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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제시 Jul 24. 2023

권고사직을 부탁드립니다. (1)

최대한 깔끔하게

욕을 하지 않고 최대한 절제된 표현으로 어떻게 마지막 일침을 가할 수 있을까.

카톡 채팅창에 쉴 새 없이 움직였던 내 손가락, 분노에 찬 눈빛, 이런 저급한 인간과 내가 엮이고 말았다는 실망감, 세상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모든 감정이 뒤섞여 나의 뇌는 심장처럼 뛰었다.


"수준 높게 이야기를 하니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는 것 같아서 선생님의 수준과 비슷한 말투와 수준으로 카톡을 좀 드렸는데 이제 좀 이해를 하실련지요. "

내가 보낸 이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더 이상의 카톡을 남기지 않았다.




퇴사를 한지 한 달 정도 된 H는 어느 날 밤 내게 카톡을 보내왔다.  


"원감님, 퇴직 시 원장님과 의 대화에서 '권고사직' 처리를 해주신다고 하셨었는데, 퇴직 이후에 말씀이 달라지셨습니다. 원감님도 혹시 알고 계신 사항 이실까요?"


직장인들의 퇴사사유는 다양하니 퇴사사유는 밝히지 않겠다. 그녀는 분명 스스로 퇴사하겠다고 밝혔다. 정확한 날짜까지 이야기를 하며 평소 준비해 왔던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와 원장님을 충격 속에 빠트렸다. 학원이 속한 지역에 동호회를 3개나 참여하고 있으며, 회원들 중 학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들이 많다고 했다. 자신을 권고사직 처리를 해주시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시면 학원에서의 모든 일을 '함구'하겠다고 했다. 이런 걸 보고 '어불성설'이라고 표현하면 될까. 저런 태도의 근본에는 어떤 심리가 작용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중대한 사안이 학원 안에 있길래 무엇을 함구하겠다고 하는 것인지.

무엇을 함구하겠다는 것이냐고 묻자 전반적인 '학원의 문제들'이라고 답변했다. 혹시나 학원 어느 구석에 쌓인 먼지 같은 것을 트집 잡으려고 하나 생각했다. 원장님과 나는 말문이 막혔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답변을 본인의 의견을 수락했다고 오해한 것이다. 이곳은 5세부터 고등학생까지 영어를 배우러 오는 대형 어학원이다. 인터넷에 악성댓글 하나로 식당이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H는 그것을 간파하고 대놓고 협박을 했다. 죄를 지은일이 없어도 경찰이 집으로 찾아오면 누구든 놀랄 것이다. 마치 그런 심리를 이용해 그녀는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고 했다. 용서가 되지 않았지만 원장님은 달랐다. 여기서 고용주와 근로자의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용사로 변했지만 원장님은 방관자의 느낌에 가까웠다. 이상한 소문이 돌아 아이들이 학원을 그만두더라도 내 '월급'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내 월급이 깎이더라도 그녀의 태도는 용서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회사대표의 입장은 확연히 다르다. 가능하면 조용히 넘어가길 바라시는 것 같았다. 그런 그가 안쓰러워 보이기도 비겁해 보이기도 했다. 나라면 어땠을까. 내가 원장이라면 어땠을까.




결국 그녀는 '자진퇴사'로 처리되었다. 그것이 맞기 때문에.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원장님을 방관자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후회스러웠다. [인터넷 댓글장난이 무서워 불법을 눈감지 않으셨음에 존경을 표한다.]

그리고 한 달 후 그녀는 내게 위와 같은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다. 마치 내가 이 학원의 대표인양 원감님이 깔끔히 처리를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 연락을 했다고 했다. 관리자의 직분으로 일을 하고 있지만 나도 그녀와 같은 위치의 근로자일 뿐이다. 이런 부탁을 왜 내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폭포수 같이 쏟아지는 메시지를 보내왔고 그중 내 눈에 유독 눈에 띄는 글 한줄이 보였다.


'원장님과 원감님 사이에 떳떳하지 못한'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내가 원장님과 무엇이 떳떳하지 못한 지 재차 물었지만 카톡으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라며 전화통화를 유도했다. 이 사건이 너무도 큰일이라서 이걸 '함구'하는 조건으로 '권고사직'을 요청드린 것이었는데 어떻게 약속을 지키지 않으실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전화를 했다. 두 아이는 잠이 들었고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남편이 옆에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는 남편과 함께 내용을 듣고자 스피커버튼을 눌렀다.


그녀의 목소리가 우리 집안에 가득 찼다.


" 네 선생님. 시간이 늦었는데 카톡으로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하셔서 전화를 드렸어요."

" 네 원감님. 저는 원장님과 원감님이 어느 정도 원내 사정을 아시고 제가 '함구'하겠다고 하니 '권고사직'을 약속해 주신 주 알았거든요." [절대로 권고사직을 약속한 적이 없다]

"선생님,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이 이 지역에 동호회활동을 언급하며 무엇인가를 '함구'하겠으니 권고사직을 해달라고 하셨죠. 실업급여를 받고 싶으시다고요. 그래서 제가 무엇을 '함구'하겠다는 건지 물었을 때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


갑자기 그녀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원감님, 원어민 선생님이 원장님과 원감님이 차 안에 같이 있는 사진을 찍었어요!"

"네? 무슨 사진이요?"

"원장님과 원감님 사진이요. 키스요. 키스하는 사진이요. 그걸 선생님들이 다 돌려봤고요."


울먹거리며 세상 진지한 이야기를 해주는 그녀 앞에서 나와 남편은 소리도 못 내고 배를 잡고 웃었다.

-제가 남자 키는 안 봐도 머리숱은 봅니다만- [죄송합니다. 원장님]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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