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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yking Aug 24. 2021

서른 살, 우울의 원인에 대한 고찰 (7) 건강 적신호

#7. 아직은 젊은 나에게 내려진 질병 진단


#노화의 시작점에 선 서른 살

가감 없이 말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 태어난 것은 그저 ‘그냥 정신 차리고 보니 나에게 이 삶이 주어지듯’ 시작되었고,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는 제각각 인생이라는 아름다운 나만의 여행길을 내 성향대로 꾸려나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종결을 상상하며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과정에서 다행히도 정신은 점차 나를 굳건히 자랄  있도록 지혜와 성찰을 습득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몸은 나이가 들면서  누구도 노화로부터 자유로울  없다. 노화의 진행과 함께 여기저기서  점차 만성질환, , 치매 등의 진단을 받게 된다. 하지만 아직 노인이 아닌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20대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었던 친구들의 질병 진단에 대한 소식이 30대가 되면서부터 점차 가끔씩 들려온다. 누구에게나 질병은 갑작스럽고 놀라운 일이겠지만, 내 또래의 어머니가 병에 걸리셨다는 것과 내 또래가 병에 걸렸다는 것은 엄연히 그 느낌이 다르다. ‘아직 젊은 나이에…?’라는 안타까운 마음부터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대 내내 건강을 희생시키는 짓들ㅡ노는 것이든, 나 자신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자 몸을 혹사시킨 것이든ㅡ을 수도 없이 많이 해왔으며, 30대가 되어 직장에서 수많은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있는 서른 즈음의 친구들에게 건강의 적신호가 나타났다는 것은 사실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는 건강관리도 제대로 안 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서른이 넘었다는 것은 이제 슬슬 건강검진을 받아아야 할 나이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소홀히 하다가는 재수가 없으려면 아직 젊은 나이에 예기치 못한 투병생활을 할지도 모른다.


#건강을 잃었을 때, 우울함은 뒤이어 찾아온다.

서른 즈음에 어떤 건강의 적신호로 인해 진단을 받게 되면 분노와 억울한 마음이 생긴다.

‘건강한 줄로만 알았는데… 대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왜 나에게?’

라면서 억울한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허공을 향해 ‘왜’에 대해서 쓸데없이 자주 질문을 던지게 된다.

건강을 잃었을 때 아래와 같은 주로 세 가지 이유로 인해 우울을 겪게 된다.

하나, 나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 대체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아 우울하다. 그러나 이것은 그냥 우연이 찾아오는 것일 뿐,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생활습관이나 유전적 요인을 인과관계로 꼽을 수도 있겠지만, 그 요인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기도 하니까. 만약 이 같은 생각 중인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의 인생은 아무런 죄가 없음을 말해주고 싶다. 이것은 죄로 인한 형벌이 아니다. 물론, 궁금해서 던지는 질문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 몸이 아프니 당연스럽게 정신이 함께 우울해진다. 우리의 몸과 정신은 정말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있다. 약이 아니어도 내가 약이라고 믿고 먹었을 때 실제로 어떤 증상이 낫기도 하고(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이를 플라시보 효과라고 한다.)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받을 때 우리의 뇌와 장은 연결이 되어 있어서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시달리기도 한다.  몸의 불편은 마음으로 나타나고, 마음의 불편도 몸으로 나타난다. 아프다 보니 예민해지고, 조그만 일에도 스트레스가 커지고, 피곤해서 늘 마음에 여유가 없다. 건강할 때는 누군가가 옆에서 짜증 나게 굴더라도 속으로 ‘얘가 많이 힘든가 보다.’ 하고 보듬어줄 수 있지만, 내가 건강하지 않을 때는 “왜 짜증이야?”  하고 덜컥 화를 내게 된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봐줄 여유가 없어진다.

, 내가 이렇게나 아픈데, 아무도  사정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우울해진다. 예를 들어 내가 회사를 다니는 도중 어떠한 큰 질병으로 진단을 받았다고 하자. 내겐 너무도 큰일이고, 다른 것을 다 제쳐두고라도 내 건강부터 챙겨야 하는 중요한 사건이지만, 동료들은 아무도 이 사실을 알 수가 없다.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나 이런 아픔이 있으니 내 사정 좀 봐주고 일을 대신 좀 덜어가 주세요.’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만약 실제로 사람들이 나를 배려해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게 무슨 민폐인가. 이런 특성들을 다 이해하고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이런 상황 속에 처했을 때면 나에게 힘든 일이 주어지는 것에 대하여 ‘아무도 내 사정을 고려해주지 않음’에 더욱 서럽고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진다. 그렇게 조용히 연차를 낼 뿐이다.


#나의 난치병 이야기

나의 지루하고도 길었던 마음의 장마를 불러일으킨 또 하나의 가장 큰 원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나는 3년 전 희귀성 난치병 중 하나인 ‘강직성 척추염’을 진단받았다. 지금이야 누군가를 만났을 때도 내게 사실 이런 병이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ㅡ사실 굳이 말할 기회도 없고, 아직까지도 뭔가 말하기 망설여지는 것은 사실이다ㅡ,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만 해도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진단 이후 점차 내게 먹구름이 드리워지면서 내 마음에 장마철이 찾아왔기 때문에, 어쩌면 강직성 척추염이 내게 이 모든 우울을 불러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강직성 척추염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선 사전적으로는 ‘척추에 염증이 생기고 움직임이 둔해지는 병’이다. 원인은 유전적 요인과 과로 등의 환경적 요인이 주로 거론되지만 사실 뚜렷하지는 않다. 학문적으로 가 아니라 실제 삶에 더 와닿게 설명하자면, 내가 만약 남자라면 나는 군대를 면제받을 수준의 몸상태이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척추가 굳어버려서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허리를 펴고 하늘을 보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가슴뼈에 강직이 올 경우, 가슴이 확장되지 않아 가벼운 운동에도 숨이 차게 된다. 뼈뿐만이 아니라 전신에 염증이 돌아다녀 각종 심각한 질병을 앓게 한다. 완치시키는 약물은 아직 없다. 이렇게 간단히 몇 줄만 적어도 정말 무서운 병인데, 사람들이 이 병에 대해 아직 많이 모르기도 하고, 내게  일일이 다 설명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멀쩡하다. 좋게 말하자면 그래도 수명에 지장이 있는 병은 아니고, 남들 보기에 큰 장애가 엿보일 정도로 티가 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그 어떤 배려도 받기가 힘들다. 가끔씩 엉덩이 천장관절의 컨디션이 심하게 나빠지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출근길에서 너무 통증이 심해 문이 열리는 순간에 맞추어 제때 내릴 수 없을 정도로 한 발작을 떼기가 어렵고 아플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아주 어리석은 생각이겠지만 ‘차라리 내가 겉으로 눈에 띄게 아팠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배려해줄까.’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실제로 하기도 했다.

 나는 원래  모든 체력을  바쳐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었다. 20대 후반까지만 해도 그렇게 살았다. 중고등학교 때 오래 달리기나 오래 매달리기 같은 체력장을 하면 나는 항상 3등 안에는 들었던 것 같다. 등산을 하면 꼭대기에 가는 사람에는 늘 내가 있었다. 체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악바리같이 물고 늘어지는 태도를 가지고 살았기 때문이다. 꼭 모범적인 일에서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친구들이랑 놀아도 무조건 밤을 새우고 노는 멤버 중에 내가 끼어 있었다. 스케줄이 아무리 바빠도 무리해서 모든 모임에 가급적 참가하려 했다. 시험기간이면 당연스럽게 밤을 새워 공부를 했다. 20대 중반에 약대에 입학한 이후,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학교 내에서 학업성적이 좋지 못했다. 열심히 안 해서가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모두 너무 열심히 했기 때문이었다. 공부 좀 한다는 여자애들끼리 모아두니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적으로는 별로 티가 나지가 않는 날이 많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예전의 버릇처럼 내 모든 노력(건강과 체력을 포함한 모든 노력)을 다 바쳐 시험을 준비했다. 약대 공부량은 생각보다 정말 많았고, 시험도 거의 2~3주 내내 매일 치러진다. 매일매일이 시험이고 시험 범위의 양이 많다 보니 어떤 날은 연속 3일 동안 밤을 새운 적도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미련한 태도일  있지만 나에게는 이것이 내가 그동안 살아온 방식이었고, 내가 목표를 쟁취해내는 방식이었다. 내가 조절할  있는  선에서의  ‘최선이었다. 나에게는 삶의 태도, 미덕 같은 것이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20대 후반까지도 종종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신체증상이 나타났었다. 가장 몸상태가 심해졌던 것은 약대 생활의 끝자락에서 약사고시를 앞두었을 때였다. 같은 자세로 앉아서 공부를 하다가 일어서면 무릎에 통증이 갑자기 너무도 극심해서, 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아파서 숨을 꾹 참았다. 그 고통은 정말 너무 뼈저리게 아팠고, 무서웠다. 시험만 끝나면 당장 병원에 달려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떤 날은 도서관에서 엎드려서 잠깐 잠을 잤는데, 명치 쪽의 가슴뼈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한 3일간 고생을 했다. ‘엎드려서 잠을 한번 잘못 잤다고 해서 이게 3일씩이나 통증이 계속 간다고?’ 그 당시에도 정말 이상한 경험이라 생각했다. 어떤 날은 갑자기 꼬리뼈에 통증이 너무 극심해져서 바지를 한쪽 다리씩 끼워 입을 수가 없었다. 이런 통증이 있을 때면 자면서 자세를 바꿀 때마다 통증에 시달려서 하룻밤에도 수십 번씩 쌍욕(?)을 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가뜩이나 피곤해서 푹 자고 싶은데 통증 때문에 그럴 수 없음이 정말 너무 화가 나고 짜증 났다.  당시 공부하던 책에 떡하니 ‘강직성 척추염 대해 쓰여있었지만, 이게  일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채로 나는 증상과 치료법이 행여나  다가올 시험에 나올까 봐 열심히 공부를 했다. 정말 헛똑똑이에 미련하기가 그지없다. 나는 그저 내 자세가 좋지 않아 허리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많은 수험생들이 그런 증상이 있으니까 나도 별반 다를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약사면허를 딴 후 첫 직장에 들어가 월급을 받고 나는 내 허리부터 우선으로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병원에서 야간 당직업무를 하게 된 이유 중에는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내 허리 문제도 있었다. 바로 정상적인 직장을 들어가면 충분히 휴식하고 치료를 받을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야간 당직은 일주일에 이틀 정도만 근무를 했기 때문에 내게 여가 시간은 충분했다. 나는 정말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도수치료를 다니며 거기다 큰돈을 쏟아부었다. 이 아픈 허리가 나아질 수만 있다면 내 월급은 다 반납해도 아깝지 않았다. 그런데 몇백만 원씩 쏟아부어도, 허리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지는 날도 있었다. 슬슬 병원에서도 의사도 당황하고, 도수 치료사도 갸웃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당시 의사 선생님은 상당히 날티(?) 나는 스타일에 늘 장난스러운 말투를 쓰시는 자유분방하신 분이었는데,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따라내려 와 도수 치료사에게 진지한 말투로 특별 부탁을 하시기도 했다. 증상이 잡히지 않으니 더 신경 써서 치료를 해주라는 그런 말이었다. 도수 치료사 선생님도 긴장한 듯 보였고 나에게 많은 정성을 쏟아주셨지만, 나중에는 너무 아파서 도수치료를 받을 수가 없는 날도 많아졌다.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속상하고 답답했는지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증상이 내게 찾아왔다. 며칠 전부터 눈 위쪽에 통증이 심하더니, 갑자기 어느 날 자고 일어났는데 햇빛을 조금만 봐도 눈이 부셔서 견딜 수가 없었고 한쪽 눈에서만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이 아닌가. 그냥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너무나 이상했다. 그날 바로 안과에 찾아갔는데 안과에서도 특별히 그 어떠한 진단도 받지 못했다. 우선은 항생제와 소염제만 받고 3일 뒤 다시 내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3일 뒤, 다시 찾아간 안과에서 안과 선생님이 내 눈을 이것저것 검사하시고 들여다보시더니 말씀하셨다.

혹시 류마티스 쪽 질환 있으세요? 저번에는 너무 초기라 보이지 않던 염증세포가 오늘은 보이기 시작했는데, 포도막염이 확실하네요. 일반적으로  걸리는 병이 아니니까  병원에 가셔서 마티스내과 검사 한번  받아보세요.”

청천벽력이었다. 갑자기 내 뇌리를 스치는 그동안의 이상한 증상들. 자고 일어나면 온몸을 두드려 맞은 듯 뻣뻣해서 움직일 수 없던 몸, 피곤할 때면 더욱 심해지는 엉덩이 관절 통증, 명치뼈의 통증들…. 아… 설마 내가?

그제야 그간의 의문의 통증들과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들이 연결되는 소름 끼치는 경험을 하였다. 그리고 나는 류마티스 내과에서 검사를 받았다. HLA-B27 유전자 양성. 결과가 나오자마자 의심이 되어 곧이어 엉치뼈 CT를 찍었고, 그날 바로 나는 ‘강직성 척추염’ grade 3(중등도)를 진단받았다. 교수님은 무심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 산정특례 대상자인데 등록해드릴까요? 완치라는 개념이 없는 병이지만 그래도 목숨에 지장이 있는 병은 아니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건강관리에 힘쓰시면 됩니다.”


그날 진단을 받은 나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멍 때리며 집 근처 다른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리고 황당한 얼굴로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좋아하는 음료수를 한잔 시켰다. 그제야 눈물이 핑 돌더니 이내 펑펑 쏟아졌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혼자 펑펑 울었다.

많은 생각이 스쳤다. ‘이거 회사에 취직하고 사는데 지장은 없겠지? 나 아직 취업준비생인데…. 나 아기는 낳을 수 있을까? 뼈가 이렇게 많이 굳었다고 하면 위험한 것은 아닌가? 원인이 아직 불명확하다고 해도 유전자 검사가 진단 기준에 있는데, 나 결혼은 해도 될까? 지금의 남자 친구가 나랑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아 지면 어떡하지? 아기는 낳아도 되나? 유전이 될 것 같으면 그냥 아이를 위해서도 낳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닐까? 아니 그보다… 완치가 없다면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집에 와서 심각한 표정으로 엄마와 아빠에게 내 상태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처음에 두 분은 크게 반응하지 않으셨다. 이게 얼마나 괴로운 병인지, 얼마나 심각한 병인지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였고, 나를 보았을 때 내가 너무나도 멀쩡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의 삶은 완전히 화력을 잃었다. 내 삶의 태도였던 ‘악바리 정신’? 그런 건 없어졌다. 나는 몸을 있는 족족 사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피곤해도 약속에 나가지 않았다. 조금만 힘들어도 쉬고 싶었다. 그때 즈음에 운 좋게도 그동안 준비했던 스펙을 가지고 외국계 회사에 취직에 성공했다. 나는 그간 치열하게 살아왔고 그 결과로 목표하던 곳에 드디어 입성하였다. 가장 에너지가 없는 상태로.

회사에서는 신입으로서 배워야 할 업무와 개념이 많았다. 처음이면 누구나 그렇듯 어쩔 수 없이 고생 고생하며 일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내가 소속된 팀은 원래도 업무가 많기로 유명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욕심 ‘건강사이에서 매일을 고통스러워했다. 더 치열하게 업무도 배우고, 더 적극적으로 일도 맡아서 하고, 틈틈이 취미생활도 하고, 정말 대단한 어른으로 한번 살아보고 싶은데, 건강만 생각하면 다 던져버리고 그냥 요양이나 하면서 지내고 싶어질 정도였다. 너무 힘들고 체력이 달리는 날이면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양호실에 들어가서 잠을 잤다. 그렇게 가능한 선에서 닥치는 대로 쉬었다. 아마 누군가가 점심시간에 종종 자러들어가는 나를 관찰했더라면, 나를 맨날 골골거리는 나약한 신입사원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같이 점심을 먹자고 말을 걸어주었던 사람들은 거절하는 내가 가끔 서운했을지도 모른다. 잠을 자겠답시고 점심을 거절하는 내가 굉장히 ‘마이웨이’에다가 단호한 성격인 줄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류의 행동들을 하면서도, 이런 식으로 안 좋은 인식을 심어줄까 봐 이 상황이 너무 싫었다. (막상 상대방은 아무런 생각이 없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나는 그냥 스스로 괴로웠다. 의지력이 약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의 속사정을  길은 없었다.


나는 앞으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지금도 여전히 모르겠다. 나는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갈망하고 성취하기 위해 인내해가며 나의 커리어를 성장시키는 일에 매진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현실에 안주할 지라도 내가 가능한 선에서 할 수 있는 일과 건강을 챙겨가며 평안하게 살아가야 하는가.

전자는 내가 그동안 살면서 미덕으로 삼았던 삶에 대한 태도이다. 그것을 따라갔던 만큼, 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존경스러워 보인다. 반대로 말하면, 나는 후자대로 살면 스스로가 못나 보이고 미련해 보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통증이 너무 심한 날이면 ‘모든 것을 다 던져버리고 그냥 편하게 살아!!! 그냥 편한 곳으로 가!!!’라는 목소리를 내는 자아가 이겨버린다. 무언가에 욕심을 품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이게 자기합리화로 향하지는 않을지, 아프다는 이유로 나태해짐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늘 어렵다. 세상은 그동안 내게 참아내고 쟁취하는 법을 가르쳤는데, 이제와서는 포기하고 비우는 법을 배우라고 하다니. 한창 성장하고 싶은 30대인데 이러한 두 가지 내면의 목소리가 함께 울려 퍼지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힐링 독서 추천 - <<마음이 흐르는 대로>> -지나영

삶에 지친 모든 사람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건강을 잃고 우울해하고 있다면 이 책이 상당한 정신적인 지지가 되어준다.  이 에세이의 저자는 소아정신과 교수로, 미국에서 한국인 최초 존스홉킨스 소아정신과 교수가 된 화려한 이력을 지니고 있으며, 난치병을 진단받아 삶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바뀌는 일을 겪어본 장본인이다. 누구보다도 욕심과 건강 사이의 양극단을 겪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난치병을 극복해나가는 ㅡ병이 없어진다는 뜻이 아닌, 정신적으로 받아들이고 이겨내 간다는 뜻에서의 극복의 과정을 보면서, 비록 글로 그녀를 만나게 되었지만 내 삶의 멘토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verything is happening for me, not to me. And I will make lemonade out of these lemons.”

인생에서의 시련을 레몬으로 비유하면서 그녀는 말한다. 이 모든 어려움도 나를 위해 일어난 거라고. 이 쓰디쓴 레몬으로 꼭 레모네이드를 만들겠다고.

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나에게 주어진 레몬으로 좌절하고 있지만 말고, 이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직 미숙하지만, 꼭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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