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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yking Aug 20. 2021

서른 살, 우울의 원인에 대한 고찰(6) 중독에 관하여

#6. 중독, 비어있는 무언가를 자꾸만 채우려고 할 때

사실 우울의 원인으로서 중독을 말해야 할지, 우울의 결과로서 중독을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울은 중독을 불러오고, 중독은 우울을 불러온다. 무엇이 먼저랄 것도 없는 것 같다.  소설 <<어린 왕자>> 에서 어린 왕자가 이해할 수 없다고 표현하는 어른 중에는 이런 어른이 나온다.


어린 왕자가 묻는다. “술은 왜 마셔요?”

술주정꾼이 대답한다. “잊어버리려고 마시지.”


어린 왕자는 다시 묻는다. “무얼 잊어버리려고요?”

술주정꾼이 다시 대답한다. “부끄러운 걸 잊어버리려고 그러지.”


어린 왕자가 또다시 묻는다. “뭐가 부끄러운데요?”

술주정꾼이 또다시 대답한다.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워!”

‘어른들은 정말 이상하군.’

어린 왕자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다시 여행을 떠났다.

                                                                        <<어린 왕자>> 중


나는 어린 시절 이 내용을 보고서는 말장난 또는 농담 따먹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그 행성의 어른처럼 이상한 어른이 되어버린 것인가? 나이가 들면서 술주정꾼의 모습에서 공감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이 함께 느껴진다. 중독의 굴레에 빠진 저 사람은 얼마나 괴로웠으면.

어린 왕자를 다시 읽을 때마다 여우와 어린 왕자의 이야기 보다도, 장미와 어린 왕자의 이야기 보다도, 이상한 어른들의 이야기들이 가장 가슴에 콕콕 박힌다.


 



# 쇼핑중독

나는 쇼핑 중독이다. 사회인이 된 지 한 2년 정도 되었을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 현재 약 5년 차가 된 지금까지 나는 스스로를 쇼핑중독이라 진단하게 되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많은 쇼핑중독 진단 자가테스트 질문을 보면서 정말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았다. 다행히도 나는 아직까지는 그 질문 들 중 ‘경제적으로 나의 소비로 인한 카드값을 감당할 수 없다’라는 질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내가 사는 것들은 하나하나는 다 경제적인 소비라 할 만한 가격들이다. 다만 그 빈도가 많은 게 문제지만 말이다. 나는 내가 사회적 활동을 하고 돈을 버는 범위 내에서 사고 싶은 것을 사며 욕구를 채우는 중이다. 이러한 사실이 죄책감의 궁지에 몰린 자신을 합리화하게끔 만들었다. 나의 쇼핑 중독은 오로지 ‘옷’에 한정되어 있다. 신기한 것은 오프라인에서는 옷을 잘 사는 법이 없고 온라인 쇼핑으로 주로 옷을 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결혼하기 전에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으로 내 택배가 자주 왔고, 어쩔 수 없이 엄마가 나의 소비를 속속들이 다 보시게 되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엄마는 이런 내 모습을 보시고 나를 딱히 나무라지 않으셨다. 아마 20대 내내 내가 고생해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고, 친구들보다 한발 뒤늦게 사회인이 되어 겨우 서른이 되어서야 스스로 월급이라는 돈을 벌었고, 자신을 위해 물건을 산다는 것이 대견하셨나 보다. 내 소비에 나만큼 즐거움까지 느끼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쩌면 엄마의 가슴속에 남은 당신의 못다 펼친 욕구도 한 움큼 들어가 있었다.

“어차피 아기 낳으면 그런 거 다 못해. 젊을 때 실컷 사 입어.”

 한 번은 내가 스스로 쇼핑중독 증세가 나타난 것 같아 걱정이라고  남동생한테 말을 했을 때, 남동생이 말했다.

“누나가 정당하게 번 돈을 가지고 누나가 가지고 싶은 걸 사는 게 왜 문제가 되지? 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난 또 무슨 빚이라도 진 줄.”

그렇게 주변에서 위로와 따듯한 눈길을 받은 나의 마음은 영악하기가 그지없었다. 쇼핑 욕구가 올라올 때마다 남들이 해준 그 말을 스스로 무기처럼 사용했다.

‘그래. 내가 힘들게 번 돈으로 내가 갖고 싶은 것 좀 산다는데 뭐 어때! 어차피 나이 들면 못하게 된다는데. 내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 정도도 못해줘?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그런 말도 많잖아. ‘나를 위한 선물’. ’


#난 중독일까? 정상일까?

사람마다 약간씩은 자신의 공허함과 외로움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에 저마다 중독의 싹이 되는 씨앗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쇼핑 중독을 가지고 있고, 내 친구는 음식에 대한 중독 (다른 이름으로 폭식증)을 가지고 있다. 다른 종류의 중독을 가진 친구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우리 엄마도 먹는 것을 좋아해. 그리고 살도 찌셨어. 하지만 엄마는 음식을 먹었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 그저 음식을 먹고 행복해하셔.

하지만 나는 달라. 나는 음식을 먹으면 죄책감을 느끼고 이런 나 자신을 숨기고 싶어 져. 같은 행위이지만 이렇게 죄책감과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은 병이라고 할 수 있어.

네가 만약 옷을 사고 그저 행복한 기분이 든다면 그건 그냥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 이 되는 거지만, 가족들에게 숨기고 싶어 지고 스스로 죄책감과 우울을 느낀다면 그건 ‘쇼핑 중독’의 시작이야.”

그 말을 듣고 나는 머리를 탁 쳤다.

“그럼 나는 중독이야! 어쩌지?!”

친구의 말이 맞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검소한 사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멋있다고 느껴진다. 내 머릿속에서 우러러보는 우상은 그런 사람들인데, 정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면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수치스럽고 부끄러웠다. 옷장에 가득한 옷들을 보면 인상이 찌푸려졌다. 나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그리고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변화도 있었다. 분명 처음에 쇼핑을 시작했을 때 (아직 중독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소확행이었을 때)는 물건 하나하나 들이는 것이 기뻤고, 행복했다. 택배가 도착하자마자 그것을 뜯어보고 거울 앞에서 입어보고 요리조리 사진도 찍고 행복해했다. 그러나 지금은? 택배가 도착하여도 특별한 감흥이 없다. 예전에는 “드디어 택배 왔다!!” 하고 기뻐하는 기분이었다면, 이제는 “어? 이거 왔네.”라고 생각하는 정도로 그 온도는 차갑게 식었다. 어쩔 때는 피곤하고 지쳐 며칠 동안 뜯어보지도 않을 때도 있다. 뜯어보고 나서도 택을 제거하지 않은 상태로 방치하는 옷들도 많다. 특히 스트레스받고 야근을 많이 한 날이면 갑자기 새벽에 장바구니에 들어있는 아이템들을 모조리 결제해버린다. 담을 때는 정말 하루 종일 신중하게 고민하고 담지만, 결제할 때는 세상 쿨한 사람처럼 갑자기 결제를 한다. 살까 말까 하는 고민에서 벗어나게 된 것에서 잠시 해방감과 함께 후련함을 느낀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느껴졌다. 물론 내가 옷을 좋아하는 것도 맞지만, 나는 그 순간 후련함에, 그 행위 자체에 중독이 된 것 같다는 것을.   


#쇼핑중독의 원인 찾기

여기서부터는 쇼핑중독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는 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흥미진진하게 보일 것을 안다. 왜냐하면 공감할 만한 부분이 종종 나타날 것이니까. 나도 그랬다.

스스로 쇼핑 중독임을 인정하고 나서부터 나는 나 스스로 나를 치료하기 위해 엄청나게 애를 썼다. ‘미니멀리즘’과 관련된 책들을 찾아다 보고, ‘미니멀리스트’가 된 사람들의 에세이를 보고, ‘쇼핑 중독’에 걸린 여자와 관련된 영화도 찾아보고, ‘쇼핑 중독’을 다루는 유튜브도 엄청 찾아보았다. 그리고 쇼핑 중독과 관련된 유튜브는 결국 정신과 의사들이 말하는 유튜브와 연결이 되며 결국 그 끝은 ‘우울증’으로 향했다. 앞서서 많은 우울의 원인들에 대한 나의 고찰을 써내려 갔고, 앞으로도 하고 싶은 얘기가 줄줄이 많이 남아있을 만큼 나는 우울의 늪에 빠져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정말로 쇼핑 중독의 원인은 결국 나의 마음의 병이었던 것일까.

우울증도 그렇고, 중독도 그렇고 결국은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약을 사용하는 방법은 정확한 해결책이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그것을 없애주는 방법이 필요하다. 분명 내가 이렇게 된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무언가를 이렇게 끊임없이 채우려고 드는 그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너 왜 그러니.

나는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원인 찾기에 집중해보았다.


1. 어린 시절 생겨난 ‘새 옷’에 대한 집착

나는 어린 시절 ‘새 옷을 산다’는 것에 굶주려 있었다. 모든 집의 둘째 딸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언니에게서 옷을 물려받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 언니는 또래에 비해 항상 성장 속도가 빠른 편이었고, 나는 늘 반에서 가장 작은 아이였다. 세 살이란 나이 차이와 각자의 성장 속도의 차이로 인해 언니와 나는 옷을 공유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항상 물려받는 옷들은 나에게 맞지도 않고 커다랬다. 언니는 나랑 취향도 많이 달랐기 때문에 언니의 옷은 내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 밑으로는 남동생이 태어났다. 남동생은 성별이 남자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새 옷을 사입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당연했지만, 어린 나이 그 당시에는 그 사실이 너무 서럽고 이해가 안 됐다. 마치 ‘나만 옷을 안 사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형제들 중에 유일하게 엄마에게 옷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중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네 집은 경제적인 사정이 좋지 않아 졌고 엄마가 맞벌이를 시작하셨다. 반면 그 당시 우리 집은 아버지가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고 계실 때였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좋은 곳에서 외식을 하는 호사를 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친구는 소풍이나 재량활동 같은 사복을 입는 날이 되면 늘 새로운 예쁜 옷을 입고 나타났다. 나는 그것이 너무 부러웠다. 나도 예쁜 옷을 입고 싶었다. 내 옷장의 옷들은 예쁜 건 하나도 없고 다 그저 학원에 갈 때 입기 좋은ㅡ 편하고 손이 자주 가는ㅡ 그런 옷들 뿐이라고 느꼈다. 감정표현에 익숙하지 않던 나는 어느 날 밤에 엄마 앞에서 갑자기 감정이 폭발하였다.

왜 걔네 집은 우리 집보다 가난한데도 걔는 맨날 예쁜 옷을 사 입는데, 우리 집은 잘 사는데 대체 나한테 왜 옷을 안 사줘요!! 으허헝…!!!!”  

거의 오열하며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온 고함에, 엄마는 전혀 타격이 없으셨다. 오히려 더 크게 꾸중을 하셨다. “뭣이라고?! 저게 왜 저래!!” 옆에서 놀란 언니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스스로 폭발시킨 나의 마음에 이미 한번 흠칫 놀라 당황하고 있던 사이에  곧이어 터진 엄마의 화에 나는 더욱 당황하며 꺼이꺼이 울면서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도 그때의 그 당혹스러움(내가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는 당혹감과 엄마가 받아주지 않았다는 당혹감)이 너무나도 생생하다. 그때만 생각하면 눈에 눈물이 고인다.


2. 패셔니스타가 되고 싶은 욕구

나는 옷을 잘 입은 사람들을 보면 너무 재밌다. 사람들이 한껏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을 듬뿍 담아서 각자 다르게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재밌다.

어렸을 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나는 특히 사람을 주로 그렸고,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 또한 자연스럽게 나의 관심이 되었다. 예쁜 옷을 보면 다음에 기억해두었다가 내가 그린 만화 속 여주인공에게 입혀주었다. 진학을 이공계로 하는 바람에 대학교도 결국 생명과학과 약학을 전공하였지만, 대학교 원서 쓸 때만 해도 나는 생활과학과(의류학과)에 지원할까 고민을 했을 정도로 옷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옷 잘 입는 사람은 세련되게 느껴졌고, 소재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매력도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옷 잘 입은 사람들을 보면 흥미로웠고, 나 자신도 예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실제로 회사에 다닐 때도 “그 옷 어디서 샀어? 예쁜 옷 참 잘 사 입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럴 때면 나는 내 안목과 감각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옷들은 평범하지만 조금은 미적 감각이 있어 보이는 포인트가 있는 옷이다.  포인트에 대한 취향이 강하다 보니 각각의 ‘포인트’를 만나면 그 옷이 사고 싶어 지는 욕구가 올라왔다. 색, 패턴, 모양상의 디테일 등등. 그리고 소비에는 ‘디드로 효과’가 있다. ‘디드로 효과’란 소비자들이 하나의 상품을 구입한 후 그 상품과 관련이 있는 제품들을 구입하게 되는 효과이다. 매력적인 색의 상의를 사게 되면 그에 걸맞은 하의를 다시 사게 되는, 소비가 소비를 부르는 그런 효과이다. 나는 이론을 몸소 체험하면서 점점 소비의 노예가 되어갔다. 나중에는 이런 생각도 했다.

아, 여기에 이것만 있으면 완성인데..!’

이런 생각이 들게 되면 결국 그 옷은 사게 된다.  


3. 지나치게 억눌렀던 20대에 대한 보상심리

나는 20살 때부터 주거와 등록금을 제외하고 경제적으로 거의 독립을 했다. 대학교 입학 후부터 한 번도 과외 알바를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늘 적으면 1개, 많으면 4개까지 과외를 했다. 아마 대학생 때 과외 아르바이트를 해본 사람이면 학기 중에 과외 4개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것이다. 정말 힘들었지만 과외 1개를 할 때 30만 원으로 한 달을 사느라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바빠도 돈 많은 게 낫다는 생각을 해서 스스로 혹독하게 돈을 벌었다.

나는 대학교를 두 번 졸업했기 때문에 총 8년 동안 대학생활을 했는데, 첫 대학생활에서는 대학생에 대한 로망도 많을 때여서 동아리, 학생회, 과 친구들과의 스터디, 교직이수 등등 모든 것에 욕심을 내며 참여했다. 심지어 통학도 편도로 한 시간 걸리는 거리에서 했기 때문에 시간이 정말 늘 부족했다. 그럼에도 그 와중에 학생회 활동도 정말 열심히 했다. 사람들은 나를 일당백이라고 불렀다. 손재주가 있던 편이라 포토샵이나 대자보에 글 쓰는 등은 모두 내 손을 거쳤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서 뒤풀이로 술을 먹으러 가면 나는 빠져야 하는 날이 많았다.

학생회장 오빠가 말했다.

“윤경이 많이 고생했는데, 늘 맛있는 거 먹으러 갈 때는 아쉽게 빠지네.” 그 말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저도 너무 아쉬워요. 꼭 가고 싶었는데 하필 오늘 월요일이라…”

과외 알바를 가야 해서 이런 대답을 할 때면 나는 속으로 얼마나 아쉬웠던지 모르겠다.


 대학교 4학년이 되자 각자 자기 진로를 정하느라 더욱 바빠졌다. 나는 학창 시절 6년 동안 생활기록부에 줄곧 적어오던 '약사'라는 직업에 대한 욕심에 다시 한번 진학을 위한 시험을 치르기로 결심했다. 내가 제일 못하는 ‘언어’가 빠진 시험이라 좀 자신 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글을 쓰면서 이런 말을 하기는 부끄럽지만 나는 수능 언어 성적이 최악이었다.) 그러나 4학년 때 교직이수(교생실습이 포함되어 굉장히 바빴다.)와 과외 3개를 병행하면서 졸업 논문도 쓰고 중간, 기말고사도 치려니 시험공부할 시간이 정말 부족했다. 결국 졸업 후 백수 타이틀을 안고 시험을 한번 더 치기로 결심했다. 당시 시험은 8월에 치러졌기 때문에, 2월에 졸업하고 나서 나에게는 6개월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 시간은 세상 힘든 시간이 되었다. 왜냐하면 다른 친구들은 졸업하고 하나둘씩 자기 진로를 찾아가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SNS를 통해 접하는 친구들의 새로운 모습ㅡ대기업 입사 후 간지(?) 나게 변신한 사회초년생ㅡ을 보니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초라하고 조급하게 느껴졌다. 제일 무서웠던 것은 시험에 떨어져서 지금 이 노력이 물거품이 돼버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정말 간절히 합격을 원했고, 스스로를 엄격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어느정도였냐하면 독서실에서 핸드폰을 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핸드폰은 집에 두고 다녔다. (아마 요즘 세대들은 이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 것이다.) 옷은 매일 입고 다닐 운동복 두 벌만 사서 번갈아서 입고 다녔다. 그 해에도 시험 당일이 되기 2주 전까지 나는 과외 알바를 병행했는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대치동에 사는 중학생을 가르치러 알바를 가는 도중에, 한 옷가게의 열린 문에 걸려 있던 하늘하늘한 예쁜 원피스에 시선을 뺏겼다. 예쁜 시폰 원피스였다. 시폰 소재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거리고 있었다. 너무 예뻐서 한참을 쳐다보면서 동시에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좀 웃기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내 몸뚱이에게 이런 말을 걸었다.

“내 몸아. 내가 미안해. 이런 주인을 만나서 네가 고생이 많다. 다른 주인을 만났으면 예쁜 옷 입고 출근을 하고 있었을 텐데. 이렇게 예쁜 나이에 저런 예쁜 옷을 사입혀 줄 수 없어서 미안해. 이렇게 꼬질꼬질하게 다니게 해서 미안해.”


4. 현실 도피

 위에서는 과거로부터 그 원인을 찾았다고 한다면, 여기서부터는 현재로부터 생기는 심리적인 요인이다.

 제약회사 임상팀에서 일했던 나는 늘 업무가 바쁘고 업무의 호흡이 빨랐다. 업무 특성과 나의 성격이 서로 시너지를 일으켜서 심각하게 야근을 많이 했다. 야근을 하면 좋았던 점이 10시가 넘어가면 택시를 타고 집에 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회사에서 집이 멀었기 때문에 집에 가면 거의 11시가 되었다. 11시부터는 오늘 하루 동안 너무 나 자신이 아닌 ‘회사의 일원’으로서만 산 것 같다는 억울함에 핸드폰이라도 잔뜩 들여다보아야 직성이 풀렸다. 피곤한 마음을 꾹 누르고 핸드폰을 보게 되는데, 이때 습관적으로 쇼핑 앱을 들어갔다. 처음에는 같은 옷을 싸게 사기 위해 가게마다 가격을 비교해보고자 다운로드하였던 앱이었는데, 이제는 매일 같이 확인하는 SNS처럼 되어버렸다. 보는 시간이 길고 많으니 당연히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는 횟수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들 어쩜 이렇게 마케팅을 잘하는지, 상품을 입고 있는 모델의 모습이 배경까지 합쳐서 아주 완벽히 예뻤다. 그렇게 장바구니에 마음에 드는 옷들을 담고 담으며 ‘살까 말까’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 이어진다. 내가 보는 옷들은 다 브랜드가 없는 보세 옷들이기 때문에 각각은 그 가격이 얼마 되지가 않았다. 새벽이 되면 갑자기 이런 보상심리가 욱 하고 올라온다.

내가 돈 벌려고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그깟 4만 원짜리 옷 하나 못사? 내가 나 자신을 위해 이 정도도 못해줘? 이게 뭐 20만 원짜리 옷도 아니고. 남들은 브랜드 옷 사 입는데 그래도 나는 가성비 좋게 예쁘고 저렴한 옷 잘 찾아다 사 입잖아. 이 정도는 할 권리가 있는 거 아닌가?!”



쇼핑 앱을 들락 거리는 데에는 또 다른 원인이 있었다. 나는 결혼하고 나서 남편의 사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지금 사는 동네에 집을 얻었다. 내 또래는 많지 않고 어르신들이 많은 동네이다. 경제적 소득 수준이 낮은 동네이다 보니 프랜차이즈 가게들이나 요즘 감성의 가게들이 거의 없다. 고딕체로 촌스럽고 읽기 쉽게 크게 쓰인 간판이 가득한 그런 동네이다. 옷가게에서는 몸빼바지와 손글씨로 적은 “몽땅 5000원”이라고 적힌 글씨들이 가득하고 트로트가 흘러나온다. 옷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정말 재미없는 동네이다. 아이쇼핑의 즐거움을 전혀 채울 수가 없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예전과는 다르게 실제로 거리로 나서서 옷을 구경하러 다니는 일이 없어졌다. 그리고 그 욕구를 전부 온라인을 통해 해결했다. 만약 바로 옷을 만지고, 보고, 돈을 지불하고 사들고 가는 시스템 속에서 의류를 구매했다면 이렇게까지 빈번한 빈도로 많은 옷들을 살 수 없었을 텐데.

백화점이 가까이에 있는 동네에 산다고 해서 소비가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5. 미래를 위한 알 수 없는 대비

갑자기 불어난 살에 몸에 맞는 옷을 사기 시작하면서 옛날에 입던 예쁜 옷들은 입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래를 대비한다. “이 옷 너무 예쁘겠다! 그런데 지금 뱃살로는 이걸 입을 수가 없어. 살이 빠지면 이 옷을 입어야지!!” 이렇게 당장은 입지도 못할 옷들을 미리 사기 시작했다. 이제는 현재 입을 수 있는 옷과 미래에 입을 옷을 모두 사기 시작한 것이다.


 주변에 아기 엄마가 된 친구가 많아지면서 이런 생각도 많이 했다. ‘와.. 이 친구 진짜 옷도 잘 입고 날씬한 친구였는데 살도 많이 찌고 옷도 대충 입었네. 확실히 육아가 바쁘긴 바쁜가 보다.’ 그런 생각이 들면 나는 나 자신에게 다시 한번 사과를 한다. ‘스물다섯 살 전에 졸업하고 취업했더라면 가장 예쁜 나이에 이런저런 예쁜 옷들도 많이 입혀줬을 텐데.. 내가 미안해. 나한테는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없네. 곧 아기 엄마가 되면 아기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할 텐데 내 욕심 채우느라 내게 예쁜 옷을 사줄 수가 없겠지? 아기 엄마가 되면 이런 짧은 치마도 입을 수가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날이면 원래부터도 불편해서 잘 입지 않는 몸매가 잘 드러나는 옷이랑 미니스커트를 구매했다.


 놀러 갈 대비도 시작했다. 매일 시달리는 회사 업무와 사업으로 바빠진 남편으로 인한 외로움과 COVID-19이라는 전염성 질병의 대유행 속에서 휴가 계획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언젠가 있을 휴가를 상상하며 옷을 샀다. 

다음에 놀러 갈 때 이것 입고 가야지!  이 색상의 옷을 입고 사진 찍으면 진짜 잘 나오겠다.”

사진은 무슨. 불어난 몸 때문에 찍지도 않음은 물론이고, 놀러 갈 일도 없네요 이 사람아.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쟁을 벌이는 중입니다.

오늘도 나는 중독과 열심히 싸우는 중이다. 근 2년간 정말 지독한 무기력과 번아웃과 원인모를 심리적 장마철에 시달리며 마음이 매일 같이 비를 맞았다. 요즘은 직장도 바꾸고, 조금씩 기분을 회복하면서 구름이 걷히고 가끔 햇빛이 나는 날도 있다. 조금씩 심리적인 평안을 찾게 되면서 이전보다 훨씬 중독에 시달리는 날이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고쳐진 것은 아니고 노력하는 의지가 조금 돋보이는 정도? 오늘도 나는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고자 매일같이 정신 교육을 하고 쇼핑앱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현저히 줄이기 위한 도전들을 시작했다. 쇼핑으로 얼룩진 나의 여가 생활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하도록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었다. 요즘은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배워보고 싶었던 운동도 한다.  다른 즐거운 것들로 관심을 옮겨가면서 조금씩 개선해나가는 중이다. 아마 나와 같이 쇼핑중독에 대해 고민 중인 사람이 있다면, 인터넷 창에 수도 없이 검색해보았을 것이다. 쇼핑중독, 쇼핑중독의 원인, 쇼핑중독 진단 테스트, 쇼핑중독 정신과, 쇼핑중독 극복하는 방법. 사실 가장 관심 있는 것은 쇼핑중독 극복하는 방법인데, 그 어떤 글이나 매체를 통해서도 그 방법은 뚜렷하게 나와있지 않다. 그저 전문가들은 “쇼핑중독은 공허함의 또 다른 신호이다. 스스로 공허하게 느끼는 부분을 채우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이론적인 조언을 해줄 뿐이다. 맞는 말이지만 스스로 그것을 찾아내는 게 정말 쉽지가 않다. 분명한 것은, 같은 문제를 가진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으로 미루어볼 때 항상 그 안에는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부터의 무언가 상처와 결핍이 있다는 것, 그리고 현재의 생활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나를 잊을 수는 없으니 현재의 나를 충분히 위로하고 이해해주며 꾸준히 결핍감들을 채워나가 보는 것이 필요하다. 중독과의 전쟁을 선언하자! 오늘도 나는 쇼핑만큼 좋아하는 다른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 부지런히 내 마음을 구석구석 헤아려보는 중이다.  


나의 내면의 진짜 욕구를 찾기 위해 오늘도 중독과 전쟁을 벌이는 중인 모든 이들의 지친 마음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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