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름으로 오기 전 뮌헨에서는 주로 산책을 하며 사흘을 보냈다. 가 볼 만한 곳이 많은 대도시지만, 인천에서 헬싱키까지, 다시 헬싱키에서 뮌헨까지 긴 비행을 막 마친 데다 스무날 가까운 여행의 전반부였으므로 쉬엄쉬엄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도 한 곳에는 꼭 들어가 보고 싶었다. 유대인 박물관이다.
프랑크푸르트에 갔을 때 유대인 박물관을 지나치며 본 적이 있다. 무엇이 전시돼 있는지 궁금하면서도 다른 박물관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느라 들르지 못했다. 화면의 지도를 엄지와 검지로 벌렸다 좁혔다 하면서 곳곳을 살피다가 뮌헨에도 유대인 박물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늦은 오후, 지도를 보면서 찾아간 뮌헨의 유대인 박물관은 직육면체의 현대적 건물에 자리하고 있었다. 0층엔 매표소와 기념품 판매점, 카페가 있었다. 지하 1층, 1층, 2층 순서로 관람하라는 안내를 받고 지하 1층으로 먼저 내려갔다. 연세가 지긋한 안내원이 방금 들어선 나를 발견하곤 “가방에 물병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들고 있던 천 가방에 생수 한 병이 들어 있었다. 의례적인 질문이었겠지만, 내 가방에 물병이 있는지 어떻게 알았나 싶어 하마터면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되물을 뻔했다. 안내원이 손으로 가리키는 쪽으로 가 보니 비슷한 연세의 또 다른 안내원이 물품 보관대를 지키고 있었다. 물이 반쯤 남은 물병을 맡기고 전시실로 들어섰다. 그곳에 머문 약 1시간 반 동안 모든 층의 전시실에 안내원과 나만 있었다.
먼저, 연표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읽었다. 뮌헨에 유대인이 언제부터 살았는지, 유대인 수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유대인과 관련해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연표였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관한 부분에서 머리카락이 주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비극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관련된 단어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조인다. 역사 속 장면이라고 거리를 두기에는 아직 100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민주적 방식으로 선출된 정권이 특정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저지른 학살이었다. 나치 독일은 점령지에서도 유대인 학살을 이어 갔다. 그때 희생된 유대인이 600만 명을 넘는다.
박물관은 홀로코스트 희생자와 생존자의 후손들에게 세습된 트라우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트라우마가 삶의 배경으로 배태되어 후손들의 삶의 방식이나 정서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후손들에게는 트라우마가 일상적이고 익숙한 또 하나의 층(layer)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결코 사라질 수 없다고 전시 자료에 적혀 있었다.
트라우마와 마주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전시는 후손들이 회피하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트라우마를 직시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한 예술가는 할아버지의 가방을 재현해 냈다. 그의 할아버지는 세르비아의 수용소로 강제 이송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설탕 조각을 숨길 수 있도록 주머니가 달린 배낭을 직접 만들었다. 그 배낭을 본 적이 없는 예술가는 아버지의 설명을 듣고 배낭을 만들어 본다. 하지만 이모로부터 할아버지의 배낭과 전혀 닮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이모의 기억을 토대로 두 번째 배낭을 만든다. 할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가족의 트라우마가 아버지와 이모에게 전이되고, 나에게 이르러 물리적인 형태로 구현된 것이다.
또 다른 사례는 사진이 매개다. 조상의 사진을 보다가 자신과 얼굴이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에 이른다. 사진의 모습과 최대한 비슷해 보이도록 옷을 입고 동작을 취한다. 사진을 찍는다. 조상의 사진을 더 모은다. 후손들이 각자 자기와 닮은 조상의 모습과 비슷하게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찍은 후손의 사진이 한가득이다.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얼굴이 그러하듯 가족의 역사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로 연결되고 있었다.
전시를 보는 내내 한강 작가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던진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현재로 불려 온 자가 산 자의 삶을 구해 내고 있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강하고 부드럽게 감싸안고 있었다.
천천히 전시를 둘러보고 0층으로 돌아왔다. 카페에 잠시 머물다 갈까 하다가 문 닫을 시간이 다가오는 듯해 그러지 않았다. 바깥의 풍경이 안온하게 느껴져 통창 쪽으로 다가섰다. 시선이 머문 자리에 이스라엘 국기 두 기가 약 10미터 간격을 두고 게양돼 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에 매달린 그 국기를 보고 있자니 그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떠올라 다시 머리카락이 주뼛 서고 말았다. 수천 년을 떠돌며 고난을 겪은 민족이 발붙이고 살 땅을 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할 테다. 하지만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큰 감옥에 갇혀, 언제 죽을지 모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남의 고통으로 치부하고 일상을 사는 것이 부끄러운 나날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최면을 거는 것 같아 더 그렇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과 민간인 학살을 규탄하는 시위가 일고 있다. 나포될 줄 알면서도 구호품을 배에 싣고 직접 가자 지구로 향하는 활동가들이 있다. 말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게 모순이라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