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지우가 정말 활발하네요."
선생님이 상담자료로 보이는 서류 몇 장을 손에 든 채 내게 걸어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활발하다'라는 형용사가 이렇게 부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온 것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활발하다'라는 것은 생기 있고 힘차며 시원스럽다는 의미로 '기운차다' '명랑하다' 등의 유의어가 있다. 아들 녀석이 생기 있고 힘차며 시원스러운 것은 분명 반가운 일지만, 학생으로서는 반가워할 일이 아니라는 메시지처럼 들렸다. 오늘도 한 개씩 내려가면 될 계단을 세 개씩 내려가 혼이 났다고 했다. 사실 집에서 나오기 전 아이에게 이미 들은 이야기라 놀랄 것도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 얼마나 뛰어다니는지에 대한 '뜀박질'을 주제로 한 내용이 제한된 상담시간 20분 중 1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왜 뛰는 것인가. 선생님도 모르겠다고 했다. 열 명 중 여덟이 뛴다고 했다. 혼자 뛰는 건 아니니 일단 다행이었다.
"선생님,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
진심인지 가식인지 모를 말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이는 항상 밤이 되면 감수성이 풍부해진다. 얼마 전 '욜로족 두목님(아이 외할아버지)'이 처진 눈이 불편해 눈 성형 수술을 하셨다. 수술 전날 아이는 잠자리에 누워 외할버지를 위해 기도하며 눈물을 훔쳤다. 할아버지에게 뚱뚱하다고 저팔계 같다고 놀렸던 일이 후회된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자기 입에 고기를 넣어줬던 일이 떠오른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수술을 하다 피가 많이 날까 걱정을 했다. 이랬던 아이가 요즘은 밤마다 선생님 이야기를 꺼낸다. 불같이 화를 내는 선생님이 무섭다고 한다. 자기에게 불같이 화를 낸 건 아니지만 진짜 무서운 선생님을 만난 것 같다고 했다. 얼마 전 이발을 했는데 그 이후로 선생님에게 더 많이 혼나는 것 같다며 머리가 빨리 자랐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선은 선생님 입장이 되어 아이를 달래 본다. 엄마로서 학교는 보내야 하니 별 수가 없었다. 아이가 이유 없이 밤바다 선생님 이야기를 꺼낼 리 없지만, 선생님도 이유 없이 아이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모든 게 아이들을 위한 선택이었겠지라고 억지로 생각했다. 나에게도 위로가 필요했다. 이제 막 시작된 아이의 새 학기가 반갑지 않은 느낌으로 나를 조여왔다. 내가 널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