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고 연극 보고

by 꽃마리

무프타르 거리에 있는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점심 식사를 함께하고 헤어진 아이에게 다시 만날 장소를 알려주기로 했는데, 그러기에 맞춤한 곳이었다. 모하메드 아르쿤(Mohammed Arkoun)의 이름이 붙은 공공 도서관이었다. 찾아보니 그는 알제리 출신의 이슬람학 연구자이자 사상가다.


파리에는 인물의 이름을 내건 공공 도서관이 많다. 14구 몽파르나스 묘지 근처에는 조르주 브라상 도서관이 있고, 20구 페르라셰즈 묘지 근처에는 마르그리트 뒤라스 도서관이 있다. 20구에는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 도서관도 있다. 1구 퐁피두 센터 근처에는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 도서관이 있고, 10구 동역 인근에는 프랑수아즈 사강 도서관이 있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동네 도서관과 유사한데, 한 곳에서 대출증을 만들어 여러 곳에서 함께 사용하는 것도 같다.


사람들이 책이나 신문을 읽고, 노트북이나 태블릿으로 공부나 작업을 하고 있다. 한 팔을 길게 늘어뜨린 채 팔뚝에 고개를 내려놓은 사람도 있다. 어디에 있는 도서관과 다르지 않은 일상의 공간이다. 나는 태블릿과 휴대용 블루투스 키보드를 꺼내 일기를 썼다.


나는 도서관이 없으면 살지 못하는 사람이다. 내 관심은 온통 책에 쏠려 있다. 읽을 책이 많아서 늘 혼자 바쁘다. 여러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는데, 특히 집 바로 앞에 있는 공공 도서관은 퇴근길에 들러 예약해 놓은 책을 받아오기에 좋고, 약 1킬로미터 떨어진 또 다른 공공 도서관은 밤 열 시까지 문을 열어 놓기에 저녁 산책길에 들르기에 더없이 좋다.


내 일상에서 가장 큰 파문은, 하루이틀 사이에 여러 도서관에서 예약해 놓은 책을 찾아가라는 연락이 한꺼번에 올 때 인다. 읽고 있는 책이 있고, 그다음으로 읽을 책이 대기하고 있고, 그새를 못 참고 사놓은 책들이 탑을 쌓고 있는 상태에서 또다시 여러 권의 책이 나에게 밀려들기 직전의 순간이다. 이즈음에는 예약해 두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다. 그럼에도, 찾아가라는 책의 제목을 확인하고 나면 외면하기 어렵다. 그렇게 빌려온 책 대부분은 다 읽히지 못한 채로 또는 첫 문장만 읽힌 채로 반납되어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내 손에 들어오게 된다.


대학에 다닐 때 시험 기간에 도서관에 자리가 없으면, 동십자각에서 삼청동 가는 길에 있던 프랑스 문화원 도서관으로 가서 시험공부를 했다. 문화원 안에 작은 영화관이 있어 오래된 프랑스 영화를 상영해 주었다. 나는 영화를 보러 문화원에 자주 들렀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이웃집 여인>을 그곳에서 보았다. 제라르 드파르디유와 파니 아르당이 나오는 영화다. 나는 그 영화에서 파니 아르당을 처음 보았다. 프랑스 문화원은 지금은 사라졌다.


그때는 있고 지금은 없는 것 중에 또 하나 아쉬운 건 동십자각 맞은편의 아주 작은 샌드위치 가게다. 프랑스 문화원에서 나와, 왔던 길을 반대로 다시 걸어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샌드위치가 그곳에 있었다. 갖가지 속 재료 중에서 나는 자주 마요네즈 소스에 버무려진 참치를 골랐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가게는 프랑스 문화원보다 먼저 문을 닫았다. 프랑스 문화원이 서울역 근처로 이사를 갔다는 소문을 듣고 서너 해 전에 찾아가 보았는데, 어렴풋이 흔적만 있고 운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어느새 아이가 도서관 내 앞으로 왔다. 아이가 대출증을 만드는 모습을 자리에서 바라보았다. 도서관에서 나와 생제르맹 거리와 생미셸 거리로 향했다. 위셰트 극장(Théâtre de la Huchette)에서 외젠 이오네스크의 희곡으로 만들어진 연극 <대머리 여가수>를 봤다. <대머리 여가수>는 1950년 5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녹탕뷜 극장(Théâtre des Noctambules)에서 니콜라 바타유(Nicolas Bataille) 연출로 초연되었고, 1957년 2월부터 지금까지 위셰트 극장에서 역시 외젠 이오네스코의 희곡으로 만든 연극 <수업>과 함께 매일 공연되고 있다. 위셰트 극장은 객석이 약 80석인 아주 작은 극장이다. 어디에 앉아도 무대가 잘 보이기에 좌석은 별도로 지정하지 않고 원하는 자리에 앉아 관람한다. 스미스 부부와 마틴 부부, 하녀 메리 그리고 소방대장의 진지하고도 과장된 행동과 표정이 오래 남아 있다.


연극 관람을 마치고 아이와 나는 몽파르나스비엥버뉘 지하철역에서 헤어져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