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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yking Aug 19. 2021

서른 살, 우울의 원인에 대한 고찰들 (5) 다이어트

#5. 나잇살이란 게 정말 있나 보다. 무거워진 몸과의 전쟁


앞선 주제들이 너무나도 무거운 주제들이라 글을 적는 내내 심적인 피로도가 상당히 높았기에 오늘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주제에 대해 적어보고자 했다. 가볍지만 절대  존재감만큼은 작지 않은 그런 모두의 숙제. 바로 ‘다이어트 우울의 관계이다. 아, 정말 살 얘기를 꺼내니 벌써부터 한숨이 나온다.


#나잇살을 알아버린 나이

어릴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30대가 되어보니 정말 이해가 잘 되는 개념 중에 ‘나잇살’이라는 게 있다. 분명히 나의 식습관은 딱히 달라진 것 같지 않은데, 20대 때와는 달리 살이 너무 잘 붙는다. 사실 20대 때에는 살이 좀 찐 것 같으면 한 사나흘 굶으면 바로 원래대로 돌아오곤 했었다. 그리고 그것도 많은 빈도가 아니었던 게, 나는 내가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인 줄 알았을 정도로 다이어트란 개념 없이 20대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30대가 되고 나니 정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이렇게 살이 찔 수 있다고? 심지어 예전 방식으로 사나흘 굶어도 체중은 그저 잠깐 부기만 빠졌다가 다시 돌아와 버린다고?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변화이다. 그래서 조금만 더 독하게 굶어보려 하면 바로 위장이 쓰리고, 입안에 구내염이 생기고 눈밑이 떨리고.. 이렇게 저장된 에너지가 많은데 여기저기에서 몸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아주 가관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 친구들 모두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듯하다.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나는 자리면 다들 얼굴은 정말 그대로인데, 단 하나, 뱃살이 불룩하게 나와 영락없는 30대 직장인의 모습이 되어버린 친구들이 많아 참 재밌다. (물론 이런 건 내 이야기일 때 전혀 재밌지는 않다.)


#스트레스와 군것질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점은 내가 이렇게도 군것질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는 점이다. 일단 아침에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사무실에 도착해서 메신저로 나의 절친 동료에게 말을 건다.

‘굿모닝. OO님 커피 먹었어?’

아침을 챙겨 먹지 못했다는 이유와 오늘 하루도 힘내려면 커피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리고 어제 했던 업무 중에 심히 열 받았던 일에 대해 열을 올리며 일러바치기 위해(?) 회사 건물 지하에 있는 카페로 가  ‘아이스 바닐라 라떼’를 습관처럼 사 먹었다. 일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젤리, 초콜릿, 과자들이 등장한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과자로 나누며 스트레스로 인해 찌푸려졌던 미간을 살살 편다. 그러다 이미 예전에 다 끝내 둔 엑셀에서 숫자가 안 맞는 걸 발견하곤 이마를 짚는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또 다른 울 것 같은 표정의 동료와 함께 ‘편의점 다녀올까..?’ 라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물론 피곤함을 핑계로 평일에는 운동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점점 살이 찌더니, 그렇게 열심히 골랐던 나의 예쁜 결혼반지는 이제 내 손가락에는 들어가지도 않아 관상용이 되었다. 물론 남편도 사정은 마찬가지.

군것질보다도 먼저 끊어내야 할  스트레스인  같은 기분이 든다.


 #낮아지는 자존감

살이 찌기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심리적 변화는 바로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 생겨버렸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어딜 가도 기념사진 남기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나였지만, 이제는 카메라를 통해 본 나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사진을 찍히는 일이 재미가 없어졌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사 입어도 모델핏과 전혀 다른 나의 핏에 실망하게 되고 모델의 핏을 보며 부러워한다. 자꾸 몸매가 드러나지 않는 옷에 손이 가고, 부 해 보이지 않도록 검은색 옷을 입게 된다. 야리야리하고 알록달록한 옷을 좋아했던 예전의 나와는 너무 다르게 아주 심심한 스타일의 옷을 자꾸 찾아 입게 된다. 그러나 이전 스타일 옷들을 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놓고 ‘살 빠지면 입어야지!’ 하면서 쟁여놓아 택도 제거하지 않은 채 옷장에 걸려버린 옷만 수십 벌이다.

 남편은 내가 동그래졌다고 귀엽다고 했다. 살찌면 싫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살쪄도 여전히 좋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나는 속이 상했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이런 얘기를 듣다니! 나도 여잔데 여자로서의 매력을 잃을 것만 같다. 신경질적으로 대답하게 된다. “아 쫌, 내 살에 관심 갖지 마!!”


#매일 최소 세 번을 마주하는 죄책감

 살이 찌고 나니 다이어트에 대한 압박이 생기면서 식사를 할 때마다 죄책감과 마주한다.


주로 식사를 마쳤을 때는 이렇게 생각한다.

 ‘미쳤다. 오늘 점심 너무 살찌는 음식을 많이 먹었다. 저녁에는 샐러드를 먹자!’

하지만, 저녁이 되면 당이 떨어져 견딜 수가 없다.

‘그냥 오늘까지만 좀 먹을까?’

생각이 바뀌고 결국 점심과 다를 바 없는 식사를 한다. 포만감이 찾아오면 다시금 현자 타임이 온다.

‘아.. 괜히 먹었다.’

기분이 안 좋다.  


남자들도 물론 다이어트를 하지만, 특히나 내 또래 여자라면 누구나 다이어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건강을 위해서라고 하기도 하지만, 사실 건강이 다는 아닌 것 같다. 우리에겐 ‘표준체중’과 ‘미용 체중’의 개념이 있으니까. ‘표준체중’이면 사실 건강에는 지장이 없지만, 예쁘고 야리야리한 느낌이 나려면 한참을 고생하고 스스로를 혹독하게 관리하여 ‘미용 체중’까지 몸무게를 내려야 한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음식에 대한 욕구를 이렇게 눌러야만 한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 옛날 야생에서 살았더라면 열심히 몸을 움직여서 겨우겨우 사냥을 해서 며칠 만에 처음으로 고기를 약간 먹는 정도로 살았기 때문에 살이 찌지 않았을 텐데, 그때의 그 집착적이고도 강렬한 욕구는 당시에나 지금ㅡ먹을게 차고 넘치는 세상ㅡ이나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보이는 어이없는 기분이다. 와중에 운동을 하려니 이미 삭신이 너무 쑤신다. 유명 연예인, 유투버, SNS에서 핫한 인플루언서들의 혹독한 자기 관리로 탄생했을 날씬한 몸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서른이나 먹어서는 자기 관리도 할 줄 모르는 여자’라는 무시 발언을 서슴없이 내 가슴에서 내 머리로 내뱉는다. 나는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관리를 잘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약한 나의 의지를 반성한다. 그리고 다이어트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무시 발언의 기간이 길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자존감의 하락은 나를 점점 자신 없고 못난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람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티가 나는 법이다. 나는 살이 찐 게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잃었다.  반짝거림을 잃어버렸다. 진짜 못나진 것은 외모보다도 내면의 이런 변화들이다.

 식단을 잘 조절하고 있는 날들도 있다. 그런 날들에는 온종일 기운이 없고 배가 고프다. 가뜩이나 살기 피곤해 죽겠는데 이런 기본적인 것들마저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이 상황이 너무 싫다. 몸에 에너지가 떨어지니 기분도 절로 우울하다. 그럼 뭐야, 나는 결국 배불리 먹어도 우울하고, 스스로 식단 조절한답시고 일부러 배를 곯아도 결국 우울하다. 나는 이 상황 속에서 그냥 그저 우울함에 젖어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한 번씩 억눌린 욕구가 폭발하여 말도 안 되게 군것질을 해댄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보았던 ‘폭식증에 걸린 젊은 여자’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그런 여자들은 드라마 속에도 있었고, 수필 속에도 있었고, 심지어 실제 친구 중에도 있었다. 섭식장애가 멀리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역시나 비교의 순간이 빠질 수 없지. 자기 관리가 철저해서  날씬한 몸을 유지하는 여자들을 보며 어딘지 모를 열등감을 느낀다. 나도 저런 모습이 아주 멋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실천이 잘 안 될까. 단순한 원리로 ‘덜먹고 많이 움직이기’를 하면 되는데, 그게 이렇게도 어렵나. 매일 같이 패배감만 반복하고 있다.


#욕구 조절을 상실했다는 한심함, 인생 디톡스 공부.

강아지나 고양이가 자신의 식욕을 조절하지 못함에 있어서 스스로 욕구 조절을 상실했다고 상실감을 느낄 일은 없을 것이다. 인간도 어쩔 수 없이 결국 한 종의 동물인데, 왜 이런 생리적인 욕구들을 억눌러야만 하고, 이를 어겼을 적에 한심함을 느껴야 할까? 결국 이렇게 쪄버린 살도 그렇고, 나중에 다른 주제로 다루게 될 어떤 ‘중독’의 형태들(알코올 중독, 쇼핑중독, 게임중독 등등..)도 그렇고 모두 ‘욕심’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면 그 끝에는 욕심을 버리고, 나 자신을 비우고, 무소유와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자기 자신의 인생을 가볍게 디톡스 해내야 평안할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0세부터 30세까지의 인생에서는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쟁취하는 것을 배우며 살았는데, 갑자기 30세부터  이후의 삶에서 무소유와 미니멀리즘을 배워야 하다니. 갑자기 인생의 방향성이  바뀌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인생 선배들이 무소유와 미니멀리즘을 찬양하며 지향하는 것을 보면 아마 그것이 중요한 배움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흑백과 같은 대비 속에서 오늘도 나는 욕구의 노예가 된 자신을 책망하며 우울에 젖어들었다. 채우기 보다도, ‘비우기’는 정말 너무나 어려운 마음인 것 같다.



힐링 독서 추천 : <<욕구들>> 캐럴라인 냅 저

미국의 여성 에세이스트인 캐럴라인 냅의 책들은 솔직한 친구의 가감 없는 속마음 같아서 정말 재밌다. 여성의 허기와 욕구에 대한 고찰을 이렇게 심도 있게 책 한 권으로 적어 내려 갈 수 있었다니, 정말 대단한 사색가이다. 책에서는 여성의 욕구들이 왜 탄생했으며, 여성 내면의 공허함 들에 대해 깊은 고찰을 제공한다. 저자는 섭식장애도 겪었었고, 심각한 알코올 중독에도 빠진 적 있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더욱 요동치는 그 마음 상태에 대해 잘 이해해주고 있으며, 이미 그것들을 이겨내고 빠져나왔다는 점에서 나에게 희망의 메시지도 함께 던져준다.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을 알고, 이것을 이겨냈으니 나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 자신의 욕구 조절 실패로 스트레스받고 있다면 공감도 할 겸 조언도 들을 겸 한 번씩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에게도 그랬듯 분명 좋은 힐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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