가 무수히 많은 메모 노트를 발견했다. 원래 메모를 많이 하신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내 메모의 근원은 엄마였다. 쉰을 조금 넘긴 내 필체는 벌써 늙어 원하는 대로 써지질 않는데 여든다섯 엄마의 필체는 늙지도 않고 어렸을 때 내가 보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다정하고 정갈하며 세련된 필체. 내가 가장 먼저 따라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필체가 불교, 요리, 정치, 컴퓨터를 말하며 둥글둥글 흘러가고 있었다. 엄마의 노트를 한참 들여다보다 몇 권을 추려 간직하기로 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정직하니 내 아이들도 언젠가 내가 정성껏 적어 놓은 메모를 골똘히 들여다볼 날이 올 것이다. 유품을 정리하다 말고 ‘그때의 주된 소재는 책, 프랑스어, 여행 동선쯤 되겠지’ 하고 조용히 그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