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거리에 서서

by 꽃마리

식물원 정원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나와 몽주 거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파리에 갈 때면 특별한 볼일이 없더라도 몽주 거리에 꼭 들르게 된다. 일종의 의식이라고 할까? 이 거리 근처에 며칠 묵을 숙소를 구하기도 한다. 소피 아주머니는 아직 여기 살고 계실지도 모른다. 이제 학교에서는 은퇴하셨을 테고, 아장아장 걷던 아기 로르도 지금은 서른 살이 넘었겠다.


소피 아주머니 집 건물 앞에서 길을 건너 골목 안으로 좀 더 들어가면 무프타르 거리(Rue Mouffetard)가 나온다. 길을 따라 채소, 과일, 빵, 해산물, 정육, 치즈, 와인 등을 파는 가게가 늘어서 있고, 카페와 식당도 많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활기가 넘치는 거리다.


나는 무프타르 거리 남쪽의 작은 해산물 가게에서 홍합을 조금 사다가, 씻으며 수염을 적당히 떼어 내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른 후 볶아서 먹곤 했다. 홍합에서 즙이 흘러나와 프라이팬에 뽀얗게 물이 고이는데, 맛은 있지만 너무 짜서 조금씩 떠먹어야 했다. 파리로 오기 전에 중부 도시에 머물 때 기숙사에서 만난 부산 언니에게 배운 요리다. 간단하기로는 이만한 요리가 없다. 프랑스어로 홍합은 ‘물(moule)’이다. 집에 놀러 온 친한 한국 언니에게 “물 먹을래요?”라고 물으면 영락없이 물(water)을 권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수업에 갈 때나 집으로 돌아올 때 나는 늘 무프타르 거리를 통과하는 쪽을 택했다. 가게 구경을 하면서 걷는 시간이 좋았다. 어느 날에는 한쪽으로 이어지는 거리에 있는 우체국에 들러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안부 편지를 보냈다. 우체국은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영화 <세 가지 색: 블루>를 그해에 보았는데, 쥘리엣 비노쉬 뒤로 무프타르 거리 이름이 적힌 표지판이 화면에 잡혔다. 영화는 내게 그 장면으로 기억돼 있다. 파트릭 브뤼엘은 2018년에 제목이 무프타르 거리인 노래를 발매했다. 무프타르 거리에서 옛 연인을 우연히 마주치면서 함께했던 시간을 회상하는 노래다. 파트릭 브뤼엘은 후렴구에서 ‘우리가 함께했던 이야기를 꺼내지도, 생각하지도 않아야 하는 이 상황이 싫다’라고 노래하지만, '쌓아 올린 것을 잊는 게 인생'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마주친 옛 연인은 서로 아는 척하지 않는다. 경쾌한 선율에 목소리는 쓸쓸하다.


치즈와 달걀이 들어간 갈레트를 사서 들고 거리 끝 작은 광장으로 걸어갔다. 작은 분수를 가운데에 두고 한쪽에는 누군가 드러누워 있고, 그 옆에서 젊은이들이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카페 야외석에 광장을 바라보고 앉은 사람들이 다정히 커피를 마신다. 나도 돌기둥에 앉아 갈레트를 먹으며 광장의 분위기를 잠시 즐겼다.


이 광장의 이름은 나중에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보낸 시절을 회고한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다. 헤밍웨이의 묘사를 따라가다가 ‘혹시 여기는?’ 하고선 지도를 살펴보니 내가 한때 매일 지나다니던 바로 그 광장이었다. 콩트르스카르프 광장이다.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카르디날 르므완 거리 74번지에 헤밍웨이가 살았던 집이 있다. 들어갈 수는 없고, 건물 입구 벽에 그가 살았다는 정보가 적힌 안내판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이 일대에서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은 약국일 테다. 평범했던 약국이 한국의 단체 여행객을 실은 관광버스가 설 정도로 유명한 화장품 전문 약국이 되었다.


* 헤밍웨이의 책 영어 원서는 헤밍웨이 사후인 1964년에 출간된 『A Moveable Feast』이다. 한국에서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이숲, 2012), 『호주머니 속의 축제』(민음사, 2019), 『서툰 시절』(아르테, 2025)로 출간되었다. 나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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